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재판 ‘법원의 시간’은 누가 늦췄나
[한겨레 프리즘]
[한겨레 프리즘] 정은주 | 법조팀장
“재판 지연이 국민이 보기에 공정한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김동현) 심리로 지난 6일 열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은 이렇게 반문했다. 이날 재판부는 “8월 말이나 9월에 (이 대표가 출석하는 정식) 공판 절차에 들어가 주 2회 정도로” 사건을 집중 심리하자고 제안했다. “(방어)축이 제대로 정립 안 된 상태”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 대표 쪽 변호인의 주장에 검찰은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게 아닌가”라고 몰아붙였다.
이 대표가 대장동·위례 개발 특혜 의혹과 성남에프시(FC) 불법 후원금 의혹으로 기소된 뒤 110일이 지났지만 실제로 ‘법원의 시간’은 오지 않았다. 재판이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검찰이 제출한 증거기록이 많다. “(증거)기록은 450권, 20만쪽”이고 검찰이 조사한 참고인만 “350명 정도”다. 방어권 보장을 위해 증거기록 파악은 필수다. 지금 “변호인이 기록을 보는 것도 문제지만 나중에 재판부가 (방대한 기록을) 검토하고 찾아보는 것 자체가 가능한 것인가” 의문스럽기도 하다.
둘째, 검찰이 피고인을 따로따로 재판에 넘겼다.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 유동규씨와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은 2021년 10월 기소했다. 1년이 지난 2022년 12월 이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전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리고 다시 3개월이 지나 이 대표를 기소하면서 정 전 실장의 배임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의 분리 기소로 대장동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23부, 33부가 각각 심리하게 됐다. 하나의 실체를 두고 여러 재판부가 재판을 진행하다 보니 피고인과 핵심 증인들은 날마다 법정에 출석하기도 했다. 유동규씨가 자신의 직업을 “피고인이자 증인”이라고 말할 정도다.
셋째, 1년 반 넘게 대장동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했다. 1차 공소장에서 검찰은 유동규씨가 대장동 민간사업자와 결탁해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최소 651억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했다. 그런데 2차 공소장에서는 이재명 대표와 정진상 전 실장을 추가하고 손해액을 4895억원으로 늘렸다. 검찰이 제시한 범죄 구조가 달라져 재판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실제로 정 전 실장 사건은 이 대표 사건과 합쳐져 새로운 재판부가 맡게 됐다. 재판부 간 쟁점 중복을 피하기 위한 결정이라지만, 그동안 재판은 백지화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3차 공소장 탄생도 예고됐다. 이 대표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공소장에는 원칙적으로 기본적 범죄사실만 기재해야 하는데 (169쪽에 이르는 2차 공소장은) 기타 사실이 너무 많아서 줄여야 한다”고 지적해서다. 검찰이 기소할 때는 재판부가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범죄사실을 적은 공소장만 제출하고 다른 자료나 증거물을 제출해서는 안 된다는 ‘공소장 일본주의’(형사소송규칙 118조 2항)에 어긋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다. 2000년 중반부터 공판중심주의가 강조되면서 증거기록을 먼저 제출하지 못하게 되자 검찰은 종종 공소장에 배경 사실을 넣는 변칙적인 방식을 활용해왔다. 이 경우 재판부가 유죄의 심증을 가질 수 있기에 변호인은 문제제기한다.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했다고 인정되면, 재판부는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검찰의 기소가 잘못됐다며 재판을 끝낼 수도 있다(공소기각 판결).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건에서 상세한 공소장을 문제 삼아 재판부가 일부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공소장 정리가 필요하다”는 재판부의 제안을 검찰이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결국 검찰의 분리 기소와 방대한 기록, 변칙적인 공소장 제출과 변경이 ‘법원의 시간’을 늦춘 출발점인 셈이다. 그렇다면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진정 누구인가.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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