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살기좋은 아파트'에 살고 있나요
현장 심사 고집 지키며 명성
화려한 설계·고급 자재보다
'살기좋은 집' 주민이 만들어
도시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만 교외로 나가면 숲이 무성한 산들이 도로 양옆에 펼쳐진다.
비가 잦은 시기에는 하천도 마르지 않고 제법 물줄기가 거세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노라면 "이런 데 살아도 조용하고 살기 좋겠다"는 말이 툭 나온다. 그럼 어김없이 "혼자 와서 살아"라는 말이 감상을 깨뜨린다.
만나는 사람에게 사는 아파트를 종종 물어본다. 전문 직종이나 대기업 임원들은 예상 가능한 동네에 대개 살고 있다. 과천이나 세종시 공무원들, 혼자 사는 2030세대, 갓난아기가 있는 부모,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경우도 "어디 삽니다"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간혹 의외인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나도 모르게 "왜?" 되묻게 된다. 그럼 그 집안의 피치 못할 사정이나 개인적인 취향을 더 알게 되곤 한다.
사실 '살기좋은 아파트'에 객관적인 잣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친환경이나 교육, 교통 등 거론되는 조건도 주관적인 필요성이다. 아파트 가격이 비싸다(더 오를 것이다)고 살기좋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한때 은퇴한 실버세대를 겨냥한 전원주택 개발 붐이 일었다. 이들은 조용한 교외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기 원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래서 한결같이 산과 하천이 가까운 친환경 입지에 조성됐다.
하지만 외딴곳에 떨어진 주택에 살다 보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쇼핑 병원 등 편의시설을 이용하기가 불편하고 벌레와 쥐 때문에 고역을 겪는 분도 계신다.
집값을 좇아 살 아파트를 옮겨 다니는 것도 고달프다. 2002년 10월 도곡동 타워팰리스1차 입주 당시 기존에 없었던 초고층 아파트 생활에 이목이 집중됐다. 한 언론은 집안 대대로 부자가 아닌 자수성가형 주민들이 많은 것으로 나름 분석하기도 했다. 한 방송은 입주민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목소리를 변조해 인터뷰했다. 60대 초반쯤으로 짐작되는 여성은 "내가 결혼하고 이사만 20번을 했다"며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고생한 줄 아냐"고 자랑스럽게 울분을 토했다.
자녀 교육 때문에 아파트를 선택하는 것은 주변에 흔하다. 직장 가까운 곳에 살다 자녀 학교를 따라 출퇴근에 1시간 이상 소요되는 곳으로 옮긴 경우를 봤다. 처음에는 많이 피곤했지만 "또 적응이 돼"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1996년 시작된 매일경제 '살기좋은 아파트 선발대회'가 올해 27회를 맞았다. 매경을 따라 여러 언론사들이 유사 행사를 진행하지만, '현장 심사'를 고집하는 곳은 매경이 유일하다. 매경은 1회 때부터 건축 관련 교수와 주택협회 임원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들이 전국 아파트를 직접 방문해 심사하고 있다.
현장에서 심사위원들은 '살기좋은 아파트'에 대한 저마다의 의견을 나눈다. 일치하기도 하지만 간혹 엇갈리면 토론이 펼쳐진다. 예를 들어 초고층 주거시설에 대해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공기 흐름에 방해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그럼 다른 전문가는 땅값이 비싼 도심에 저층으로 아파트를 지으면 돈 많은 부자만 그 자리를 선점하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선호도가 높은 지역에 공급을 늘려야 더 공정한 주거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종합대상은 다수결로 투명하게 최종적으로 정해진다.
현장 심사를 다니다 보면 큰 상은 수상하지 못해도 마음이 가는 아파트가 있다.
단지 내 도서관과 노인정, 어린이집 등 주민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다. 그럼 "이웃에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자랑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단지를 거닐면 설계가 화려하고 고급 외장재로 마감한 아파트보다 훨씬 기분이 좋아진다. 살기좋은 아파트는 건설사가 짓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만들어 간다.
[서찬동 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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