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팬클럽’ 행사 가만 놔둔 푸틴…점점 커지는 ‘프리고진 미스터리’

정원식 기자 2023. 7. 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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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 한 쇼핑몰에서
바그너 그룹 지지자들 집회 열려
약 300명에 티셔츠·스티커 제공
최근 러 활보 등 잇단 ‘건재’ 과시
WSJ “푸틴 러 대통령이 여전히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의미”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 그룹 수장. AP연합뉴스

지난달 무장 반란을 시도했다 실패한 뒤 벨라루스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던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 그룹 수장이 러시아를 활보하고 있다는 관측들이 이어지면서 그의 신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중을 둘러싼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쇼핑몰 주차장에서 바그너 그룹 지지자들의 집회가 열렸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집회는 참석자 약 300명에게 티셔츠와 스티커를 제공하는 등 팬클럽 행사 분위기로 진행됐다. 행사를 조직한 한 텔레그램 사용자(@WagnerPiter)는 “아쉽게도 사은품이 부족했다”면서 “사고 없이 모든 게 완벽했다”고 밝혔다. 그는 참석자들을 “조국을 지지하는 시민들”이라고 부르면서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주최측은 집회에 바그너 깃발을 가져오지 말라고 요청했으나 일부 참석자들은 이 같은 권고를 무시했다고 WSJ는 전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바그너 로고가 박힌 검정 셔츠를 입고 스카프 등으로 얼굴 일부를 가렸다. 군용 작업복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집회 후 이들이 탄 차량과 오토바이 행렬이 네프스키 대로에서 교통 경찰관의 검문에 걸리기도 했으나 별다른 이상 없이 통과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 한복판에서 열린 바그너 그룹 지지자들의 집회는 최근 러시아 사정을 감안할 때 이례적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 비판 시위를 철저히 단속해왔는데, 푸틴 대통령의 전쟁 명분을 부정하며 무장 반란까지 일으킨 세력을 지지하는 집회가 공권력의 제지 없이 열렸기 때문이다.

WSJ는 이날 집회는 프리고진의 행방에 대한 미스터리를 더욱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프리고진의 행보는 의문투성이다.

앞서 프리고진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지난달 24일 반란을 중단하는 대신 안전을 보장받고 벨라루스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러시아 안팎에서는 정적을 용서하지 않는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러나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프리고진이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고 시사했다. 정부가 반란 직후 압류했던 현금 1억달러와 금괴 등 1억1000만달러(약 1432억원) 상당의 자산을 프리고진에게 돌려줬다는 현지 독립 매체 보도도 나왔다. 반면 지난 6일 러시아 관영 언론들은 반란 직후 수사당국이 프리고진의 자택과 사무실을 급습했을 당시 영상을 내보내 ‘프리고진 때리기’에 열을 올렸다.

WSJ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프리고진이 정말로 살아 있고 러시아를 돌아다니고 있다면 이는 푸틴 대통령이 여전히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바흐무트 등 격전지에서 사실상 러시아 주력 부대로 활약해온 데다 아프리카와 중동 등에서 푸틴 정권이 바그너 그룹을 앞세워 챙겨온 외교적·금전적 이득을 고려할 때 프리고진을 당장 내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벨기에 소재 러시아·유럽·아시아 연구센터 테리사 팰런 소장은 “푸틴은 그(프리고진을) 그냥 처분할 수 없으며 이는 지도자로서의 약점을 드러낸다”면서 “그를 당장 제거하기에는 재정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너무 얽혀 있다”고 말했다.

프리고진이 반란 직후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 담당자였던 압바스 갈리아모프는 “프리고진은 체제를 붕괴 직전에 몰아넣었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것을 잃는 거래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벨라루스 너머로 이동할 수 있는 이동의 자유를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과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 관계 때문에 여전히 일말의 호의를 갖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서방 제재 대상에 올라 있는 한 러시아 백만장자는 FT에 “러시아의 차르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인간적인 데가 있다”면서 “푸틴이 간디는 아니지만 스탈린과 비교하면 인간적인 편”이라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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