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월요일] 세상의 모든 빗물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7. 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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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 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 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 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 허연 作 <칠월> 전문

필자의 시다. 매년 칠월이면 낭독회에 와 달라는 제안을 많이 받는다. 오래전 눈물로 쓴 이 시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비스럽다. 젊은 날 많이 아팠다. 미래는 없었고,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사랑은 떠났고, 차는 끊겼는데 폭우가 쏟아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머리속에 시를 쓰는 일 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렀다. 이제 이 시는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것이다. 다시 칠월이다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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