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할머니 사랑은 나무와 같다

박영서 2023. 7. 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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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종일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가 있다.

방 벽 한쪽에는 가족의 사진이 걸려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할머니의 보물 1호인 반질반질한 자개장이 있다.

어느 날, 할머니는 대바늘로 자개장 아래를 훑으며 잃어버린 보청기를 찾았다.

그러다 할머니는 자개장 안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오는 구멍을 발견했고 구멍 안으로 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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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나무
석양정 지음·조영지 그림 / 풀빛 펴냄

서너 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종일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가 있다. 방 벽 한쪽에는 가족의 사진이 걸려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할머니의 보물 1호인 반질반질한 자개장이 있다. 어느 날, 할머니는 대바늘로 자개장 아래를 훑으며 잃어버린 보청기를 찾았다. 그런데 대바늘에 걸린 것은 엉뚱하게도 뜨개실이었다. 할머니는 가만가만 실을 감으며 이 실로 무엇을 만들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가족들 목도리와 장갑을 뜨던 포근하고 다정했던 기억이었다. 그러다 할머니는 자개장 안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오는 구멍을 발견했고 구멍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 안에서 할머니는 과연 무엇을 마주했을까.

모두에게 뿌리로 연결되어 오래오래 살아 숨 쉬는 '할머니'를 그린 그림책이다. 석양정 작가는 아흔 살을 맞는 자신의 할머니를 생각하며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할머니가 실내에 심어진 나무 같다고 느꼈고, 오랜 세월을 통해 얻은 경험과 지혜를 자손에게 물려주고 다음 봄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책은 "내 이야기의 시작인 손봉희 할머니께"라는 문구로 시작된다.

그림을 그린 조영지 작가는 할머니의 방을 생생하게 그려 냈다. 수많은 할머니 나무가 살아 숨쉬고 있을 아름다운 숲을 환상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자개장에 새겨진 나전칠기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의 그림은 독자들을 글에 한층 집중하게 만든다.

이렇게 글과 그림으로 완성된 이야기는 할머니라는 한 사람의 죽음이 단순히 단절과 소멸을 뜻하지 않음을 전한다. 할머니는 자식들 곁에 나무가 됐고, 그 나무는 다음 '봄'을 맞이하기 위해 잠에 들었다. 그 봄은 '가족'이다. 가족들은 이제 할머니의 '봄'이 된 것이다. 책은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과 모든 자손들을 위한 이야기다. 어린이, 어른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나무가 되어 깊이 뿌리 내린 할머니의 모습에 독자들의 삶도 윤이 날 것이다. 할머니가 정성껏 닦아 윤기가 흐르는 자개장만큼이나 반짝일거라고 속삭여준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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