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선조의 선택일 뿐 우열은 없어요”
[짬][짬] 서강대 동아연구소 강희정 소장
“누구나 서양미술은 필수로 알아야 하는 교양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양미술은 관심이 없어요. 나이 든 사람일수록 동양미술을 낮춰 보죠. 특히 1960, 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이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때는 우리가 개발도상국이었고 미국과 유럽을 동경하며 자랐잖아요. 제 책이 동양미술로 가는 길을 열면 좋겠어요.”
강희정 서강대 교수(동남아시아학)는 지난해 초부터 사회평론 출판사에서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동양 미술 이야기> 시리즈를 펴내고 있다. 인더스 문명과 중국 고대 문명에 초점을 맞춘 1·2권을 지난해 냈고 최근에는 실크로드와 불교 미술이 주제인 세 번째 책을 냈다.
이 시리즈의 첫 출발은 약 30만 권이 팔린 양정무 교수의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이다. 서양미술을 다룬 이 시리즈에 이어 바로 동양미술 시리즈를 기획한 출판사는 필자를 찾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중국의 관음보살상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30년 가까이 대학에서 동양미술을 가르쳐온 강 교수를 적임자로 보고 집필을 제안했단다. 사회평론은 동양미술 시리즈를 모두 10권까지 낼 계획이다.
서강대 동아연구소 소장도 맡고 있는 강 교수는 2013년 서강대 대학원에 국내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을 만들어 동남아 지역 전문가 양성에도 힘써왔다. 자신의 전공인 미술사가 아닌 동남아 화교 근대사를 다룬 역사 학술서 <아편과 깡통의 궁전>(2019)으로 롯데출판문화대상(2020)과 아시아학자세계총회(ICAS) 한국어우수학술도서상(2021)도 받았다.
“사실 동양이라는 말이 20세기 초 일본 사람들이 주창해 정치적 느낌이 들어 대신 아시아를 쓰고 싶었죠. 하지만 첫 시리즈가 다룬 서양미술과 대구를 맞추려고 사용했죠.”
책은 대중교양서라는 시리즈 취지처럼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듯 쉽고 친절하게 쓰여졌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3권만 봐도 붓다 열반 이후 인도 등 실크로드 지역에서 나타난 불교미술의 변천을 당대 정치권력과 종교 사상의 변화와 맞물려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작품 설명에만 그치지 않고 역사와 사상 등 배경 설명이 충실하다. 풍부한 사진이나 도판도 ‘동양의 미’에 다가서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제 책을 보고 동양미술 전공자 몇 분이 대학 수업 교재로 쓰면 좋겠다고도 하더군요. 사실 기존 미술사 책을 보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 설명하는 게 조금 불편했어요. 그 뒤에 숨은 맥락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죠.”
이번에 나온 3권은 기원전 3세기 인도 마우리아 제국 아쇼카왕 시대에 정교한 사자 조각상 등이 꼭대기에 놓인 석주(돌기둥)가 8만4천개나 세워졌다거나 5세기 작품인 인도 아잔타 제1석굴 천장에 이탈리아 작가 미켈란젤로가 16세기 초 그린 시스티나성당 벽화에 비견할 만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장식되어 있다는 등의 ‘인도 불교미술의 찬란한 순간’을 찬찬히 짚었다. “아쇼카 석주는 왕이 정한 칙령을 널리 퍼뜨리기 위한 기념비적 성격이 강했죠.”
서양미술을 편애한 독자라면 책을 보고 뒤늦은 동양미술 발견에 놀랄 수도 있겠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받았다. “어떤 미술이든 선입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작년 초 아프간 난민이 한국에 왔을 때 못 사는 이슬람 국가에 대한 선입견으로 ‘우리 동네 망친다’는 일부 반발이 있었잖아요. 하지만 역사 전체로 봤을 때 기원 전후로 600~700년 동안 아프간 지역은 아주 잘살았어요. 실크로드 중계무역이 활발했고 매우 비싼 안료인 청금석이 생산됐죠. 그런 부를 바탕으로 찬란한 간다라 미술이 꽃피었죠.”
대중 눈높이 맞춘 ‘동양미술 이야기’
지난해 1·2권 이어 최근 3권 펴내
배경 설명 충실…10권까지 계획
“동양미술 알리는 길잡이 하고 싶어
미의식 배경엔 근대가 덧씌워져 있어”
‘전공 외도’ 역사학술서로 출판상도
10년 전 첫 동남아학 협동과정 개설
그는 미술은 우열의 문제로 보지 말고 선조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했다. “세상은 서로 연결되었어요. 그 연결에서 선조들이 똑같은 기술을 가지고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미의 정체성이 달라집니다. 금관은 세계적으로 많지만 한자로 출자 형태의 신라 금관은 세계 어디에도 없어요. 신라 금관은 조상들이 선택한 고유의 미이죠.”
불상의 인체 표현이 뛰어난 인도와 옷 표현이 발달한 중국도 역시 마찬가지란다. “인도는 더운 지역이라 옷을 벗고 사니 인체에 관심이 많았고 유교문화권인 중국은 예의염치를 따지고 날씨도 추워 옷을 입고 살다 보니 인체 표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중국이 인체 표현을 못 했던 것은 아닙니다. 기원전 240년께 짓기 시작한 진시황릉에서 나온 도용 <백희>를 보면 인체 표현이 섬세해요. <백희>가 차력과 같이 몸을 써 황제에게 오락을 제공한 존재라 인체 표현에 신경을 쓴 거죠.”
그는 중세 이후 기독교 문화가 위세를 떨친 서양에 비해 동양은 불교와 힌두교, 유교 등 종교가 다양해 미술을 하나의 흐름으로 꿰기 쉽지 않다면서 시리즈 후속작은 소그드(스키타이계열 유목민) 예술과 중국의 도자기와 회화 등을 다룰 생각이라고 밝혔다.
화제를 돌려 어떻게 미술사 전공자가 <아편과 깡통의 궁전> 같은 묵직한 역사 학술서를 쓸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박사 논문을 쓸 때부터 근대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사실 미술이란 말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파고들면서 근대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죠. 미술이나 공예는 일본이 만든 신조어입니다. 근대 공부를 하며 제가 내린 결론은 우리 미의식의 배경에는 근대가 덧씌워져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보는 행위를 통해 미의식을 형성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배경에는 교육과 같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근대의 시스템이 있어요. 자신이 실제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외우는 지식이 만드는 미의식이죠. 한국미의 확실한 구현이라는 석굴암과 달항아리가 대표적입니다. 석굴암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그림이 나와요. 그 시절 일본 학생들도 수학여행으로 많이 찾았고요. ‘경주 신화’는 일제 때 생겼죠.”
그가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의 주제도 “박정희 권위주의 국가에서 국민을 만드는데 어떻게 미술과 문화를 활용했는지”이다. “박정희 시절에 ‘자유교양’이란 게 있었고 신라 화랑을 현창했잖아요. 대대적인 ‘신라 만들기’도 있었고, 문화재 발굴과 보호를 국가가 주도해 국가 정체성을 미술로 나타내려고 했어요. 아예 남대문과 청자를 한국의 상징으로 만들었죠. 그게 그 시대의 국민 만들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피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개설을 주도한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의 현황을 물었다. “동남아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대학원 과정은 우리가 유일해요. 처음엔 동남아라는 지역 틈새를 염두에 두고 개설했는데 그 뒤로 동남아시아학 연구자에 대한 인력 수요가 늘면서 인문사회계 대학원 중에서는 아주 잘 되는 편입니다. 국내 기업의 인력 수요도 많고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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