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지역 핌피가 중앙 정치를 만났을 때

2023. 7. 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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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쓰레기 소각장 같은 시설이 동네에 들어온다면 모두 반대할 것이다. 반대로 유익한 시설이라면 유치하려 할 것이다. 전자를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라고 부른다면 후자를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라고 부른다. '제발 우리 동네로 와주세요'의 뜻이다. 도서관과 체육시설, 공원, 지하철역, 공항 등이 그러하다. 지자체마다 서로 유익 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자체 내에서도 경쟁한다.

최근 불거진 양평고속도로 논란은 한마디로 핌피 현상이다. 양평은 서울에서 꽤 가까운 지역임에도 도로 정체가 심한 지역이다. 평일에는 출퇴근 차량으로, 주말에는 관광객들로 도로가 자주 막힌다.

양평고속도로는 양평군과 광주시 북부 지역의 균형발전과 주변 도로의 교통량 분산을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하남과 광주를 거쳐 양평군 양서면으로 이어지는 총 26.8㎞의 도로가 제안되었다. 2021년 4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양서면 사람들은 서울 접근성이 좋아졌다고 반겼다. 그 이면에는 땅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 5월 종착점이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바뀌었다. 교통량 증가와 환경 훼손 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노선을 변경했다는 것이 국토교통부 설명이다. 양평군에 '강하IC' 건설이라는 지역민의 요청도 반영되었다. 하지만 양서면 사람들은 강상면에 고속도로 종점을 빼앗겼다는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고속도로 개설을 믿고 여러 투자를 했던 사람들은 상실감이 더 컸을 것이다.

호사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김건희 여사의 가족 땅. 지난 3월 공직자 재산공개에서도 윤 대통령은 배우자가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일대 토지 4527.8㎡ (1372평)을 갖고 있다고 신고했다. 최근에는 김건희 여사 일가가 강상면 일대에 29필지의 땅을 갖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오래전 상속받은 땅이지만 대통령 배우자와 연계시키면서 폭발력이 생겼다.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려고 고속도로 노선 변경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구체적인 증거도 없는 '카더라'식의 발언이었지만 소문은 더욱 확산되었다. 삼류 유튜버들도 가담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수준까지 되었다.

급기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기자회견에 나섰다. 원 장관은 지난 6일 "아무리 팩트를 얘기하고 아무리 노선을 설명해도 이 정부 내내 김건희 여사를 악마로 만들기 위한 민주당의 가짜뉴스 프레임을 우리가 말릴 방법이 없다"며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해선 노선 검토뿐 아니라 도로개설사업 추진 자체를 이 시점에서 전면 중단하고 이 정부에서 추진됐던 모든 사항을 백지화하겠다"고 말했다.

원 장관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전면 중단, 백지화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원 장관은 지역 이슈를 전국화시켰다.

애초 국토부의 설명이 부족했다. 아무리 합리적인 결정이라도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엘리트만의 행정은 정당화될 수 없다. 지역 주민들에게 왜 강상면으로 변경해야 했는지 적극적인 설명을 했어야 했다.

명확한 근거 자료를 제시하고, 충분한 설명과 여론 수렴을 했더라면 지금의 논란으로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정치인들이 내년 총선 공천을 생각하며 이름 알리기 경쟁에 나서면서 갈등을 부추기는 양상이 되었다.

지독한 불신의 시대다. 김건희 여사 일가에 대한 특혜 의혹에 '혹시나' 하는 국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과거 권력자들이 미리 개발정보를 갖고 땅을 사거나, 권력의 힘을 악용해서 자신과 가족의 땅 주변을 개발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지난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일탈을 경험하기도 했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도 주인공은 분당의 토지 투자로 종잣돈을 만들었다. 거짓 정보라도 자꾸 접하게 되면 진짜처럼 느끼는 '환상적 진실효과'(The Illusory Truth Effect)가 발생한다.

야당에서는 김건희 여사 관련 이슈를 제기하면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렇기에 양평고속도로 특혜 같은 의혹 제기는 앞으로도 자주 등장할 것이다. 대통령실은 "터무니없는 야당의 정치공세"라고 일축만 해서는 안된다.

이제라도 김 여사 일가에 대해 체계적인 관리를 하고 그 내용을 언론에 공개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은 윤 대통령에게 예방주사 같은 긍정적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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