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소환된 ‘사드’로 다시 갈라지는 성주 민심
사드철회대책위 “안전하다는 정부 발표, 엉터리”…규탄집회 계속 이어가
(시사저널=박치현·김시훈 영남본부 기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둘러싼 괴담과 과학에 대한 진실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7년 전 '사드 홍역'을 치른 경북 성주군이 또 술렁이고 있는 것이다. 사드가 안전하다는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최근 발표되면서다. 환경부는 공신력 있는 기관(공군·한국전파진흥협회)과 사드 기지 인근(5개 지점, 40여 회)에서 측정한 전자파(1㎡당 0.018870W)가 인체 보호 기준(10W)의 0.189%(53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하지만 지역 민심은 둘로 나눠졌다. 정치를 믿을 수 없다는 측과 이른바 '사드 괴담'은 드디어 끝났다는 측으로 양분됐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신념만 믿고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이 이웃을 갈라놓고, 여기에 정치권이 가세해 판을 키우는 게 우리 사회의 '고질'이라고 지적했다.
시사저널이 7월1일 사드 기지가 있는 경북 성주군을 찾았을 때 참외 수확이 한창이었다. 참외농사 10년 차인 주민 A씨는 실명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취재에 응했다. 찬반 논쟁에 끼어들기 싫어서라고 했다. A씨는 "사드란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전자파가 위험하지 않다는 정부 발표를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참외농사를 잘 지어왔기 때문"이라며 "작년에는 1억75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도 참외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사드 기지 인근에 사는 B씨는 "동네가 다시 들썩거리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조용해질 것이다. 참외농사는 풍년인데 민심이 갈라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사드 괴담에도 참외농가 수익은 매년 상승세
성주군에 따르면 사드 괴담이 확산됐던 2016년 성주 참외 매출은 3710억원까지 떨어졌다가 이듬해부터는 4000억원대 후반으로 회복됐다. 그리고 2019년부터 4년 연속 5000억원대를 유지했고 지난해에는 576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1970년 참외농사를 시작한 이후 52년 만에 가장 많이 팔린 수치다. 김성우 성주군의회 의장은 "환경영향평가에서 문제가 없다고 나온 만큼 '사드 참외'라는 용어를 더 이상 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국 참외 생산량의 80%는 성주 참외다. 맛과 당도, 품질이 뛰어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덕분에 참외 부농(富農)도 늘고 있다. 성주군 참외농가 3841호의 44%(1713호)는 1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고, 지난해 가장 돈을 많이 번 농가의 매출은 9억7300만원을 기록했다. 성주로 들어오는 귀농 참외 농부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7년에는 106호가 귀농했고, 2021년엔 148호가 성주에 정착해 참외농사를 짓고 있다. 30·40대 청년 농가도 같은 기간 매년 20~40여 가구 늘었다. 성주군 관계자는 "먼저 들어온 젊은 귀농인들의 성공 사례를 보고 참외농사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성주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주 귀농협회 김경민 회장은 대구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012년 이곳에 정착했다. 참외농사로 연간 2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며 자타가 인정하는 성공한 귀농 농부다. 김 회장은 "귀농인들이 사드 때문에 망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사드 전자파에 피해를 본 참외농가는 없다. 실체도 없는 사드 논쟁을 제발 중단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드 안전성을 못 믿겠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석주 사드철회성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사드 레이더가 물체를 탐지·추적할 때 전자파가 세게 나오는데 그때를 피해서 측정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휴대폰보다 전자파가 적게 나와 인체 피해가 없다는 정부 발표를 누가 믿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드 기지 인근의 소성리 이장을 겸하고 있는 이 위원장은 "사드 기지 반경 3km 내 4개 마을(성주군 소성리·월곡리, 김천시 노곡리·월명리) 주민 300여 명의 직접 피해자는 외면하고, 정부와 언론들은 피해가 '1'도 없는 참외를 들고 나와 사드 괴담 타령을 하며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소성리에 사는 한 주민도 "영향평가에 참여한 주민 대표가 누군지 공개하지 않고, 사드 기지에서 멀고 가까운 곳의 지역별 측정값을 제시하지도 않는데 (정부 발표를) 어떻게 믿느냐"고 반문했다. 사드철회공동대책위는 매주 화·목요일에 사드 기지 공사 차량과 미군부대 유조차의 진·출입을 저지하고 있다.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은 50∼60명, 이들은 참외가 아닌 사람이 사는 세상이 올 때까지 규탄집회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지 주변 주민 납득시킬 정부 포용력 필요"
이렇듯 2023년 7월 현재 성주 민심은 뚜렷하게 갈렸다. 문제의 발단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7월 성주군 초정면에 사드 배치가 결정됐다. 그 무렵 우리 사회에는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으로 '불신의 골'이 깊게 패어 있었고, 앞서 경험한 광우병 사태(2008년)는 괴담에 불을 지폈다. '사람을 죽이는 사(死)드' '참외를 썩게 하는 레이더 전자파' 등 온갖 소문에 열 받은 일부 농민은 참외밭을 갈아엎고, 삭발에 혈서까지 쓰면서 민심은 흉흉해졌다.
이 과정에서 성주 참외는 명성을 잃었고 농민들은 엄청난 피해를 봤다. 성주에 몰아친 사드 태풍은 한동안 잠잠한가 싶더니 다시 세력을 확장하는 모양새다. 사드가 안전하다는 정부의 최근 발표와 후쿠시마 오염수 논쟁이 맞물리면서 불신은 또 다른 불신을 낳았다. 여노연 성주군의회 의원은 "사드 기지 주변 주민들을 납득시킬 구체적인 자료 공개와 정부의 포용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드는 남한 면적의 3분의 1을 핵미사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방위 포대다. 사드 레이더 전자파가 인체에 위험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전자파가 너무 강할 때는 그럴 수 있지만 무작정 겁낼 일은 아니다"고 말한다. 센 전자파는 인체를 구성하는 원자·분자를 파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마이크로파를 이용하는 사드 레이더 빔이 물체에 직접 닿으면 열 피해가 발생한다. 전자레인지 안의 고기가 마이크로파에 익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사드는 전자레인지처럼 좁은 공간에서 가동되는 것이 아니고, 사드 전자파가 참외를 익혀 버릴 만큼 강력하지 않다"며 "레이더 '제한구역'을 설정하면 빔에 직접 노출되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고 사드는 그렇게 관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안전하다는 정부 발표를) 100% 다 믿을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 관리 비용은 연간 82조원에서 최대 246조원으로 예측됐다(2013년 삼성경제연구소). 사회적 갈등 지수도 OECD 27개국 중 튀르키예에 이어 2번째로 심각했다. 이는 10년 전의 조사인데 대립의 골이 더 깊어진 지금의 갈등 관리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추산된다. 사드는 6년간의 '임시 배치'에서 벗어나 '정식 배치'로의 정상화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사드철회공동대책위와 일부 주민은 결사항전을 예고한 상태여서 지역 내 갈등 해소는 여전히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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