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검찰 ‘홀딩’ 김건희 연루 의혹···도이치모터스 항소심 재판부가 가려낼까
“마지막입니다. …해당 계좌 녹취록을 보면 계좌주(김건희 여사) 본인이 직접 운용한 계좌가 확실합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 심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6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측 변호인은 항소이유 변론을 마치기 직전 작심한 듯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대신증권 녹취록’을 언급했다. 권 전 회장이 김 여사 계좌에서 이뤄진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유력한 증거라는 것이다. 1심 때와 달리 김 여사 계좌가 주가조작에 이용됐다는 부분을 적극 부인한 것이다. 검찰도 1심에서 공소기각된 부분까지 다투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서승렬)는 양측 주장을 토대로 쟁점을 정리하면서 ‘개별 거래가 통정거래에 해당하는지’ 등을 따져보겠다고 했다. 김 여사의 계좌가 이용된 경위, 관여 여부 등에 대해서까지 세세히 판단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에 따라 앞으로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항소심 법정 안팎에서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권 전 회장이 기소된 2021년 12월 이후 1년7개월이 지나도록 “계속 수사중”이라고 밝혀왔는데, 정작 기소되지 않은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통해 어느 정도 규명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권오수는 왜 ‘김건희 녹취록’을 들고 나왔나
문제가 된 김 여사의 대신증권 계좌는 1심에서 숱한 논란을 낳았다. 2010년 11월1일 2차 작전의 ‘주포’ 김모씨가 블랙펄인베스트먼트 임원 민모씨한테 “3300원에 8만개 매도하라고 하셈”이란 문자를 보내자 7초 뒤 김 여사 계좌에서 8만주가 쏟아졌다. 김 여사의 매도 물량은 미리 같은 가격에 주문을 걸어둔 민씨 등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
검찰이 1심 재판 말미에 이런 내용을 공개하면서 김 여사 연루 의혹을 두고 논란이 커졌다. 당시 검찰은 ‘김씨→민씨→이모씨(2차 주가조작 선수)→권 전 회장→김 여사’ 순으로 연락이 간 게 아니냐고 캐물었다. 핵심 공범들 연락구조에 김 여사가 포함된 게 아니냐는 취지였다. 김씨와 민씨 등은 1심 재판에서 ‘김 여사를 직접 몰랐고, 권 전 회장이 김 여사와 관계가 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권 전 회장 측은 김 여사 계좌에 대해 “잘 모른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1심 재판부는 김 여사의 대신증권 계좌를 “권오수 또는 시세조종 세력에 일임됐거나 적어도 이들 지시에 따라 운용된 계좌”로 판단했다. 그러자 권 전 회장은 항소심에서 녹취록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반박에 나섰다. 녹취록에는 문제가 된 11월1일자 거래가 이뤄지기 전 10월8일부터 김 여사와 대신증권 직원이 대화한 내용이 담겼다.
권 전 회장 측은 “녹취록을 보면 10월8일 둘 사이 ‘10만주를 팔았다’ ‘나머지는 어떻게 하냐’ 등 여러가지 상세히 논의하는 내용이 있다”며 “10월18일에도 8만주를 언급하며 논의하고, 11월1일에는 ‘8만주가 팔렸다’고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김 여사는 이미 2010년 10월부터 증권사 담당자에게 일임매매했고, 계좌주 이익에 최대한 부합하는 ‘합리적 선택’을 한 일련의 거래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 전 회장에게 유리한 증거를 검찰이 알고도 1심에서 제출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반면 검찰은 “녹취록 내용이 오히려 권오수와 김 여사의 관계가 (있다는 걸) 더 맞춰줄 수 있는 증거”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녹취록을 보면 김 여사가 총 48만주를 갖고 있으면서도 10만주씩 팔았고, 김 여사가 당시 증권사 직원에게 전화를 하자마자 ‘팔렸죠?’라고 묻는 정황을 강조했다. 오히려 김 여사가 권 전 회장을 비롯한 작전세력이 시세조종을 위해 주식을 사고판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란 것이다. 당시 권 전 회장이 ‘주변 지인 물량을 받아 거래량을 터뜨리겠다’ ‘10만주씩 끊어서 팔아달라’ 등 김씨 등과 문자를 주고받은 내용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김건희 계좌 ‘최소 3개·총 48건 거래’ 1심 판단, 달라질까
엇갈리는 양측 주장에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 주장대로 김건희 명의 계좌가 권오수와 의사 연락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보려면, 적어도 김건희가 전화를 한다거나 의사연락이 있었다는 중간고리가 하나 더 있어야 할 것 같다”며 “변호인이 (검찰이 주장하는 연락구조에 따른 거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중요하게 보는 ‘7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검찰 측에 묻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개별적으로 들어가면 개별거래 행위 자체가 통정거래 여부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되는 것 같다”며 “범행 목적과 동기, 시기와 종기, 주범을 보는 관점뿐 아니라 시세조종 행위를 과연 어떻게 봐야할지 등도 따져봐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1심에서 다뤄졌던 쟁점을 재차 판단하는 데에서 나아가 더 구체적으로 따져보겠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검찰 측에 ‘시세조종 행위에 이용된 거래’를 어떤 기준으로 분류했는지 등도 물었다.
피고인들 측 변호인도 항소심에서 “1심은 시세조종에 가담한 자가 운용한 계좌이면 구체적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통정행위라고 판단했다”며 “(개별 매매·주문 체결이) 시세조종 가능성이 있었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심이 일일이 따질 게 아니라고 본 거래의 성격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앞서 유죄로 인정된 2차 주가조작 행위에서 ‘김 여사의 계좌가 최소 3개 이용됐다’ 정도로 판단했다. 김 여사 명의 계좌가 위법한 시세조종에 활용된 건수는 통정·가장매매를 합쳐 총 48건인데, 문제가 된 11월1일 대신증권 거래에 대해선 김모씨로부터 권 전 회장 쪽으로 연락이 이뤄진 점은 인정하면서도 김 여사가 직접 거래에 개입했는지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에선 시세조종에 이용된 개별 계좌의 거래 성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심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권 전 회장이 김 여사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관여했는지, 최소 3개 이상 계좌가 이용된 김 여사는 작전세력의 시세조종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이 1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에 대해서도 공소장을 변경해 다투겠다고 밝힌 만큼 이 부분도 항소심에서 다퉈질 쟁점 중 하나다. 사기적 부정거래는 권 전 회장이 내부성 호재 정보를 흘려 인위적인 매매유도 행위를 했다는 혐의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주가조작 의심 계좌로 제시한 윤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의 한 계좌에 대해 “권 전 회장으로부터 주가정보를 듣고 직접 매매 여부를 결정했다”고 판단하면서도 범죄사실이 특정되지 않는다는 이유 공소기각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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