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행사 가능성 제기된 ‘민주유공자법’ 쟁점은
유공자 배제 요건·보훈심사위 역할 등 주요 쟁점
민주유공자 예우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이 이념 전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이 어떤 사람들을 유공자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이견 탓이다. 국민의힘은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유공자가 될 수 있냐며 여론전에 나섰고 민주당은 전태일 열사가 유공자가 아니라는 것이냐고 맞서고 있다.
민주유공자법 이제 상임위 소위 통과 상태
민주당은 지난 4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에서 민주유공자법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향후 입법 성사까지는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장은 지난 5일 광주 망월동 민주열사묘역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36주기 추모식에서 “(민주유공자법이) 전날 법안소위를 통과했으나 이제 시작”이라며 “야당이 결단을 내리고 모두가 힘을 모아 오는 20일 국회에서 해당 법 통과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원들은 지난 4일 소위 의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주류인 586 운동권 세력들이 자기편만을 유공자로 지정하기 위한 ‘내 편 신분 격상법’이자 ‘가짜유공자 양산법’”이라며 입법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6일 CBS라디오에서 민주유공자법에 대해 “주무장관도 내용을 알 수 없는 법안을 어떻게 통과시키나, 한마디로 깜깜이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또 “보훈부 장관을 그만두더라도 당연히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산 혁명 기도해도 민주유공자” vs “법률에서 원천 배제, 문제없다”
여권은 민주유공자법이 ‘가짜 유공자’를 양산한다며 대표적인 예로 공산 혁명을 기도한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 경찰 7명을 숨지게 한 부산 동의대 사건을 언급한다. 법안에 따르면 사건 관련자들이 민주유공자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런 결과를 받아들일 국민은 없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유공자법은 현행법에 따라 유공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을 민주유공자로 인정하는 내용이다. 국가유공자, 4·19혁명유공자, 5·18민주유공자와 별개로 민주유공자라는 지위를 추가로 만들자는 것이다.
법안은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보상법)’과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부마항쟁법)’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된 사람 총 911명에게 민주유공자 신청 자격을 부여한다. 이들이 보훈부에 민주유공자 등록을 신청하면 보훈부 장관은 보훈부 산하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정부는 이들 민주유공자에 대해 의료지원, 양로지원 등을 하도록 했다.
민주화보상법과 부마항쟁법으로 보상받은 관련자 중에서는 여당 주장대로 남민전 사건과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민주당은 민주유공자법이 시행되더라도 이들에게 민주유공자 지위가 담보되지는 않는다고 반박한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5·18민주유공자 예우 및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5·18보상법)’과 같은 유공자 관련 현행법들은 이미 국가보안법·형법 등 일부 법률을 위반해 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유공자 지위 부여를 막고 있다. 민주유공자법도 이 규정을 그대로 따왔다. 민주당은 이에 따라 남민전 사건과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은 원천적으로 배제된다고 강조했다.
“보훈심사위에서 공적 심사하라” vs “예우할 만한 활동했는지 판단 불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유공자법은 유형만 145개가 되는 전례 없는 법”이라며 “공정한 선정과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김영삼(YS) 정부에서 정권 반대 투쟁에 가담한 인물 등이 어떻게 민주유공자 자격을 가지냐는 목소리다.
야당은 보훈부가 민주유공자 신청을 받으면 보훈부의 보훈심사위가 공적을 심사하면 된다고 맞선다.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한 민주화운동이라면 보훈심사위가 이를 걸러낼 수 있는 일종의 ‘안전 장치’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보훈심사위 심의를 거쳐 보훈부 장관이 최종적으로 민주유공자 지위 부여를 결정하는 것”이라며 “여권의 우려는 과하다”라고 했다.
보훈부는 911명의 상세한 공적 기록을 미리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안 시행 시 보훈심사위는 속수무책으로 요건 심사에 돌입할 수밖에 없으니 부처 차원에서 어떤 민주화운동을 유공자 예우 대상으로 할지 사전에 분류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공적 기록이 개인정보여서 신청자 동의 없이 정보를 입수할 방법은 없다고 보훈부는 주장한다. 보훈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보훈심사위에는 신청자가 145개 중 어떤 활동에서 어떤 역할을 한 것인지를 판단할 장치가 없다”며 “적어도 4·19혁명이나 5·18민주화운동처럼 어느 국민이 보더라도 유공자로 인정할 만한 활동이어야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민식 장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을 받은 사람들은 피해자들이다. 이들을 유공자로 예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이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활동을 했고 그 활동이 우리 사회가 유공자 예우를 할 만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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