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적 대화 이어나가는 미·중...전략적 균형 시험대 오른 한·일 [글로벌 리포트]
기후변화 특사·상무장관까지
최고위급 릴레이 방중 '해빙모드'
미국의 對中견제 발맞추던 韓日
한국과 일본은 급하게 전략 수정에 들어갔다. 양국은 미중 갈등 이후 보다 분명하게 미국 편에 서며 중국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으나, 미국이 변하면서 더 이상 반(反) 중국 일변도 정책만 고수하기엔 힘들게 됐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미중이 극적으로 화해하면 오히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외교적 '외딴섬'에 갇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을 놓고 치열하게 전개되는 한·미·일 외교전을 들여다봤다.
9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중 관계 변화의 신호탄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쏘아 올렸다. 그는 미국 국무장관으로는 5년 만인 지난달 18일 중국 베이징을 찾은 뒤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중국 외교라인 1인자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중앙 외사판공실 주임) 등과 잇달아 회동했다.
대만 문제, 대중국 제재 등과 관련해 신경전도 벌였으나 양국 충돌을 막기 위해 소통 채널을 열어두고, 인적 왕래를 포함한 민간 교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대를 형성했다. 당초 미국이 밝힌 방중의 핵심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중국은 측은 시진핑 국가 주석과 회담 자리를 마련해 주며 블링컨 장관의 노력에 화답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선 중국 측이 시 주석과 회담을 마지막까지 확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블링컨 장관의 애를 태웠다는 얘기가 나왔다.
블링컨 장관은 이 자리에서 "미·중 양국이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양자 관계를 잘 관리하는 것이 미국과 중국, 나아가 세계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는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인사말을 전했고, 시 주석은 "중국은 미국의 이익을 존중하며,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그간 행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은 G7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한국, 동남아시아 등 동맹 국가들을 결집시키는 대중국 고립 전략을 사용해 왔다는 것이 중국의 판단이다. 대만을 놓고도 고위 정치인을 대만 땅에 보내거나 무기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중국의 신경을 자극했다. 대만해협에 항모단을 보내 '항행의 자유'를 외쳤으며 반도체 등 첨단 기술의 중국 유입을 차단했고,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 국가들을 자국에서 내쫓았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과의 고위급 교류·원활한 소통을 기대하며, 이견을 책임감 있게 관리·통제하고 대화와 교류·협력을 모색할 것"이라며 "앞으로 몇 주 안에 미국 관리들의 추가 중국 방문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친강 외교부장에게 워싱턴을 방문하도록 초청했다"고 말했다.
■경제 재정립 나선 옐런
블링컨 장관의 바통은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이어받았다. 그는 미국의 경제 사령탑으로 불리며, 미국의 대중국 압박 전략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인물이다. 외교에 이어 경제 분야에서도 소통선을 연결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의지로 읽힌다.
