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민법 개정
日 제국주의 유산 탈피할 기회
정보화 시대에 맞는 계약법과
부동산등기제도 개선도 이참에
일제강점기 이후 1959년까지 우리나라에는 민법이 없었다. 민법은 1958년에 만들어져 1960년부터 시행됐다. 해방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우리나라에서는 식민지 시대에 적용되던 일본 민법이 계속 적용됐다. 새로 제정된 민법은 일본 민법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독일 민법을 수용한 물권법의 일부 규정을 제외하면 일본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민법은 지난 6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개정됐다. 그런데 헌법상 평등원칙에 어긋나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던 가족법과 상속법의 개정이 주를 이루었다. 민법의 기본 원리를 규정한 총칙, 사람과 물건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물권법,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채권법 분야에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우리 어법에 맞지 않는 일본식 용어를 사용한 부분도 아직 남아 있다.
법학을 공부할 때 헌법과 민법 그리고 형법 세 과목을 가장 기본적인 필수과목으로 꼽는다. 이 중 헌법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일본과 결별하였다. 그러나 민법과 형법은 아직도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 형법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는 형법의 심각한 문제는 2021년 4월 '아쉬운 형법 개정'이라는 글을 통해 여기에서 지적한 바 있다. 형법보다 7년 늦게 제정된 민법도 형법보다는 낫지만,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헌법을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기본법인 민법과 형법이 일본 제국주의의 유산을 그대로 안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법률의 제정과 개정은 입법부인 국회의 책무다. 그동안 국회는 수많은 법률을 제정하고 개정하면서 엄청난 생산성을 보여주었다. 일본 법학자들은 우리나라 입법의 신속성과 과감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특히 국회의원의 권한을 확대하는 법률, 정치적인 법률의 제정과 개정은 전광석화와 같이 이루어져 '날치기 통과' '꼼수 입법'과 같은 용어가 뉴스를 장식한다. 그런데 막상 가장 중요한 기초 법률인 민법과 형법의 개정 작업이 국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히 정부가 나서서 65년 만에 민법 전부 개정을 추진하기로 하고 민법개정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사실 법무부는 1999년과 2009년에도 민법 전부 개정을 추진하였는데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였다. 민법 개정안이 아무리 부족하여도 현행 민법보다 나쁠 수 없는데, 국회가 민법 개정을 거절한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번에 새로 출범한 위원회는 민법 교수 출신 전직 대법관 두 분을 포함하여 학계와 법조계의 신망이 두터운 교수와 실무가로 구성되었다. 이론과 실무를 융합한 정부 개정안이 마련되면 국회도 민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임하리라 기대된다.
민법 개정에서 가장 시급한 부분은 계약법 분야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화 시스템을 구축한 G20 회원국이다. 가난한 농업 국가였던 1960년에 만들어진 계약법은 지금 우리 사회에 맞지 않는다. 한편 일본 민법을 그대로 수용하다 보니 일본에 없는 전세 제도와 관련한 내용이 민법에 제대로 규정돼 있지 않다. 대다수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계약 중 하나가 전세 계약인데, 전세 계약을 할 때 어떤 법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전문가가 아니면 도무지 알 수 없게 돼 있다.
물권을 공시하는 부동산 등기 제도의 개선 작업도 민법 개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동산 등기 제도와 전산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100년 전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물권법을 고치지 않으면 이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민법 개정과 함께 이 부분 법령 정비도 이루어져 세계적 자랑거리인 등기 시스템을 누구나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강일원 변호사·전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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