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우정

한겨레21 2023. 7. 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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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이 결정되던 2017년 3월31일, 나는 영국 리버풀에 있었다. 마침 먹구름 사이로 무지개가 나타났다. 당시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서 전세계의 녹색당 정치인과 활동가들이 모이는 ‘글로벌그린스’(세계녹색당) 총회에 참석했다. 지구적 연대를 명시한 녹색당 강령을 읽고 당원이 되기로 했을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2023년으로 11년 된 한국 녹색당보다 세 배는 긴 역사를 가진 녹색당들,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이 가득해질 세월 동안 한 정당에서 활동한 당원들, 제도 정치권 내 녹색당 의원도 장관도 있으면서 “이렇게 모이니 소수가 아니라 외롭지 않다”고 기뻐하던 정치인들을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통과로 인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때 생태와 민주주의, 다양성과 평화를 위한 가치를 재확인하며 의지를 다졌다.

한국에 모인 세계 각지 녹색당들

글로벌그린스 총회의 2023년 개최지는 한국. 6월8일에서 11일까지 인천 송도에 84개국에서 온 700여 명이 모였다. 윤석열 정부의 극우 행보가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며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고, 옆 나라 일본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결정해 태평양 인근 국가들을 분노케 한 시점이다. 러시아의 침략전쟁과 생태학살, 성소수자 탄압에 열을 올리는 우간다의 상황과 가속화하는 기후위기까지 이번 총회에서 다룬 의제 가운데 시급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선거제도 개혁과 인공지능(AI) 규제, 지역정치 같은 논의도 빠지지 않았다.

심각한 사안을 논의하는 와중에도 서로를 응원하는 기운이 가득했다. 글로벌그린스 총회는 그런 곳이다. 녹색정치를 꿈꾸는 이들이 국경을 넘어 연결돼 있음을 악수와 포옹, 터져나오는 웃음으로 확인하는 장. 여러 언어 속 얽히는 말들을 섬세하게 조율하며 정당 간 우정이 어떤 외교를 가능케 할지 논의하는 장. 축복하고 환대하는 정치를 상상할 역량을 키우는 배움의 장. 정치에 좋은 감정을 갖기 어려운 시대, 국익과 민심조차 대변 못하는 정치권에 환멸을 느껴도 정치를 포기하면 안 된다는 희망을 준다.

총회 기간 중이던 6월10일, 행사장 한편에서 한국 녹색당이 창당 이래 첫 전당대회를 열었다. 오프닝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해바라기를 든 당원들이 자리를 박차고 무대 앞으로 달려간다. 레게음악에 이끌려 행사장에 들어온 외국 당원들과도 어깨동무하고 짝쿵짝쿵 리듬에 춤춘다. 축하 방문을 한 진보정당 대표들도 예외는 아니다. 각자의 고단한 싸움은 잠시 잊고 오로지 환희만이 가득한 얼굴로 춤추는 사람들을 보니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정치적 감정>(글항아리 펴냄)에 쓴 표현이 떠올랐다. “진정으로 느끼고 상상하는 시민의 엉뚱하고 예측할 수 없는 휴머니티”가 여기 있구나 하고.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지역당의 자기소개였다. 첫 타자인 전남녹색당은 모내기 철이라 많이 참석하지 못한 당원들을 기억하며 모내기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그 뒤로 탈핵, 소싸움 반대, 제2공항 반대,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처럼 각 지역이 집중해 대응하는 현안들이 소개됐다. 그 내용만으로 한국의 생태 재난 지도를 그릴 수 있을 듯했다.

버텨온 11년, 더 깊은 연결망을

이날 한국 녹색당의 역사를 돌아보니, 척박한 정치 문화와 제도 속에서 생태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으로 11년을 버텨온 게 새삼스러웠다. 잘할 때도 못할 때도 있었지만 존재하기를 포기 않고 계속해온 것을 축하하며 결의를 나눴다. 나 또한 다가오는 정치적 시간에 녹색정치의 다채로움과 빛나는 생명력이 더 많은 이의 마음을 밝혀주길 간절히 바랐다. 총회 이후 한국과 일본의 녹색당은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새 연결망을 만들어내는 녹색정치가 더 깊고 풍요롭게 자라나도록 소중한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김주온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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