옐런 장관은 방중 직전 미국의 한 방송에 출현해 "(미·중 양국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야 하고, 양국이 상대방의 의도를 오해하지 않기 위해 양국 간 견해차에 대해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국 내 '새 지도부'와 채널 구축을 위한 것이며, 미국과 중국 등 세계 양대 경제 대국이 중요한 글로벌 현안을 협력해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미국의 제재 이후 갈수록 위치가 작아져 가는 중국 입장에선 옐런 장관의 방문은 호재다. 중국 재정부는 홈페이지에 질의응답 방식으로 '중미 경제·무역 관계의 본질은 상호 이익과 공통 이득이며 무역전쟁과 디커플링(산업망과 공급망 특정국 배제)의 승자는 없다'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또 '우리는 미국 측이 실제 조치를 취해 양국 경제·무역 관계를 건전하게 발전시키고, 상호 이익과 공통 이득을 달성을 위한 좋은 환경을 조성하길 바란다. (옐런의 방문은) 양국 사이의 소통과 교류를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옐런 장관은 이달 6일부터 나흘간 중국에 머물며 리창 중국 총리와 허리펑 부총리, 류큔 재정정부장(장관) 등을 잇따라 만나며 관세, 반도체·광물을 비롯한 수출 제한, 환율, 미국의 디리스킹(위험제거), 반간첩법·대외관계법, 인권, 기후변화 등 광범위한 의제를 테이블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중국과 이른바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중국 상품에 부과한 3000억달러(약 391조원) 이상의 관세를 아직 철폐하지 않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고율 관세는 변동이 없다는 게 중국 측 주장이다. 미국 측은 2020년 1차 무역합의 당시 약속했던 문제들을 여전히 이행하지 않은 상태라고 맞선다. 미국의 무역정책을 총괄하는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중국이 합의를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꾸준히 이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났고, 미국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시 합의 준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옐런 장관은 이 같은 관세의 철폐를 주장하는 쪽이다. 다만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둔화됐고, 국가 전체적인 대중국 정책으로 볼 때 급진적 양보는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위안화 환율 등 재정·금융적으로 논의도 이어갔다. 미국은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고, 중국 또한 경기 둔화 위기에 직면했다. 양국이 상호 경기부양 차원에서 정치적 장애물을 넘어 금융·재정적 협력을 실질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아울러 '미국의 반도체 대중국 수출 제재 → 중국의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통제 반격 → 미국의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중국 업체의 접근 제한 재보복' 등 얽히고설키는 제재와 통제도 대화의 쟁점이 됐다.
미국은 옐런 장관 다음으론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를 이달 16~22일께 중국으로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리 특사는 2021년 4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미 고위 인사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찾아 카운터파트인 셰전화 기후변화 특별대표와 대좌했다. 그는 미중 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본격 대두된 그해 8∼9월 다시 방중했고, 셰 대표뿐만 아니라 한정 당시 부총리(현 국가부주석), 중국 최고위 외교 당국자들인 양제츠 전 중앙정치국 위원, 왕이 당시 국무위원(현 중앙정치국 위원)과 잇따라 영상 회담을 했다.
반도체·광물 수출 제재와 통제의 실질적인 담당 수장인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의 방중도 있을 것으로 중국 측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이 지난 5월 말 미국으로 건너가 러몬도 장관을 만난 만큼, 러몬도 장관의 답방이 이뤄질 차례라는 점도 이러한 전망에 무게를 싣는다. 그가 중국으로 간다면 블링컨, 옐런 장관보다 가시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다.
■美 변화에 급해진 韓日
한국과 일본도 마음이 급해졌다. 미국은 대중국 견제를 이끄는 국가이며, 일본은 여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해 왔다. 한국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중국보다는 미국 중심의 외교를 펼쳐왔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이 일정 부분 소통과 교류 재개 단계로 접어든 상태에서 자국만 여전히 중국과 벽을 세우고 있을 경우 외교적으로 고립된 섬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중국 내에선 박진 외교부 장관이 조만간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외교 관례상 이번에는 친강 외교부장이 한국을 찾아올 순서이지만, 상황이 급변하게 변하는 점을 감안했다는 얘기가 들여온다. 이달 초 중국에서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과 만난 최영상 외교차관보도 이를 조율했을 것이라고 일부 중국 소식통들은 관측했다. 방중이 어렵다면 오는 14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양국 외교 수장의 첫 대면 회담을 논의했을 수도 있다. 최 차관보와 쑨웨이둥 부부장은 회담에서 교역 증진, 안정적 공급망 관리 필요성 등도 공감했으며 인적·문화적 교류 확대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이보다 하루 전에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베이징에서 판궁성 인민은행 공산당위원회 서기와 이강 인민은행장과 각각 회동하고, 거시경제 형세와 양국 금융 협력 등 의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일본 역시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이 80명 규모의 대기업 임원 등을 이끌고 중국을 찾았고, 중국은 리창 총리와 왕이 정치국 위원, 왕원타오 상무부장이 이들을 직접 만나며 '성의'를 보여줬다. 정치적으론 냉담하지만 경제적으로 유화적인 양국의 '정랭경온' 기조로 이해된다.
jjw@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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