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는 배터리·탄소 제로 항공유·농작물 센서 '큰 시장' 열린다
◆ Big Picture ◆
세계경제포럼은 2012년부터 매년 '10대 떠오르는 기술'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필자가 세계경제포럼의 신흥기술 글로벌 어젠다 카운슬 의장을 할 때 카운슬 위원들과 전 세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선정해 발표하기 시작한 이 10대 기술 리스트는 초기에는 향후 5~10년 이내에,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의 리스트는 향후 3~5년 내에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기술로 선정해왔다. 전 세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선정하는 10대 떠오르는 기술 리스트는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이 기술 트렌드를 파악하고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올해도 6월 27일부터 사흘간 중국 톈진에서 개최한 하계 다보스포럼에 맞춰 2023년도 10대 떠오르는 기술이 발표됐다.
① 유연한 배터리 … 의료용 웨어러블·생체 센서 분야 적용
첫 번째는 유연한 배터리다. 유연한 배터리는 가벼운 재료로 만들어져 쉽게 굽히거나 늘어뜨릴 수 있다. 이러한 배터리는 리튬이온이나 아연·탄소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도성 폴리머 전류 수집기 위에 배치된다. 의료용 웨어러블 기기 및 생체 센서, 유연한 디스플레이 및 스마트워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될 수 있다.
또 의류에 장착해 냉난방 시스템을 구현해 날씨에 상관없이 쾌적한 온도를 유지한다거나 건강 모니터링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유연한 배터리 시장은 2022~2027년 동안 2억4000만달러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② 생성형 인공지능…데이터 패턴 학습해 독창적 콘텐츠 생산
두 번째는 생성형 인공지능이다. 이미 챗GPT 등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생성형 인공지능(AI)은 데이터 패턴을 학습해 새롭고 독창적인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는 강력한 인공지능 유형이다. 이 기술은 일상 전 분야에서 이미 획기적인 변혁을 가져오고 있으며 필자와 같이 연구하는 사람들도 생성 모델을 이용해 실험 설계를 개선하고 데이터 간 관계를 파악하며 새로운 이론과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학생 교육과 일반인 학습에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기업은 인공지능 기반 언어 모델을 사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품질을 개선하고 있다. 다만 가짜뉴스 등 윤리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일자리 대체 문제 등이 고려돼야 한다.
③ 지속가능한 항공유…탄소 배출 줄인 항공유 올해 3억~4.5억ℓ 생산
세 번째는 SAF(Sustainable Aviation Fuel)라고 불리는 지속가능한 항공유다. 항공산업은 연간 전 세계 CO2 배출량의 2~3%를 차지하며, 장거리 비행에는 고밀도 연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까지의 배터리 기술 등으로는 대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매우 고가의 항공기를 모두 폐기하고 다른 에너지 기반 항공기로 교체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현재의 생물학적·비생물학적 자원에서 생산되는 SAF가 대안으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 SAF는 이산화탄소로 만든 합성가스로 피셔·트롭슈 공정을 통해 합성할 수 있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박테리아를 대사공학적으로 개량해 폐목재 등에서 얻을 수 있는 포도당을 원료로 항공유를 생산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에 따르면 2022년도 SAF 생산량은 2021년 생산량의 3배인 최소 3억ℓ(낙관적으로 4억5000만ℓ)로 파악되고 있다.
④ '유해균 박멸' 맞춤형 파지…의학·농축산 분야서 혁신적 역할 기대
네 번째는 맞춤형 파지(phage)다. 박테리아를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파지라고 한다. 파지는 특정 유형의 박테리아를 선택적으로 감염시켜 죽일 수 있으므로 복잡한 마이크로바이옴 내에서도 유해균이나 질환을 유발하는 개별적인 박테리아 종을 공격하게끔 디자인해 질병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특히 항생제 오남용에 따라 세계적으로 상황이 심각한 항생제 내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또 원하는 박테리아의 특성을 변화시키도록 조작해 치료물질을 생산하거나 특정 약물에 더욱 쉽게 반응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특히 파지가 더욱 정교하고 원하는 특성을 갖추도록 조작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의학·농림축산 분야 등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⑤ 정신건강 위한 메타버스…우울증·불안증 환자용 비디오 게임
다섯 번째는 정신건강을 위한 메타버스다.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은 이미 정신건강 치료에 활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플랫폼은 환자 참여도를 높이고 정신건강 문제의 편견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이미 몇 개의 기업은 우울증과 불안증을 치료하기 위한 비디오 게임을 만들었다.
