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 연방대법원
[세계의 창]
[세계의 창]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지난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 추진, 세계 경제에 관해 말했다. 그는 “미국이 돌아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받은 첫 질문은 임신중지를 헌법적 권리로 보장한 판례를 뒤집은 연방대법원과, 그런 판결로 미국이 다시 돌아온 게 아니라 뒤로 돌아가고 있다는 인식에 관한 것이었다. 바이든은 “미국은 어느 때보다도 세계를 이끌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면서도 “한가지 속상한 것은 사생활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대법원의 충격적 행동”이라고 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에는 9명의 대법관이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직을 한차례만 수행했는데도 이례적으로 3명을 지명했다.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가 그중 하나를 지명할 수 있었지만 공화당이 상원에서 막았다. 트럼프는 중도파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퇴임하도록 설득했다. 그리고 진보 성향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별세하면서 세번째 지명 기회가 왔다.
트럼프가 지명한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은 사법 영역에서 극우 성향 인물들이다. 대법원은 극보수 5명에 보수 1명, 진보는 단 3명에 불과해지면서 극단주의로 기울었다. 트럼프가 지명한 3명은 상대적으로 젊어, 이들이 수십년간 대법원을 좌우할 수 있다.
그들은 이미 성공하고 있다. 임신중지 제한은 물론 공공장소 총기 휴대를 헌법적 권리로 인정하고, 환경보호국의 규제 권한을 제한하고, 공립학교 스포츠 행사에서 기도를 허용하거나 종교학교들이 재정 지원을 받게 만들어 정교분리를 약화했다.
이번 여름에도 폭탄 같은 결정을 쏟아냈다. 역사적 부정의를 시정하려는 어퍼머티브 액션(소수인종 우대 정책)에 위헌을 선언했다. 바이든의 학자금 탕감을 저지했다. 또 사업자들이 성소수자 고객을 차별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지난 2년간 연방대법원 결정이 모두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연방선거에 관한 규정을 결정할 권리를 주의회에 주려는 움직임을 막았다. 또 미국 망명 신청자들은 멕시코에서 대기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정책을 뒤집으려는 바이든 행정부를 지지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수십년간의 법적, 정치적 진보를 되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극보수 대법관들은 전체 사법 시스템에 포진한 트럼프 집권기 지명자들의 도움을 받는다. 트럼프는 4년 만에 오바마가 8년에 걸쳐 지명한 수만큼이나 많은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했다. 대법원은 미국을 ‘선한 세력’으로 보이게 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 차원에서 가장 큰 영향은 기후변화에 관한 결정일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발전소의 탄소 배출을 전국적으로 제한하는 ‘클린 파워 플랜’(청정발전계획) 시행에 들어갔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준수하기 위한 주춧돌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환경보호국이 규제 권한을 남용했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자국 발전소도 규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세계적 노력을 이끌 수 있을까? 공화당은 바이든의 환경공약 실천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적어도 그는 의회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청정에너지 조항을 넣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행정부는 파리기후변화협정에 재가입하고 키스톤 송유관사업 허가를 취소한 것처럼 중요한 정책 전환을 할 수 있는 재량권을 지녔다.
대법원은 다른 문제다. 그들은 선출되지 않는다. 극보수적 다수파가 환경과 총기에 관한 국가의 통제는 줄이면서 여성의 생명에 대한 통제는 강화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을 바꿔놓으려고 한다. 차별, 총기 폭력,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공공의 노력을 뒤집는 식으로 미국이 세계와 교류하는 방식을 바꾸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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