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오염수 헌법소원 하는 ‘고래’

차준철 기자 2023. 7. 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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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동물인 산양 28마리가 2018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문화재청이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에 허가한 케이블카를 취소해달라고 제기된 행정소송에 원고로 등장한 것이다. 설악산 산양 지킴이 박그림씨가 산양의 소송 활동을 대신 할 후견인으로 나섰다. 그런데 서울행정법원은 이 소송을 각하했다. 동물인 산양이 원고가 될 자격이 없다는 이유였다. 2006년 대법원이 천성산 도롱뇽 사건에서 도롱뇽 등 자연물은 소송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 판례가 이어진 것이다.

동물이 원고로 이름을 올린 소송은 그 밖에도 더 있었다. 2007년에는 충북 충주의 폐갱도와 습지에 사는 황금박쥐·수달·고니 등 동물 7종이 도로 공사 중단을 요구했고, 이듬해에는 충남 서천의 검은머리물떼새들이 군산복합화력발전소 공사 허가를 취소해달라고 소장을 냈다. 모두 소송 이유는 달랐지만, 인간 이외의 생명체와 자연·생태계 보호 중요성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보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서 ‘한국 정부의 부작위’를 문제 삼는 헌법소원을 내면서 동해에 사는 고래를 청구인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시민뿐 아니라 생태계 대표로 고래를 넣어 동물의 생명·안전 보호 조치도 촉구한다는 취지다. 이번에는 고래가 소송당사자로 인정될 수 있을까.

우리 바다에서 자주 발견되는 고래는 5종이다. 서·남해 상괭이, 제주도 남방큰돌고래, 동해 참돌고래·낫돌고래, 전 연안에서 관찰되는 밍크고래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울산 앞바다에서 먹이를 먹고 일본 서해안에서 잠을 잔다’고 언급된 종은 밍크고래로 추정된다. ‘울산 앞바다가 주방, 일본 서해안이 침실’인 이 고래들은 앞으로 오염수 바다에서 살 것이다. 이동하며 무수히 오염수를 머금고, 물고기·오징어·동물성 플랑크톤을 먹는다. 이런 먹이사슬을 통해 바닷속 생물들에게 집적되는 오염수 피해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 고래는 말이 없으니 괜찮다는 건 해양 생태계 문제를 외면하는 일이다.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이 사람에게 돌아올 수 있다. 고래가 헌법소원에 가세하는 이유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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