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AI 웹툰' 창작인가 아닌가···지재권 가이드라인 만든다
AI 활용한 창작물 점차 늘어나는데
규정 공백으로 예술·콘텐츠계 갈등
판례·기술 분석하고 현장의견 담아
저작권 여부·창작 주체·표절 책임 등
제도 개선·입법 방향 '밑그림' 제시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제작한 창작물에 대한 명확한 규제·규정이 부재한 가운데 정부가 법제화와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밑그림 그리기에 나선다. 각종 창작·특허 영역에서 생성형 AI를 통한 저작물과 아이디어가 늘어나고 있는 데다 일각에서는 이를 둘러싼 갈등과 반발이 가시화하는 만큼 관련 논의를 더 늦출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9일 국가지식재산위원회(지재위)에 따르면 지재위는 이달 중순부터 ‘초거대 인공지능 등장에 따른 지식재산 쟁점 대응 방안 연구’ 사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점차 생성형 AI를 활용한 창작 활동이 보편화할 상황에 대비해 AI 창작물과 관련한 각종 쟁점들을 정리하고 향후 진행될 법·가이드라인 제정에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한 포석이다. 이를 위해 국내외 지식재산권 인정 동향과 판례 등은 물론 산업 기술 변화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현장 방문과 토론회·세미나를 통해 관련 업계와 학계, 정부 부처 및 기관 등 각 분야별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지식재산권 분야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며 국가 차원의 전략을 짜는 지재위가 생성형 AI와 관련해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AI 저작권 관련 연구를 한 적은 있지만 모두 생성형 AI 기술이 가시화하기 전에 이뤄진 것들이다. 이미 AI 모델들이 다양한 산업군에서 추천·분류·예측 알고리즘 등으로 활용되는 가운데 대형언어모델(LLM) 기반의 생성형 AI 알고리즘은 언어·이미지 결과물을 신속히 만들어내는 기능을 바탕으로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재위 관계자는 “2020년과 2021년에도 AI 지식재산권에 대해 논의하고 이행 전략 등을 만든 바 있다”면서 “당시는 생성형 AI가 세상에 나오기 전으로 이번 사업은 인간의 창작 행위에 버금가는 기술이 개발된 이후에 진행하는 것이어서 맥락이 다르다”고 말했다.
전례 없이 뛰어난 자연어 이해력을 바탕으로 개별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결과물을 내놓는 생성형 AI는 점차 산업 전 영역에 스며들며 인간의 생산 활동을 대체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컨설팅 그룹 맥킨지가 최근 발간한 ‘생성형 AI의 경제적 잠재성’ 보고서에 따르면 생성형 AI는 2030~2060년 사이 인간 업무의 절반 이상을 대체하며 연간 약 3385조 원(2조 6000억 달러)에서 약 5731조 원(4조 4000억 달러)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생성형 AI 기술은 인간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와 함께 짙은 그림자도 드리우고 있다. 챗GPT가 출시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를 활용한 도서 출판이 봇물을 이뤘고 미드저니와 스테이블디퓨전 등 이미지 생성 AI 모델을 통해 만든 웹툰과 일러스트레이트 등이 인간의 창작물과 경쟁하며 지적재산권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AI 창작물의 저작권 인정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김윤명 디지털정책연구소장은 “현행 법 체계상 저작권은 인간 창작자에게만 귀속되는 단순한 구조”라면서 “인간이 프롬프트(지시 메시지)를 창작해 소프트웨어(SW)에 전달하고 SW가 다시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저작권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이 파생하는데 현행 규정만으로 창작성을 규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들이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국내에서는 웹툰·웹소설 분야를 중심으로 생성형 AI의 창작성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하는 분위기다. 네이버웹툰에 연재되는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은 앞서 작가가 작화 일부에 AI를 활용한 것이 알려지며 웹툰 작가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카카오페이지의 한 웹소설도 표지 디자인이 생성형 AI 를 활용해 만들어진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일러스트 작가들이 항의하기도 했다. 웹툰이 분절된 회차 사이에 그림 스타일 등이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하는 데 비해 표지 일러스트의 경우 생성형 AI로 대체하기가 비교적 용이해 향후 논란과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해외에서도 최근 작가 두 명이 오픈 AI가 자신들의 작품을 무단 학습해 저작권을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등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주로 창작자 사이에서 빚어지던 갈등은 최근 플랫폼으로도 번지는 모양새다. 생성형 AI 작품에 거부감을 갖는 창작자들이 공정 경쟁 환경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플랫폼에 있다고 화살을 돌리면서 업계도 난처한 입장이다. 네이버웹툰의 한 관계자는 “생성형 AI 기술을 둘러싼 이슈가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창작물을 유통하는 플랫폼으로 불똥이 튀었다”면서 “전 세계적으로도 관련 규정이 부재하고 저작권 침해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이어서 난감하다”고 말했다. 올해 2월 미국의 온라인 공상과학(SF) 판타지 소설 플랫폼 ‘클락스월드’는 챗GPT 등 생성형 AI를 활용한 작품들의 투고 비중이 급증하자 작품 접수를 중단했고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논란에 놀란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공모전에서 생성형 AI 활용을 배제했다.
거스를 수 없는 생성형 AI 혁명과 기존 창작 생태계 간 조화를 위해 각국은 법제화와 가이드라인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가장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유럽연합(EU)은 최근 마련한 법안에서 AI 모델 학습에 사용된 저작물의 출처를 적시하라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문화체육관광부도 9월까지 저작권 관점에서 AI 산출물 활용 가이드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유계환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연구위원은 “AI가 국민의 기본권과 창작자의 저작권에 미치는 위험을 충분히 규제하는 동시에 관련 산업도 육성하는 균형점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면서도 “법제화에 앞서 가이드라인 마련과 자율적 규제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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