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멍든 메디톡스, 무책임한 보건당국
10여개 경쟁 품목 쏟아져…수출도 '발목'
한 번 실추된 이미지는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메디톡스가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메디톡스는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와의 '간접수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보툴리눔 톡신 제제 '메디톡신'과 '코어톡스(비독소 단백질을 제거해 내성 발현 가능성을 낮춘 보툴리눔 톡신)'에 대한 제조 및 판매중지와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벗어나게 됐다. 앞서 식약처가 행정처분을 내린 건 지난 2020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약처는 수출용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일명 보따리상으로 불리는 국내 수출대행기업을 통해 수출한 것을 두고 '내수용'으로 판단했다.
'의약품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제63조(국가출하승인의약품의 범위)에 따라 보툴리눔 제제를 포함한 백신·항독소·혈장분획제제 등 생물학적 제제는 국가관리가 필요한 의약품으로서 국가출하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수출이 목적인 의약품 가운데 수입자가 요청하거나 식약처장이 정한 품목은 국가출하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 보툴리눔 톡신도 수출용은 국가출하승인 면제 대상이다.
일반적으로 의약품 수출은 수출국가의 로컬 파트너사와 계약을 맺거나 직접 해외에 거점을 두고 자체적으로 수출 및 판매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보툴리눔 톡신 제제는 특이하게도 국내 보따리상을 통해 해외로 수출하는 방식이 관례처럼 자리잡았다.
당시 메디톡스는 식약처의 행정처분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받아들여지면서 정상적으로 제조와 유통, 판매가 가능했지만 이미 시장에서는 다른 보툴리눔 톡신 제제로 갈아타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실제로 메디톡스는 2019년 2059억원이었던 매출액이 행정처분이 나온 2020년에는 1408억원으로 약 650억원 급감하는 타격을 입었다. 같은기간 영업손익도 257억원 흑자에서 371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특히 메디톡스는 2006년 메디톡신을 허가받은 이후 약 15년 간 1위를 지켜왔던 국산 보툴리눔 톡신 시장에서도 밀려났다. 메디톡스의 메디톡신 생산실적은 2019년 1041억원에서 2020년 584억원으로 반토막났다.
물론 메디톡스의 이미지 실추 배경에는 간접수출 논란 외에도 메디톡신에 대한 무허가 원액 사용 및 허가서류 조작 등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의혹의 영향도 있다. 여전히 메디톡신의 품목허가 취소 리스크가 남아있긴 하지만 지난 2012년부터 2015년 사이에 벌어졌던 사건이고 현재 제조생산되는 메디톡신 제품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또 메디톡스가 메디톡신 후속으로 밀고 있는 코어톡스는 아예 관련이 없음에도 이미 다른 경쟁사 제품으로 채워져 시장을 탈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국내 보건당국의 행정처분으로 내수 시장뿐만 아니라 해외 국가들에도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됐고 수출에도 차질이 빚어졌다는 점이다. 메디톡스는 메디톡신을 뉴로녹스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3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었다. 메디톡스 해외 수출액은 2019년 1206억원이었지만 2020년 898억원으로 줄었고 2021년에는 706억원으로 감소했다.
메디톡스가 식약처와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하는 2년 8개월여간 경쟁사의 국산 보툴리눔 톡신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입지를 넓혀나갔다.
휴젤의 보툴렉스는 2019년 587억원이었던 생산실적이 2020년 721억원으로 늘면서 국산 보툴리눔 톡신 시장 1위로 올라섰고 대웅제약의 나보타 생산실적은 2019년 127억원에서 555억원으로 급증했다.
이밖에도 휴온스바이오의 리즈톡스, 파마리서치바이오의 리엔톡스, 종근당의 원더톡스, 한국비엠아이의 하이톡스, 제테마의 제테마더톡신, 이니바이오의 이니보, 메디카코리아의 톡스나인도 생산실적이 대폭 늘었다. 이들 기업 중 종근당, 휴온스를 제외하고 파마리서치, 한국비엔씨, 한국비엠아이, 메디카코리아, 제테마 등 대부분의 기업들이 수출용으로만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허가 받았다.
메디톡스가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벌이는 동안 이들 기업은 똑같은 간접수출 방식으로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해외에 수출해왔다. 식약처가 잇따라 한국비엔씨, 한국비엠아이, 제테마 등을 상대로도 간접수출에 대해 행정처분을 내리긴 했지만, 이미 보툴리눔 톡신 수출 시장에서 메디톡신의 빈자리를 채운 데다가 이번에 메디톡스가 승소하면서 이들 기업은 거의 타격을 받지 않게 됐다.
보건당국이 메디톡스의 발목을 잡는 동안 10개가 넘는 보툴리눔 톡신 제제가 허가 및 출시됐다. 경쟁이 치열해져 메디톡스가 국산 보툴리눔 톡신 시장 1위를 탈환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메디톡스가 무너진 기업 이미지와 매출 피해를 앞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하지만 정작 제동을 건 보건당국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판매정지와 허가취소 등의 행정처분은 기업의 존폐가 걸릴 만큼 막중한 사안이다. 보건당국은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게 행정처분을 결정해야 한다.
권미란 (rani19@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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