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 들어온 생성형 AI 시대] 성장 더뎌진 챗GPT… 각국 언어·문화 녹여 `AI 실용성` 높여야
기업도 성능·전력비용 등 따져
中, 자국 특화 챗봇서비스 공개
엔비디아도 AI 클라우드에 집중
국내, 금융·법률분야 개발 착수
⑥ 빅테크에 탈까·'K-AI' 만들까
#1 스타트업 A사의 사업기획·전략부서는 제안서 작업에 챗GPT를 활용한다. 회사와 사업의 기본 정보와 제안 배경, 시장 환경, 기대효과 등을 간추려 입력하면 챗GPT가 금방 제안서 형태의 문서를 만들어준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후에 한번더 손이 가긴 하지만 초안 작성에는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2 금융기업 B사는 고객상담 업무에 챗GPT를 쓴다. 각 상담원이 수백 종류의 투자설명서 내용을 일일이 외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 챗GPT가 유용한 보조 역할을 해준다. 다만 이 회사는 챗GPT를 어디까지 활용할 지에 대해 고민 중이다. 보안이 필요한 민감정보가 밖으로 새 나갈 위험 때문이다. 챗GPT 같은 AI(인공지능) 모델을 자체 내부 서버에 두고 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챗GPT 등장으로 세계를 휩쓴 생성형AI 열풍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파괴적인 기술의 등장에 열광했던 이들이 생성형AI의 기반이 되는 초거대AI의 실질적 효용을 따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기술 확산기를 맞아 성능뿐 아니라 신뢰성, 전성비(전력대비 성능), 실제 가치를 두고 국내외 기술기업들이 생성형 AI 2라운드 경쟁에 나섰다.
통계에 따르면 챗GPT는 지난 6월 웹·모바일 합산 트래픽이 전월보다 9.7% 하락하고 웹사이트 순 방문자 수도 5.7% 줄었다. 오픈AI가 지난해 11월 서비스를 시작한 후 이용자 수가 줄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AI 채팅에 관심이 줄어든 것은 참신함이 사라졌다는 신호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치를 증명할 때"라는 얘기가 나온다.
2021년 9월까지 데이터만 학습한 챗GPT와 달리, 검색서비스와 결합돼 최신정보와 출처도 알려주는 MS(마이크로소프트) 빙(Bing)이나 구글 바드(Bard)로 이용자가 갈아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증권에 따르면 미국 내 아이폰(iOS)용 챗GPT와 MS 빙 앱 모두 전월보다 다운로드가 38% 감소했다.
◇글로벌 LLM 경쟁 더 뜨거워진다
이 가운데 국내외 기업들은 AI 경쟁의 판도를 좌우할 LLM(대규모언어모델)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AI 체급에서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면 글로벌 시장을 모두 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미국 빅테크가 이미 투자와 성능에서 한발 앞섰지만 AI를 내주면 데이터부터 디지털 생태계까지 모든 것을 열어줘야 할 수 있는 만큼 국내외 기업들은 포기할 수 없는 경쟁에 뛰어들었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는 지난 3월 GPT-4를 발표했다. GPT-3.5보다 우월한 성능을 갖추고 한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 등 다양한 형태로 입출력과 상호호환이 가능한 멀티모달도 지원한다.
원조 AI 강자 구글도 지난 5월 팜(PaLM)2를 발표했다. 보통 초거대AI 성능 척도로 여겨지는 파라미터 수는 기존 버전보다 줄었지만 약 5배의 토큰(텍스트 데이터)을 학습해 실제 성능은 더 높였다. 20여개 프로그래밍 언어와 100개 이상 다국어를 학습했으며, 학습 데이터셋에 과학논문과 수학적 표현이 포함돼 다른 LLM과 달리 숫자에도 강점이 있다.
현재 GPT-4는 챗GPT 플러스나 MS 빙 검색으로, 팜2는 구글 바드 검색으로 사용할 수 있다. 구글 바드는 영어에 이은 두 번째 지원언어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택하기도 했다. 발표 당시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최고경영자)는 "1999년 서울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휴대전화를 3대 쓰던 게 기억에 남는다"며 "한국어는 영어와 전혀 다른 만큼 앞으로 다른 언어를 더 쉽게 다루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등 환경과 얼리어답터 이용자층이 갖춰진 한국을 테스트베드로 삼아 공략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중국 기업들도 인구 수에서 비롯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초거대AI 개발에 열을 올린다. 알리바바클라우드는 현재 규모로는 가장 큰 모델 중 하나로 추정되는 '통이치엔원'을 지난 4월 공개했다. 지난달 말 바이두는 챗봇서비스 어니봇3.5를 공개하면서 챗GPT(GPT-3.5)보다 종합적인 성능에서 앞섰다고 강조했다. 이들 또한 한국 시장을 잠재적 공략으로 여길 수 있다.
