[와이라노]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유령아동’ 비극 막을 방법 없나
'출생통보제' 유령아동 방지 대안으로 제시
미혼모가 아이 키울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오늘은 무거운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해요. 여러분은 존재해도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 알고 있나요?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아이들을 말하는데요. 이런 아이들을 ‘미등록 아동’ ‘유령아동’ 등으로 불러요. 이렇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데요. 아이들이 태어난 사실 자체를 국가와 지자체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의무교육을 받거나 예방접종 등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 학대 유기 매매 등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져요.
▮수면 위로 떠오른 ‘유령아동’ 비극
지난달 21일 수원 장안구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약 4~5년 전 친모에게 살해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됐습니다. 이 범행은 출생 미신고 사례 조사 중 드러났죠. 이에 지난달 22일부터 보건복지부가 2015~2022년생 아동 중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유령아동 파악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2236명에 달하는 유령아동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죠. 이번 조사는 ‘임시 신생아 번호’를 통해 추적했습니다. 의료 기관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출생신고 전 예방접종을 위해 7자리 번호가 부여되는데, 임시 신생아 번호는 있지만 출생신고가 안된 아이를 추려보니 2000여 명에 달한 것입니다.
정부는 수원 영아살해와 같은 사건을 막기 위해 지난달 28일부터 출생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전국 곳곳에서 감춰져있던 영아살해·학대치사 사건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졌죠. 경기 용인시에서 아이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건, 인천에서 숨진 아이를 텃밭에 암매장한 사건, 경기 과천시에서 아이를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이 드러났습니다. 유령아동 사망사건은 부산 경남에서도 잇따랐습니다. 경남 거제시에서 아이를 살해한 뒤 암매장한 사건이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경남 진주시, 경남 사천시, 부산 기장군에서는 아이가 사망하자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 확인됐죠.
유령아동의 행방을 찾는 경찰의 수사는 폭증하고 있습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6일 오후 2시 기준 전국 시·도 경찰청에 유령아동 사건 867건이 접수돼 780건(사망 11건, 소재 불명 677건, 소재 확인 92건)을 수사 중이라고 7일 밝혔습니다. 출생 미신고 아동 가운데 사망자는 27명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중 11명은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어 경찰이 수사 중에 있죠.
▮‘출생통보제’ 하루빨리 시행돼야
출생신고는 단순히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국가에 신고하는 행정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아동의 존재를 공적으로 증명하고, 국가의 보호체계 안에 들어가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에서는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만큼 출생신고는 아동 권리 보장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부모에게만 출생신고의 의무가 맡겨져 있습니다. 출생신고는 아이가 태어나면 당연히 거쳐야 하는 절차 중 하나이지만, 어떤 부모는 아이의 출생을 신고하지 않기도 합니다. 현행법상 출생신고 의무자인 부모가 신고를 하지 않으면 국가가 아동의 출생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신고하지 않을 때 부과되는 과태료도 5만 원에 불과해 강제력이 떨어지죠. 게다가 신고가 늦어져도 과태료를 매기기만 하고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부모를 찾아내지는 않습니다.
일련의 유령아동 살해·학대치사 사건들은 부모에게만 출생신고를 맡겨놓은 기존의 ‘출생신고제’가 문제여서 벌어졌다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출생통보제’를 실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죠. 이에 출생통보제 입법 논의가 탄력을 받았습니다. 여야는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죠.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직접 알리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출생 사실을 통보받은 지자체는 아이의 출생신고가 됐는지 확인하고, 신고가 되지 않은 때에는 부모에게 출생신고를 촉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지자체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생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출생통보제가 시행돼야 유령아동을 위한 또 다른 복지 정책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일단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야 복지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부산대 이원익(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이가 태어났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라고 말했습니다. 출생 순간에 바로 출생 등록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꼭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교수는 “등록이 보호의 시작”이라며 “우려하고 있는 출생통보제에 대한 부작용들은 일단 시행 뒤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출생통보제는 하루빨리 시행되는 것이 맞다”고 말했습니다. 숭실대 노혜련(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것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방임”이라며 “출생통보제를 시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해야
‘출생통보제’나 ‘보호출산제’는 앞으로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유령아동으로 남겨지는 아이들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유령아동이 생기게 된 사회적인 배경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혼자서 아이를 키우기 어렵습니다. 미혼모가 숨게 만들어버리죠. 출산은 숨겨져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것이 흠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교수는 “누구든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사회적인 시선도 개선돼야 할 것이고, 지원책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노 교수는 “우리 사회가 미혼모를 숨게 만든다”며 “출산은 숨겨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혼모는 부끄러운 것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죠. 위기에 처한 임산부들이 임신 초기부터 지원을 받아서 아이를 직접 잘 키울 수 있도록 미혼모 지원 체계가 탄탄하게 마련돼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입양 가정보다 미혼모 가정이 아이를 더 키우기 힘든 환경에 놓여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모든 입양 가정은 여러 경제적 지원이나 의료보호를 포함한 여러 사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미혼모 가정은 중위소득 60% 이하일 때만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노 교수는 “경제적·사회적인 이유로 아이를 입양 보내거나 숨기는 일이 없도록 미혼모도 당당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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