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의 파리 생제르맹은 왜 생제르맹일까
이강인(22)이 입단을 확정한 ‘파리 생제르맹 FC(Paris Saint-Germain FC·PSG)’은 프랑스 수도 파리를 연고로 한 명문 클럽이다. 유럽의 다른 빅 클럽과 비교하면 팀 역사는 53년으로 짧은 편이다.
PSG는 1970년 파리 풋볼 클럽(파리 FC)과 스타드 생제르맹이 합병해 탄생했다. 파리 근교 ‘생제르맹 앙레(Saint-Germain-en-Laye)’란 코뮌(commune·기초자치단체)을 연고로 1904년 창단해 2부 리그에 있던 스타드 생제르맹이 팀의 모체가 됐다.
스타드 생제르맹의 홈구장과 훈련장을 그대로 썼고, 감독과 주요 선수 등 선수단도 대부분 승계했다. 1969년 창단해 1년 만에 팀을 합친 파리 FC는 재정적 지원을 주로 했다.
생제르맹의 철자에 ‘Germain’이 있어 독일(영어로 Germany)과 연관성이 있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전혀 관계가 없다. 프랑스어로 독일은 ‘Allemange(알르마뉴)’. 생제르맹 앙레는 기부 활동에 앞장서 ‘가난한 자의 아버지’라 불린 제르맹(496~576) 파리 주교의 이름을 딴 지명(地名)이다.
PSG는 창단 첫해인 1970-1971시즌 프랑스 2부 리그 중부 그룹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1부 리그로 승격했다. 1971-1972시즌엔 20팀 중 16위로 잔류에 성공했지만, 파리 시 의회가 파리 팀이란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팀 이름을 파리 FC로 바꾸라고 요구하면서 격랑에 휩싸였다.
결국 경영진이 분열되면서 팀이 파리 FC와 파리 생제르맹으로 다시 갈라졌다.시 의회의 지원을 받은 파리 FC는 1부 리그에 남았고, 파리 생제르맹은 3부 리그로 떨어졌다. 하지만 2만여 명이 서명을 하는 등 창단 과정에서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파리 시민들은 대부분 PSG를 응원했다.
패션 디자이너 다니엘 에스테 등 파리 사교계의 유명 인사를 등에 업고 급성장한 PSG는 1973-1974시즌 2부 리그 플레이오프를 거쳐 1부 리그로 승격했고, 공교롭게 같은 시즌 파리 FC는 2부 리그로 강등됐다.
PSG는 1974-1975시즌부터 파리 한복판의 ‘파르크 데 프랭스(Parc des Princes)’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면서 한 번도 2부 리그로 떨어지지 않고 1부 리그 11회 우승을 이루며 수도 파리를 대표하는 클럽이 됐다. 반면 파리 FC는 1978-1979시즌에 2부 리그로 강등된 이후 한 번도 1부 리그로 올라오지 못했다.
PSG는 특히 2011년 카타르 국부펀드 자회사(스포츠 인베스트먼트)가 인수한 이후엔 천문학적인 액수를 투자해 킬리안 음바페(25·프랑스)와 네이마르(31·브라질) 등 수퍼스타들을 끌어모아 2012-2013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11년 동안 9차례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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