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동물 수의사, 전화 당일 오면 운수 좋은 날”

황송민 2023. 7. 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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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배 속에 있는 송아지를 직접 꺼내려다 그만 송아지가 죽어버렸지 뭐예요. 숨이 멎은 핏덩이를 보고 있으면 눈이 뒤집혀요. 수의사 얼굴을 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강원 춘천에서 소 120여마리를 사육하는 이재형씨(64·남산면)는 "농장동물 수의사가 너무 부족해 난산을 심심치 않게 겪는 게 축산농가들의 현실"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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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농촌현장 가보니
축산 기반 붕괴 우려 나와
게티이미지뱅크

“어미 배 속에 있는 송아지를 직접 꺼내려다 그만 송아지가 죽어버렸지 뭐예요. 숨이 멎은 핏덩이를 보고 있으면 눈이 뒤집혀요. 수의사 얼굴을 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강원 춘천에서 소 120여마리를 사육하는 이재형씨(64·남산면)는 “농장동물 수의사가 너무 부족해 난산을 심심치 않게 겪는 게 축산농가들의 현실”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전남 무안에서 소 100마리 규모로 축사를 운영하는 박정만씨(53·일로읍)는 “무안에서 활동하는 농장동물 수의사가 한명뿐이라 주말에는 진료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고, 평일에도 연락하면 하루나 이틀 뒤에 오는 일이 흔하다”며 “전화하고 서너시간 뒤에 수의사가 오면 그날은 운수 좋은 날”이라고 설명했다.

농장동물 수의사 부족 현상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며 축산 기반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북 영주에서 한우를 키우는 장성대씨(49·장수면)는 “최근 인근 농가가 수의사를 구하지 못해 출산을 앞둔 소 배를 직접 절개했는데 제대로 봉합하지 못한 탓에 소와 새끼를 모두 잃었다는 소식을 접했다”면서 “수의사 부족 탓에 축사 문을 닫는 농가가 속출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수의사가 농촌을 피하는 현실도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다. 최근 경북 청송영양축산농협에서는 근무한 지 얼마 안된 수의사가 돌연 사표를 쓰는 바람에 부랴부랴 모집 공고를 냈다. 그런데 지원자가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고, 다시 낸 공고에서도 지원자는 한명에 불과했다. 심의활 청송영양축협 경제상무는 “청송과 영양은 오지까지 차로 1시간 걸릴 정도로 길이 험한 데다 처우도 도시와 견줘 열악하다보니 수의사를 채용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귀띔했다.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축협에서 근무하는 손종배 수의사는 “혼자서 축산농가 400∼500곳을 담당하고 있어 어떤 때에는 일할 엄두가 안 나기도 한다”며 “일이 몰리다보니 철원·화천·양구로 출장 갈 여유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수의과대학 졸업생의 90%가량이 ‘농장동물 수의사는 3D(디)업종’이라고 생각해 상대적으로 편하고 돈벌이가 된다고 여기는 강아지·고양이 등 반려동물분야로 몰린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장기 대책을 요구하는 축산업계의 목소리가 높다. 충북 괴산에서 소 80여마리를 사육하는 김종천씨(60·연풍면)는 “(수의사 부족의) 가장 큰 문제는 축사에서 촌각을 다투는 일이 벌어질 때”라면서 “119구조대처럼 응급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수의사 활용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재형씨는 “수의사가 농촌에서 마음 놓고 의술을 펼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먼저”라며 “농장동물 수의사 처우를 이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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