◇sLLM에 관심을 두는 기업들
최근 주목되는 흐름은 'AI 실용주의'다. 이용자들의 관심이 실질적인 쓰임새로 옮겨가면서 할루시네이션(환각) 문제 해결, 높은 비용과 전력소모, 보안이 해결과제로 떠올랐다.
초거대AI 기업들은 할루시네이션 문제가 2년 내에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전망한다. 당장 발목을 잡는 것은 비용 문제다. 현재 챗GPT 서비스 운영에 드는 비용은 하루 약 70만달러(약 9억원)로 알려졌다. AI 학습에 필수적인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엔비디아가 독점해 대안이 없는 점도 고민이다.
더욱이 챗GPT의 보안이 이슈로 부상하면서 서비스 차단 결정을 내리는 곳들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 등 유수의 기업들은 자체 LLM 구축을 검토하고 있다. 모델 크기보다는 토큰 학습량에 초점을 둬 네 가지 크기 모델로 제공되는 메타 '라마(LLaMA)', 최근 화제가 된 '팰컨(Falcon)' 등 오픈소스 LLM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엔비디아는 델테크놀로지스, 스노우플레이크 등과 손잡고 기업 데이터센터 등에 AI모델을 탑재하는 'AI팩토리' 개념을 밀고 있다. 클라우드 기반으로 서비스되는 LLM과 달리 이런 sLLM(경량화LLM)은 비용 부담이 적고 기업 내에서 쓸 수 있도록 가벼운 게 특징이다.
◇특화로 승부하는 생성형AI 2라운드
한국이 빅테크 AI에 올라타야 할지, 자체 AI로 승부해야 할지도 고민이다. 일각에서는 국산만 고집하다가 갈라파고스화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한국형 AI는 포기할 수 없는 길이라는 게 중론이다.
범용적으로 쓰일 때와 달리 생성형AI가 산업 현장에서 실제 쓰이려면 정확도가 더욱 높아야 한다. 한국어 데이터를 더 많이 학습하고, 한국의 문화와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할루시네이션을 줄이는 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네이버클라우드가 올 8월 24일 공개할 하이퍼클로바X는 커머스·금융·법률·교육 등 각 전문분야에 특화된 한국어 중심의 초거대AI다. 도입 기업의 데이터와 해당 도메인에 특화된 형태로 서비스된다.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방식으로 퍼블릭 클라우드에 연결되거나,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지원하는 '뉴로클라우드'로 사내 구축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생성형AI 2라운드를 위한 맞춤형 공략법을 들고 나온 셈이다.
최근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컴퓨터비전 학회에서 LG AI연구원은 자사 초거대AI 엑사원 기반으로 '캡셔닝AI'를 선보였다. 세계 최대 이미지 플랫폼 셔터스톡과 협력해 처음 접한 이미지도 자연어로 설명해주는 서비스다. 엑사원은 앞으로 신소재나 신약 후보물질 발굴·검증 등에도 특화될 전망이다.
SK텔레콤이 AI 서비스 에이닷을 전면개편한 데 이어 3분기에는 KT가 초거대AI '믿음'의 API를 공개한다. 카카오브레인도 챗봇 서비스 코챗GPT를 내놓을 예정이다. 앞으로 AI학습에서 GPU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받는 AI반도체 연구·실증도 최근 가동한 K-클라우드 프로젝트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세영 뤼튼테크놀로지스 대표는 "소수의 빅테크가 공급자적 지위를 이용해 배타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AI 시장의 가장 큰 위협"이라며 "한국에서 최고의 AI모델들이 경쟁하고 누구나 AI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모두가 참여하는 생태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했다.
생성형AI 관련 시장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듦에 따라 국내 초거대AI 업계도 바빠진다. 결국 품질로 진검승부해 수요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할 것이다. 검색서비스나 모바일 메신저처럼 국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데이터 주권 등 관련해 유사한 니즈를 가진 해외 곳곳에 '소버린 AI'를 수출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최근 글로벌 컨설팅사 매킨지는 생성형AI가 세계 경제에 연간 2조6000억달러(약 3387조8000억원)에서 최대 4조4000억달러(약 5733조2000억원)까지 가치를 만들어낼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은 "한국형 초거대AI가 K-갈라파고스를 불러올 거란 얘기도 하지만, 우리가 힘을 합하면 글로벌 초거대AI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센터장은 "요즘 초거대AI를 핵무기처럼 다뤄야 한다는 말도 하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가 힘을 합쳐 충분한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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