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때문에 정권 붕괴하고 극우파 득세...이민 정책이 유럽을 흔든다

정승임 2023. 7. 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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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연립정부 '난민정책' 갈등에 붕괴
반이민정서 업고 유럽 내 '극우 정당' 득세
불법이민 막는 '물리적 국경선' 설치도 활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8일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을 만나 사의를 밝힌 뒤 헤이그 소재 휘스텐 보쉬 궁전을 운전하며 나서고 있다. 헤이그=로이터 연합뉴스

난민 정책이 네덜란드 연립정부를 무너뜨렸다. 마르크 뤼터 총리가 7일(현지시간) 난민 정책을 둘러싼 연정 내부 이견을 봉합하지 못했다며 내각 총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2010년 총리직에 올라 4번째 임기를 이어가던 네덜란드 최장수 총리가 난민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시리아 내전 등으로 인한 난민 급증과 이민자 증가로 네덜란드뿐 아니라 유럽 전역이 홍역을 앓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자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각국이 국경을 열었지만, △범죄 증가 △주택가격 상승 △사회복지 지출 부담을 이주민 탓으로 돌리는 반발 정서도 커진 탓이다. 반(反)이민정책을 앞세운 극우 정당들의 득세는 또 다른 부작용이다.


네덜란드 연정 붕괴... 조기 총선으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8일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을 만나기 위해 헤이그 소재 휘스텐 보쉬 궁전에 도착하자 취재진이 몰려들고 있다. 헤이그=로이터 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뤼터 총리는 이날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을 만나 사의를 표하고 과도정부 구성 등에 대해 논의했다. 알렉산더르 국왕은 그리스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연정 붕괴 소식을 듣고 곧바로 귀국했다.

뤼터 총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연립정부 파트너들이 이민 정책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불행하게도 그런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조기 총선은 오는 11월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출범한 연정에는 뤼터 총리가 이끄는 보수 성향 자유민주당(VVD), 진보 성향 D66, 중도 우파 성향 기독민주당(CDA), 중도 성향 기독교연합당(CU) 등 4개 정당이 참여했다. 다당제 국가인 네덜란드에선 단독으로 과반을 점하는 정당이 나오기 힘들어 연정이 불가피하다.

이들이 틀어진 결정적 계기는 급증한 난민에 대한 규제 정책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지난해 망명 신청자가 4만6,000여 명으로 늘고 올해는 사상 최대인 7만 명으로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주택 부족 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에 뤼터 총리는 지지율을 의식해 △난민 가족들의 입국을 매달 최대 200명으로 제한하고 △난민 가족들이 재결합하기까지 최소 2년을 기다리도록 하는 강경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D66 등이 “부모와 아이들을 갈라놓는 조처”라고 반발하면서 무산됐고 결국 연정 붕괴로 이어졌다.


유럽에 다시 부는 ‘극우 바람’

프랑스 극우정당인 RN을 이끄는 마린 르펜이 지난달 8일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8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부유한 국가로 이주한 인구는 전년 대비 약 500만 명 늘었다. 이런 흐름은 유럽 내 정치 지형까지 바꾸고 있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아프리카와 중동 등에서 이주민, 난민이 몰려들자 극우 세력이 반이민정책을 내세우며 세를 불리는 것이다. 2015년 시리아 내전 발발에 따른 난민 급증 사태 당시 극우 정당이 급부상했던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우파 바람은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불고 있다. 지난해 이탈리아에서는 100년 만에 극우 성향인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탄생했고, 올해 4월 핀란드 총선에선 우파 국민연합당이 승리했다. ‘극우 포퓰리스트’로 불리는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헝가리에서 장기집권 중이고 프랑스 극우 간판 스타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은 지난해 총선에서 원내 제2당으로 올라섰다. 최근 알제리계 소년 사망을 계기로 프랑스에서 이민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자 RN은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해 당원 모집에 나섰다.

극우 정당들은 내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해 유럽연합(EU)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와 르펜 RN 전 대표가 화상 회담을 가진 것이 단적인 예다.


불법 이민 막는 ‘물리적 국경선’도

불법 이민자들의 월경을 막기 위해 미 텍사스와 멕시코와 맞닿은 리오그란데강에 배치될 예정인 수십 대의 대형 부표가 7일 텍사스 이글 패스에서 하역되고 있다. 텍사스=AP 연합뉴스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국경을 더 굳게 걸어 잠그는 봉쇄 정책도 노골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핀란드는 러시아 쪽 국경을 따라 201㎞에 이르는 장벽을 건설 중이고, 그리스도 튀르키예 접경지에 145㎞ 길이 철책을 세울 계획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WSJ에 따르면 텍사스주는 불법 이민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흐르는 리오그란데 강 한가운데 1,000피트(약 304.8m) 길이의 부표를 설치하는 작업을 지난 7일 시작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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