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중 하나는 겪는 '직장 내 괴롭힘'… 65%는 그냥 참았다

피해자 절반 "괴롭힘 수준 심각했다" 응답
여성·저임금·비정규직일수록 피해 더 심각
'보복 두려워' 회사나 공공기관 신고 5%↓

직장갑질119 설문조사 결과 직장인 세 명 중 한 명꼴로 최근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피해자 절반은 '심각한 수준'의 괴롭힘을 겪었다고 답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장이 회사에서 혀로 입천장 차는 소리를 내며 개 부르듯 저를 부릅니다. 회식에서도 계속 '바보'라고 하거나 "야" "니"라고 부르고요. 어깨나 등을 손으로 치기도 하고 장난으로 "죽여 버릴까? 죽고 싶어?"라는 말까지 합니다.
2023년 7월 직장갑질119 카카오톡에 올라온 '직장 내 괴롭힘' 사례

이달 16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4년을 맞지만, 여전히 직장인 셋 중 한 명은 직장에서 모욕과 폭언 등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 절반은 심각한 수준의 괴롭힘을 당했고, 피해자 대다수는 그저 참고 견디거나 퇴사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플릭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33.3%였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전인 2019년 6월 조사 결과(44.5%)보다는 10%포인트 이상 줄었지만, 여전히 적잖은 수치다.

피해자 2명 중 1명(48.0%)은 본인이 겪은 괴롭힘 수준이 심각했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 낮은 직급, 작은 일터, 저임금, 비상용직, 비사무직 등 특성을 가진 '취약 노동자'일수록 괴롭힘 수준이 심각했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예컨대 월 임금이 500만 원 이상인 피해자들은 32%가 심각한 괴롭힘을 당한 반면, 월 임금 150만 원 미만 피해자들은 그 비율이 60%였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죽고 싶어요. 가해자들이 매일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걸 매분 매초 봐야 하는 게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고충처리위원회에 제가 신고한 피신고자(괴롭힘 가해자)와 고충처리위원장이 회식에서 위원회를 소재로 농담을 하며 박장대소했다더군요."
2023년 4월 직장갑질119 카카오톡에 올라온 '후속 조치' 경험담

그럼에도 피해자들은 적극적 대응을 못 하고 혼자 고통을 삭이는 경우가 많았다.

'괴롭힘에 대한 대응법'을 묻는 질문(중복응답 가능)에 피해자 셋 중 둘(65.5%)은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답했다. 회사를 관둔 경우도 27.9%나 됐다. 혼자 또는 동료와 항의한 경우는 23.7%였다. '회사나 노조에 신고'(4.8%)하거나 '고용노동부 등 국가기관에 신고'(2.4%)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는데,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대응을 해도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69.5%),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22.2%) 등이 꼽혔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체 건강이 악화한 경우는 20.1%, 정신 건강이 악화해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앓은 경우는 37.8%였다. 자해 등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했다는 경우도 열 명 중 한 명(9.3%)꼴이었다.

직장갑질119 대표 권두섭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4주년이 됐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 기대만큼 줄지 않고 있고 특히 비정규직, 작은 사업장 등 일터 약자들은 더 고통받고 있다"며 "반쪽짜리 금지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5인 미만 사업장, 원청 등 (법 적용) 사각지대를 없애고 관리감독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