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원에 가둬둔 빛의 산란
日 컨템퍼러리 작가 4인 선봬
둥근 원(圓)은 가장 오래된 원시적 기호다. 하나의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놓인 점들의 집합인 원은 고대 이후 가장 완벽한 형태로 여겨졌다.
일본 작가 료 고이즈미는 하나의 점으로부터 펼쳐지는 선으로 형상을 그린다. "나는 몇 번이고 물감을 쌓아 올린다. 규칙성과 우발성, 색채라는 요소를 사용해 빛을 회화에 가둔다."
료 고이즈미를 포함해 일본 작가 4인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있는 SH갤러리 서울점이 고이즈미 료, 야마구치 마사토, 나카 에리카, 니이미 히로키 등 컨템퍼러리(동시대) 작가 그룹전을 15일까지 개최한다. 2015년 일본 긴자에서 출발해 2021년 도쿄 하라주쿠로 이전한 SH갤러리는 지난달 서울에 진출했다.
료 고이즈미 작품은 종교적 원상(圓相)에서 착상을 얻은 작품이 다수다.
후광을 뜻하는 '할로(Halo)' 시리즈는 먼곳에서 다가와 산란하는 빛을 바라보는 정동(情動)을 보는 이에게 안긴다. 무한히 반복되는 동작을 통해 원의 질서를 형성하는 이 작품은 충분히 종교적이다. 물감으로 표현하는 반복과 규칙의 형상은 바라보기만 해도 보는 이에게 경외감을 준다.
나카 에리카의 'T'는 트위터 로고를 뭉개듯 표현한 작품이다. 현대인에게 익숙한 트위터 아이콘을 그렸는데 작가는 아이콘과 같은 모양의 두꺼운 물감을 캔버스에 떨궈 거친 질감으로 재현하는 기법을 썼다. 캔버스 위에서 다른 색깔의 물감이 이지러지면서 우연적 효과가 빚어진다. 카카오톡, 네이버 라인, 인스타그램의 애플리케이션 아이콘도 같은 방식으로 그려졌다.
야마구치 마사토의 작품에 등장하는 현대 여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셀피를 찍는 MZ세대를 연상시킨다.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가 복제된 이미지로 시대의 여성상을 포착했다면 야마구치 마사토의 젊은 여성은 셀피 문화 속에서 자기증식하는 이미지다. 접속을 기점으로 가상과 현실은 흐려진다. 그러나 그 결과 가상 속에 진짜 현실이 장착된다.
니이미 히로키는 버려진 로고와 캐릭터를 재창조해 현대 소비사회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정크 로봇(Junk Robot)' 시리즈는 대량 소비사회에서 한때 '고용'됐지만 지금은 사라진 로봇 캐릭터를 다룬 작품이다. 그가 활용하는 로봇 이미지는 한때 현대산업 중추에 자리했지만 지금은 폐기된 캐릭터들이다. 일회적으로 소비된 뒤 세상에서 '삭제'된 존재들에 그는 생명을 불어넣으려 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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