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의무공개매수제도 유감 [세상읽기]

한겨레 2023. 7. 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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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해 5월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기업가정신 선포식. 연합뉴스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주주는 회사가 창출하는 이익에 대해 자기 지분율만큼만 청구권을 갖는다. 지분율 1% 주주는 1%만 가져가야 하고 지분율 30% 주주는 30%만 가져가야 한다. 너무나도 상식적인 원리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원리가 지켜지지 않는다. 지배주주들이 자기 몫 이상으로 경제적 이득을 챙기기 때문이다.

자기 보수를 자기가 정한다든지 자녀 특혜채용 뒤 고속 승진시키는 것은 기본이다. 자녀가 세운 회사에 일감을 몰아준다든지 회사가 투자해야 할 사업 기회를 가로채는 경우도 종종 있다. 좀 더 대담한 지배주주는 계열사들이 합병할 때 합병 비율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한꺼번에 큰 몫을 챙기기도 한다. 지배주주가 자기 몫 이상을 챙긴 만큼 일반주주는 자기 몫을 덜 챙기게 된다. 재무경제학에서는 이를 점잖게 지배에 따른 사적 이익(private benefit of control)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질에 있어서는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한편 지배주주는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본인의 지배력이 회사 성장 과정에서 약화하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병행한다. 과거 순환출자 구조를 만든 것이나 최근 들어 기업분할을 통해 피라미드 구조를 만든 것도 따지고 보면 지배주주가 본인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됐다. 상속세율 인하를 요구하거나 1주에 엔(n)개의 의결권이 부여되는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 허용을 요구하는 것은 지배권을 영속화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지배력을 악용해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불법적인 권한이 엄청난 고가에 공공연하게 거래된다는 것이다. 지배지분이 거래될 때 시장가에 부가되는 지배권 프리미엄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 지배주주가 높은 프리미엄을 받고 지배권을 팔았다는 것은 그동안 지배력을 악용해 큰 몫을 챙겨 왔다는 증거이고, 새로운 지배주주가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지배권을 매입했다는 것은 앞으로 지배력을 악용해 큰 몫을 챙기겠다는 신호다.

필자가 속한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배의 사적 이익을 줄이는 한가지 방법으로 2010년 이후 줄곧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주장해왔다. 의무공개매수제도란 지배권 인수자가 기존 지배주주에게 지급한 가격으로 나머지 주주 지분에 대해서도 공개매수 제의할 것을 강제하는 제도다.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도입되면 나머지 주주들도 지배주주처럼 프리미엄을 받고 주식을 매도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데 이는 지배권 인수자가 프리미엄을 자발적으로 낮추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한다. 지배권 프리미엄이 높게 책정되면 나머지 주주들의 매도가 촉발돼 필요 이상의 지분을 고가에 매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담한 지배권 프리미엄이 낮아진 만큼 이를 사후적으로 보상받기 위한 사익 편취 필요성도 줄어든다. 주주에 대한 평등 대우를 통해 지배의 사적 이익을 줄이게 되는 것이다.

정부도 뒤늦게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필요성을 인식해 지난해 12월 그 도입 방안을 발표했고, 이를 반영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의원 입법 형태로 올해 5월 국회에 발의됐다. 그런데 그 내용이 이상하다. 25% 이상 지분을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된 경우 전체 주식의 50%+1주까지만 공개매수를 제의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주주를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는다. 지배주주는 프리미엄을 얹어 자기 지분을 모두 매각할 수 있지만, 나머지 주주는 자기 지분을 모두 매각할 수 없고 일부만 매각해야 한다. 나머지 주주들은 주식을 팔기 위해 서로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둘째, 전제가 잘못됐다. 정부는 나머지 주주 지분 모두에 공개매수를 제의하도록 하면 과도한 인수대금으로 기업 인수 시장이 위축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으나 이는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에도 불구하고 지배권 프리미엄 수준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잘못된 전제에 기초한다. 앞서 설명한 이유로 지배권 프리미엄이 낮아지면 인수대금도 과도하게 높아질 이유가 없다.

셋째, 제도 도입의 목적을 망각했다. 전체 주식의 50%+1주까지만 공개매수를 제의하도록 강제하면 지배권 인수자가 프리미엄을 자발적으로 낮출 유인이 사라진다. 부담한 지배권 프리미엄이 높은 만큼 이를 사후적으로 보상받기 위한 사익 편취 필요성도 줄어들지 않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인지 정부와 국회는 이제라도 스스로 반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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