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보이콧" 촉발한 중국발 남중국해 분쟁...'남해구단선'이 뭐기에

허경주 2023. 7. 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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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주최사 사이트에 남해구단선 이미지
"공연 보러 가면 中 침공 계획 지지하는 것"
정부도 논란 조사 나서… 콘서트 취소되나
블랙핑크.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중국과 베트남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불똥이 한국 아이돌그룹 블랙핑크로 튀었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베트남은 반발하는 남중국해 ‘남해구단선(南海九段線·Nine Dash Line)’의 존재를 블랙핑크의 베트남 콘서트 주최사가 옹호했다는 이유에서다. 외교가 관계자는 “한국으로 치면 유명 외국 가수 내한 공연 주최사가 동해를 일본해로 표시하거나 독도를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라고 말한 꼴”이라며 “베트남인들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고 말했다.

베트남 여론이 들끓고 있고 정부도 조사를 시작했다.


”애국심이 더 중요” 팬들도 분노

9일 베트남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종합하면, 베트남에선 처음으로 이달 29, 30일 하노이에서 열리는 블랙핑크 콘서트를 앞두고 “공연을 보이콧하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발단은 블랙핑크 월드투어 주최사이자 중국에 본사를 둔 아시아 최대규모 공연 기획사 ‘iME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에 게재된 한 개의 이미지다.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려고 자의적으로 그은 9개의 가상 해상경계선 ‘남해구단선’이 표시된 지도가 올라와 있던 게 문제가 됐다. 중국은 2000년 전인 한나라 때 자신들이 남중국해 일대 섬을 관리했다는 것을 명분으로 이 지역이 중국 소유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남중국해 전체 해역 90%가 중국 영해가 된다.

베트남 호앙사 군도(중국명 시사군도), 스플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를 비롯해 중국이 영유권을 다투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 섬 대부분도 이 안에 포함돼 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2016년 남해구단선이 국제법상 근거 없다고 결론 내렸지만, 중국은 지금까지도 해당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iME 홈페이지에 게재된 남해구단선 이미지. 페이스북 캡처

베트남은 격분했다. 이번 논란을 ‘해양주권 침해’로 본 까닭이다. 페이스북에서는 “블랙핑크 공연을 보면 중국 침공 계획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다. 콘서트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블랙핑크 팬들도 등을 돌렸다. 팬들은 “블랙핑크도 좋지만 애국심은 더 중요하다.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티켓 예매를 취소했다”며 불매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콘서트 티켓은 ‘10분 매진’이 예상됐으나, 판매 시작 이틀째인 9일까지 좌석이 남아 있다. SNS에는 티켓을 되팔고 싶다는 글도 적지 않다.


”베트남인의 가장 예민한 부분 건드려”

남해구단선 문제에 단호한 베트남 정부도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문화부는 iME 홈페이지 조사를 시작했다. 팜투항 외교부 대변인은 “콘서트가 취소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해당 사안을 정부가 조사하고 있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그간 베트남은 남해구단선에 대한 생각을 명확히 밝혀왔다. 이와 관련된 출판물 및 제품 홍보와 사용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iME 베트남 페이스북에 iME 본사 홈페이지에 남해구단선 옹호 이미지가 게재된 점을 비난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베트남이 남해구단선 문제로 영화와 드라마 방영을 줄줄이 중단했던 전례를 비춰보면,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베트남 문화부는 이달 3일 미국 워너브라더스 영화 ‘바비’에 남해구단선이 표시된 지도가 나왔다는 이유로 베트남 내 상영을 막았다. 올해 3월 영화 ‘언차티드’ 역시 같은 이유로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고 2021년에도 넷플릭스 드라마 ‘파인갭’의 서비스가 중단됐다.

2019년에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어바머너블’이 남해구단선 논란으로 개봉 10일 만에 상영이 중지됐는데, 당시 베트남은 심의를 부실하게 했다며 담당자를 문책하고 배급사에 벌금 1억7,000만 동(약 937만 원)을 부과했다. 블랙핑크 콘서트 역시 조용히 넘어가긴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iME는 뒤늦게 사과했다. 브라이언 차우 iME 최고경영자(CEO)는 “베트남인들에게 적절하지 않은 이미지를 교체하겠다”며 “모든 국가의 주권과 문화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현재 홈페이지에선 관련 사진이 삭제된 상태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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