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도 ‘스낵컬처’가 뜬다?…‘방치형 RPG’ 잘 나가는 이유
조작 없이 성장 재미 느끼는 방치형 게임 ‘두각’
픽셀히어로·달토끼키우기 등 국내 시장서 선전
짧은 콘텐츠 소비 익숙한 MZ취향, 인디게임사도 방긋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MMORPG 중심이었던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 ‘방치형 RPG’가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복잡한 조작 없이 자동으로 캐릭터가 성장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스낵컬처’(시간·장소 구애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에 익숙한 젊은 이용자들 사이에서 시장을 키워가고 있다.
방치형 RPG로 인디게임사들 매출 ‘쑥’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인디게임사 루트쓰리게임즈는 지난해 11월 론칭한 ‘데미갓 키우기’로 7개월 여만에 누적 매출 21억원을 돌파했다. 누적 다운로드 수는 40만건 이상, 하루 접속자(DAU)는 1만명 이상이다. 설립 2년차의 비수도권(전라북도 전주) 소재 인디게임사로는 의미있는 성과다. 최근엔 국내 중견 게임사 등로부터 투자 제의를 받기도 했다.
‘데미갓 키우기’는 방치형 RPG로, 게임 조작에 따른 이용자들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요소에 집중했다. 방치형 게임은 몇 가지 세팅만 해놓으면 ‘알아서’ 다양한 아이템 파밍(습득)과 스킬을 사용하는 등 이용자들에게 별다른 조작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과거 국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다마고치’(반려동물 육성 게임)와 비슷하다.
루트쓰리게임즈는 이같은 초반 성과에 힘입어 오는 9월 해외 론칭도 계획하고 있다. 일본, 대만, 미국이 대상이며 현재 글로벌 퍼블리셔(유통사)까지 확정했다. 해외 서비스를 포함한 이 회사의 올해 매출 전망치는 50억원 이상이다.
김건욱 루트쓰리게임즈 대표는 “방치형 게임은 아이디어와 개발 속도가 중요해 애자일(개발과 피드백을 동시에 받는) 방법으로 빠르게 개발하지 않으면 성과 내기가 어렵다”며 “‘스낵’처럼 즐기러 왔다가 오래 머무는 게임을 지속적으로 개발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치형 게임의 성과는 최근 국내 모바일 앱 마켓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방치형 RPG ‘픽셀히어로’(유조이게임즈)는 9일 기준 앱스토어에서 MMORPG ‘나이트크로우’(위메이드)와 ‘오딘:발할라 라이징’(카카오게임즈)을 제치고 매출 2위에 올랐다. 매출 10위 안에는 또 다른 방치형 RPG ‘탕탕특공대’(하비)도 8위에 올라와 있다.
에이블게임즈가 개발한 ‘달토끼 키우기’도 게임 출시 1년9개월여만에 누적 매출 250억원 이상을, 로드컴플릿의 ‘레전드 오브 슬라임’ 역시 7개월간 700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되는 등 방치형 RPG들의 성과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엔 넷마블(251270)이 오는 9월 방치형 게임 ‘세븐나이츠 키우기’ 론칭을 발표하는 등 대형 게임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국내 중견 게임사 관계자는 “대형 게임사들도 투자나 퍼블리싱 계약 등을 통해 방치형 RPG를 내는 인디게임사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내에서 상당히 좋은 성과를 내는 중소 게임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전체 모바일 RPG 시장에서 방치형의 비중도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모바일 시장 데이터 분석 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방치형 RPG 시장은 전체 모바일 RPG 시장 가운데 약 3%(인앱 구매 기준)를 차지했다. 2020년(1%)부터 매년 비중을 키워가고 있는데, MMORPG 쏠림현상(약 80%)이 심한 국내 모바일 RPG 시장에선 의미 있는 움직임이다.
방치형 게임의 인기는 간편함과 짧은 콘텐츠 소비에 익숙해진 MZ 이용자들이 늘어난 것도 한 이유로 꼽힌다.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하는 MMORPG와는 상반되는 매력이다. 김정민 넷마블넥서스 대표 역시 최근 신작 발표회에서 “최근 유튜브 등을 보면 압축적으로 즐기는 ‘스낵컬처’가 게임계에서도 유행하고 있는데, 이중 하나가 방치형 게임”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게임사 입장에서도 접근이 쉽다. MMORPG 같은 대규모 자금과 개발기간이 소요되는 장르가 아니어서 빠르게 게임을 만들고 이를 수익화할 수 있어서다. 자금력이 부족한 인디게임사들 중심으로 개발이 활발한 이유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일부에선 방치형 게임이 이미 ‘레드오션’화 됐다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틈새시장으로 충분한 매력이 남아있다”며 “간결함과 간편함을 기반으로 하되, 좀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과 기술을 갖춘 방치형 게임들도 나온다면 시장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유 (thec9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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