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산 고랭지배추 ‘물폭탄’에 작황 안갯속…농민 “막막하다”

김윤호 2023. 7. 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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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태백 재배단지 호우 피해
정식 보름만에 20% 면적 유실
수확시기 밀려 값 하락도 우려
“농작물재해보험 개선” 목소리
5일 강원 태백시 화전동 매봉산을 찾은 태백농협 김병두 조합장(오른쪽)과 직원이 최근 집중호우로 유실된 배추밭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배추 모종이 자리하고 있어야 할 밭이 진흙과 자갈로 뒤덤벅 되어있다.

국내 고랭지배추 주산지인 강원 태백지역 배추농가들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 최근 집중호우의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았기 때문이다. 푸릇푸릇한 배추 모종이 자리하고 있어야 할 밭은 진흙과 자갈로 뒤범벅됐다. 농가들은 배추농사를 수십년 지어왔지만, 올해 같은 상황은 유례가 없다며 너 나 할 것 없이 한숨짓고 있다.

폭우를 이기지 못하고 쓸려 내려온 흙에 뒤덮인 배추 모종.

◆퍼붓는 비에 속수무책으로 쓸려나간 ‘농심’=5일 오전, 고랭지배추 대표 산지인 태백시 화전동 매봉산 일대를 찾았다. 해발 1300m를 웃돌며 ‘바람의 언덕’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의 배추 재배면적은 약 110㏊(33만평)에 달한다. 20여농가가 매년 6월초∼중순 파종을 시작, 8월이면 흡사 푹신한 초록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온 사방에 짙푸른 배추밭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7.6㏊(2만3000평) 규모로 배추·양배추를 재배하는 김창우씨(56)는 배추밭을 하염없이 쳐다보다 고개를 떨궜다. 김씨는 “이틀간 양동이로 쏟아붓듯 갑자기 비가 내리면서 모종을 정식한 지 보름밖에 되지 않은 배추밭이 속수무책으로 쓸려 내려갔다”며 “돌이 많아 평소 배수가 잘되는 밭이라 웬만한 양의 물이면 흡수했겠지만, 순식간에 계곡물처럼 불어나자 손쓸 도리가 없었고 1.98㏊(6000평)가량 피해를 봤다”고 허탈해했다.

김씨의 밭 가까이 다가가보니 어린 배추들이 뿌리 뽑힌 채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산사태가 나 토사 유출이 심한 곳도 눈에 띄었다. 태백농협(조합장 김병두)에 따르면 6월26∼27일 매봉산 일대에 130㎜가 넘는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22㏊에 달하는 배추밭이 유실됐다. 전체 배추 재배단지 110㏊의 20%가 피해를 본 것이다.

인근 배추농가 윤인규씨(77)도 “6.61㏊(2만평) 가운데 0.49㏊(1500평)가량 피해를 봤는데 배추농사 54년 만에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본격적인 장마와 태풍이 시작되기도 전에 손실을 보게 돼 막막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다시 심는 추가 비용 떠안아…작황·가격도 걱정=김씨는 비가 그친 후 굴착기를 동원해 밭고랑을 새로 파고 배추 모종을 다시 구매해 심느라 1500만원 이상을 추가로 썼다. 이는 고스란히 김씨가 부담할 몫이지만 작업 후에도 그의 걱정은 여전하다. 땅속 영양분이 빗물에 쓸려 내려가 땅심이 낮아진 것으로 추정되는 탓에 올해 배추 작황이 괜찮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다시 심은 만큼 배추 정식이 보름가량 늦어졌기 때문에 수확시기도 원래 계획했던 8월말에서 9월 추석께로 밀리게 된 것. 김씨는 “다른 지역 배추와 출하시기가 겹쳐 값 하락이 우려된다”며 “가뜩이나 매년 가격 등락이 심한 작물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한편 윤씨는 피해 본 밭에 배추 모종을 다시 심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밭 군데군데가 불규칙적으로 망가진 터라 보식이 쉽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윤씨는 “장마로 인한 무름병 등 추가적인 병해 확산만 없었으면 좋겠다”며 한숨 쉬었다.

◆농작물재해보험 보상 기준도 농심 멍들게 해=윤씨는 농작물재해보험 가입자지만 까다로운 보험금 산정 기준 탓에 실질적인 보상을 받기 어렵다는 불만도 토로했다.

NH농협손해보험 관계자에 따르면 고랭지배추는 ‘생산비보장’ 방식과 ‘경작불능보장’ 방식으로 보장받는다. 이 중 생산비보장 방식은 수확량을 기준으로 피해를 보전하는데 이때 경과 비율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정식일부터 사고 발생 시점까지 며칠이 지났는지 고려해 보험금이 지급된다는 뜻이다. 정식한 지 며칠 안돼 피해를 본 매봉산 일대 농가들 사례에선 보험금이 적을 수밖에 없다.

경작불능보장 방식도 농가를 비껴간다. 작물이 모두 쓸 수 없게 돼 해당 농지에 더는 올해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때 가입한 보험금만큼 보전하는데 식물체 피해율이 65%를 넘어야 해당되기 때문.

윤씨는 “1필지(900평) 중 300평만 유실됐는데 일부러 멀쩡한 밭까지 전부 갈아엎어야 비로소 보험금을 받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병두 조합장은 “최근 기상이변으로 농작물 피해가 늘어나는 만큼 농작물재해보험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며 “피해농가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근본적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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