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기술패권 경쟁시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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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 25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6개 등 51개 연구소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1960년대 경제 개발을 시작한 이래 출연연은 국가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최근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같은 경제 환경의 급변, 저성장 시대 등 위험 요인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출연연은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그 역할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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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 발전 꾀하는게 임무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맞춰
연구기관 통합 전략 세우고
새 혁신 시스템도 구축해야
우리나라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 25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6개 등 51개 연구소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국가가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들여 출연연을 유지하는 이유는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확충해 지속적 발전을 기하자는 데 있다.
1960년대 경제 개발을 시작한 이래 출연연은 국가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점차 민간의 역량이 확대되며 그 역할이 축소됐다. 출연연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자 연구중심제도(PBS) 도입을 통해 시장경쟁 원리를 반영했지만, 연구의 방향성과 전략이 부재하고 파편화되며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최근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같은 경제 환경의 급변, 저성장 시대 등 위험 요인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출연연은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그 역할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출연연의 역할은 국가 임무 수행(Top-down·하향식)과 혁신시스템 구축(Bottom-up·상향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둘은 상보적 관계에 있다. 국가가 치밀한 전략을 수립해 특정 기술 개발을 추진하더라도 혁신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을 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투입에 비해 산출이 낮은 그동안의 연구·개발 투자의 비효율성으로 증명돼왔다. 만일 혁신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었다면 국가 전략에 따른 연구·개발 투입의 성과는 훨씬 풍부했을 것이다.
더 효율적인 연구·개발을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각자도생의 추진 행태와는 달리 전체 연구기관들이 유기적으로 연계해 움직이는 식의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현장의 기술, 산업 동향이 즉각 반영될 수 있도록 연구소가 함께 움직여야 제대로 된 연구가 이뤄지고 실제 성과로 이어진다.
이는 일본의 수출 규제와 요소수 사태에서 촉발된 공급망 관리 문제에서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 발효로 공급망 재편의 불확실성 문제에 직면해 있다. 기회요인과 위험요인이 함께 있어 대처가 시급하다. 밸류체인상 관계된 모든 출연연이 함께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통합 전략을 수립해 미션을 수행하는 ‘아메바 조직’으로의 변모가 필요하다.
혁신시스템의 구축을 위한 상향식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정보통신기술(ICT)산업으로 이어지는 발전 과정에서 주력 산업은 바뀌었지만 추진 방식은 하향식으로 크게 변하지 않았다. 혁신생태계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뀌었지만 실제로 혁신시스템 구축은 요원하다. 산학연 개방 혁신은 물론 연구소간 협력도 부진하다. 대학·연구소·기업·혁신지원기관 등 구성 요소는 갖춰졌지만,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잘 돌아가지 않는다. 현재 이를 관장하는 코디네이터들이 부처마다 산재해 있어 질서정연하지 못하다. 정보가 체계적으로 교류되지 않아 생태계 구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원기관을 교통정리 하는 등 지원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 산학연이 협력을 넘어 직접 인력을 교류하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야구를 비교할 때 시스템(생태계) 차이를 거론한다. 한국의 전체 고등학교는 2300개며, 이 가운데 야구팀이 있는 학교는 90개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은 전체 고교 4800개에 야구팀은 4000개에 달한다. 그러니 게임을 거듭할수록 실력차가 드러난다. 시스템은 만들기는 어려워도 일단 만들면 스스로 굴러가 지속 가능하며, 약간의 투입에도 성과가 나타난다. 혁신시스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덕희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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