가상현실 기반의 명상으로 복지를 증진하고자 하는 시스템뿐 아니라 먼 거리에 있는 참가자 간 사회적·감정적 연결을 더욱 증대시킬 수 있는 인터페이스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여기에 비침습적인 신경과학기술이 융합돼 사용자의 감정 상태에 맞게 피드백을 제공할 수도 있는데, 헤드셋에 전극을 장착해 감정을 측정하고 그 상황에 맞는 음악을 재생하도록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치료가 어려운 우울증을 직접적인 뇌 자극으로 치료하는 등 치료적 신경과학기술과 융합될 것으로 예측된다.
⑥ 웨어러블 식물센서…마이크로 크기 바늘 센서로 농작물 관리
여섯 번째는 웨어러블 식물 센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2050년 전 세계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식량 생산이 70% 증가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작물은 토양 검사와 시각 검사를 통해 모니터링이 돼왔는데 비용이 많이 들고 상당한 시간과 노동력이 요구된다. 최근에는 경작지 전체 스캐닝 대신 개별 식물을 모니터링해 건강 상태를 더 정확하게 추적하고, 작물의 성장을 최적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마이크로 크기의 바늘 센서를 식물에 장착해 식물의 수분 및 영양소 함량, 그리고 다양한 생리학적 지표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⑦ 공간 오믹스…세포 구조 정교하게 관찰해 질병 원인 추적
일곱 번째는 공간 오믹스다. 공간 오믹스는 생물학적 과정의 무엇, 어디, 언제를 분자 수준에서 매핑하는 새로운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고급 이미징 기술과 DNA 시퀀싱의 특정성과 해상도를 결합해 이전에 관찰할 수 없던 세포 구조와 생물학적 현상을 아주 상세하고 정교하게 볼 수 있게 됐다. 이 기술은 질환의 원인을 이해하고 치료법을 제시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⑧ 신경 전자기기…치매·자폐증 치료법 개발에 응용
여덟 번째는 유연한 신경 전자기기다. 최근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Machine Interface·BMI)는 센서 하드웨어가 뇌가 생성하는 전기 신호를 캡처하고, 알고리즘이 이러한 전기 신호를 컴퓨터가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바꿔준다.
BMI와 유사한 시스템은 이미 뇌전증(간질) 환자 치료와 신경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BMI는 단단한 재료로 만들어져 장기적인 흉터를 유발하고 상당한 불편함을 줬다.
이에 생체 호환성 재료 위에 뇌 인터페이스 회로가 올려진 유연한 신경 전자기기를 개발해 흉터와 센서 오류를 줄이며, 수백만 개의 뇌 세포를 한 번에 자극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치매와 자폐증 치료법 개발에도 응용되고 있다.
⑨ 지속가능한 컴퓨팅…데이터 센터 냉각제 사용해 난방 공급
아홉 번째는 지속가능한 컴퓨팅이다. 기후위기 등 전 지구적 환경 위기가 악화하는 가운데 구글 검색, 이메일, 메타버스, 인공지능 등 데이터 의존 사회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센터는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된 전기의 약 1%를 소비하고 있다.
이에 탄소중립 에너지 데이터센터를 구현하기 위해 물이나 유전체 냉각제를 사용하는 액체 냉각 시스템을 활용하고, 남은 열은 공간 난방, 온수 난방 및 산업 공정 등에 재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 스톡홀름시는 데이터센터의 폐열을 이용해 주택을 난방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의 에너지 관리 최적화는 매우 중요하며, 구글 데이터센터에서 최대 40%의 에너지 소비 감소를 달성한 바 있다.
⑩ 인공지능 기반 헬스케어…취약 국가 의료 서비스 개선
마지막 열 번째는 인공지능 기반의 헬스케어다. 기계학습, 심층학습, 생성형 인공지능, 대형 언어 모델 등을 포함한 인공지능 기술은 의료 분야에서 변혁을 일으키고 있고 이는 점점 더 가속화될 것이다. 인공지능 등 데이터 분석 기술을 이용해 환자의 진료 요구에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가능하고 병원시설 활용의 최적화가 가능하다. 이렇게 인공지능 기반 헬스케어는 신약 개발, 약물·약물 상호 부작용 예측뿐 아니라 다양한 센서를 이용해 의료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함으로써 치료 기법의 개선, 진료 대기 시간 감소, 의료 서비스 접근성 개선 등이 가능해진다. 특히 의료 기반이 취약한 국가의 의료 서비스 개선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023년도 10대 떠오르는 기술을 보면 크게 인공지능, 지속가능, 건강이라는 3개 키워드 분야 기술로 분류할 수 있다. 필자가 창시한 '시스템대사공학'이 2016년도 10대 떠오르는 기술 중 하나로 선정됐을 때 함께 꼽혔던 기술을 보면 블록체인,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오픈 인공지능 등이 있다. 이 모두가 3~7년이 지난 지금 우리 생활과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세상을 바꿀 기술 분야에서 원천기술과 대체불가 기술을 확보해 인류의 건강과 기후위기 대응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겠다.
[이상엽 KAIST 특훈교수 연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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