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르네상스 적기… 전주만의 독보적 음악축제 만들 것”

이강은 2023. 7. 9. 20:5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왕준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장
대학시절 풍물패 만든 ‘국악 애호가’
의료인이지만 음악계 ‘마당발’ 알려져
위기의 전통음악 축제 소방수로 투입
조직·집행위원 교체 등 대대적 정비
“우리소리 향한 전 세계적 관심 커져
국악 부흥기 이끌 플랫폼 만들겠다”

‘2023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오는 9월 열린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판소리를 중심으로 우리 전통음악(국악)을 계승·발전시키고 세계적으로 확장하려는 취지로 2001년 시작됐다. 전북도의 역점사업이라 매년 25억원 가까이 투입되는 등 예산 규모로만 보면 지방자치단체 최대 축제로 꼽힌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름값을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국악 중흥과 세계화는커녕 국내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전북지역의 축제로만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우리 소리보다 세계 각 나라의 소리(민속음악)를 소개하는 축제처럼 정체성마저 모호해졌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이처럼 위기의 전통음악 축제를 구할 ‘특급 소방수’로 외과의사 출신의 이왕준(59)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이 전격 투입됐다.
지난 2월 취임한 이왕준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이 지난 5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2023 전주세계소리축제의 방향성과 의미 등을 설명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전북도와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는 지난 2월 이 이사장을 임기 3년의 새 조직위원장에 선임했다. 지난 5일 서울 성북구 삼청각에서 만난 이 위원장은 “올초 전북도에서 조직위를 맡아 달라는 연락을 받고 며칠 고민한 뒤 ‘국악 르네상스(부흥)를 해볼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해 수락했다”며 “대신 ‘어떤 간섭도 하면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말했다.

앞서 전북도 측은 전주세계소리축제 위상 제고와 혁신을 위해 전북과 연고가 있으면서 지명도와 추진력, 문화예술에 대한 조예를 갖춘 인사를 물색한 끝에 이 위원장을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 출신인 이 위원장은 서울대 의대와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이듬해(1998년)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뜻하지 않게 병원 경영자가 됐다. 당시 부도 난 인천 세광병원(인천사랑병원으로 변경)을 인수해 ‘환자 제일주의’를 표방하며 3년 만에 빚을 다 갚고 정상화시켰다. 2009년에는 덩치가 몇 배 큰 경기 고양의 명지병원까지 인수한 뒤 6개월 만에 거액의 중도금을 모두 갚고 경기 북부지역 거점 병원으로 탈바꿈시켜 화제가 됐다. 특히 2009년 신종플루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2020년 코로나19 사태 등 감염병 대응과 재난·응급의료 같은 병원의 공공적 역할에도 힘써 주목받았다. 한때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러브콜을 보낼 때마다 완강히 거절한 그는 국악과 양악에 정통하고 국내외 음악계 등 각계 인맥이 넓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 위원장은 “국악과 클래식 음악을 접하고 좋아한 지가 각각 35년, 50년은 됐으니 국악과 양악 모두 섭렵한 마니아라고 할 수 있다”며 웃었다. “의대 1학년 때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악장을 하다 2학년 때 운동권에 들어가면서 ‘내가 지금 부르주아처럼 클래식을 할 때가 아니다’ 하고 민중음악인 풍물패를 의예과에서 처음 만들었어요. 선뜻 하겠다는 친구들이 없어 겨우 설득해 다섯 명을 모은 뒤 꽹과리 잡고 ‘상쇠’(풍물패 지휘자)까지 했습니다.”
인턴·레지던트 시절 틈날 때마다 판소리 다섯바탕(흥보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춘향가) 완창 공연은 물론 지역을 돌며 굿판까지 보러 다녔다. 그동안 본 판소리 완창 무대만 100회가량 된다고.  
그는 ‘범 내려온다’로 유명한 ‘이날치’ 등 국악에 기반한 젊은 밴드와 송가인을 비롯한 국악인 출신이 돋보이는 트로트 열풍, 방탄소년단(BTS) 슈가의 국악을 접목한 노래 ‘대취타’를 거론하며 “오리지널(진짜) 국악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위원장은 “전주세계소리축제를 국악 르네상스에 가장 중요하고 유용한 플랫폼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세계적 음악축제인) 잘츠부르크 축제처럼 전주에 가야만 경험할 수 있는 독보적인 국악축제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조직부터 정비했다. 20여명의 조직위원을 대부분 교체하고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면서, 축제 프로그램의 질과 수준을 높이도록 집행위원회를 △판소리 △정가·민요 △소리극 △산조·시나위 △굿·연희 △월드·퓨전뮤직 등 분야별 전문가가 협업하는 9개 예술분과위원회 시스템으로 구축했다. 5억원을 목표로 잡은 후원금도 벌써 3억원 넘게 모았다. 

이 위원장은 “일각에서 ‘국악인도 아닌 사람이 조직위원장을 맡았다’고 우려하는데, 난 국악 애호가일 뿐 국악계에 아무런 이해관계도, 출세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며 “그래서 (누구보다) 더 공정하고 포용력 있게 전주세계소리축제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 (국내외에서 관심 갖는) 최고의 국악축제가 될 수 있도록 국악계도 적극 협력해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