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유니온, 교섭 거부한 KBS 지노위에 시정신청

장슬기 기자 2023. 7. 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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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지부 "협의체, 단체교섭 대체할 수 없어"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지부장 염정열·방송작가유니온)가 KBS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시정 신청을 냈다. 그동안 방송작가지부가 방송작가들의 노동자성을 확인 받아왔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공영방송이 방송작가지부를 노동법상 교섭 상대로 인정하지 않거나 방송작가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오는 10일 지노위 판단이 주목된다.

언론노조는 앞서 지난달 15일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 개시 등을 언론노조 KBS본부를 통해 요청했고 KBS는 다음날인 지난달 16일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했다. 방송작가지부의 상급단체인 언론노조는 지난달 20일 KBS 소속 방송작가지부 조합원 65명(KBS 지역총국 조합원 포함)의 교섭 참여를 추가로 통보했다.

언론노조 KBS본부와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가 언론노조와 같은 산별단위 노조이기 때문에 조합원을 합산해 공고하거나 교섭 요구 날짜 차이를 고려해 구분해서 공고해도 된다고 KBS 측에 알렸다. 행정안전부 사례를 보면 산별노조 산하 두 개 지부가 서로 다른 시기에 교섭을 요구할 때 사측은 이를 모두 표기해 공고한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소속 대전지역일반지부가 지난해 9월26일 교섭을 요구하고 10월4일 국가공무직지부가 교섭을 요구하자 행안부는 다음날인 10월5일 두 지부에서 교섭을 요구한 내용을 모두 공고했다.

▲ 서울 여의도 KBS. 미디어오늘 자료 사진

하지만 KBS는 방송작가지부를 제외하고 언론노조 KBS본부의 교섭 요구 사실만 받아들여 지난달 24일 공고했다. 언론노조는 지난달 26일 KBS에 다시 공문을 보내 방송작가지부 교섭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수정 공고할 것을 요구했다. 언론노조는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노조법에 따라 노동위원회 시정요청 절차를 비롯한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KBS가 응하지 않자 언론노조는 지난달 29일 지노위에 시정을 신청했다.

언론노조는 시정신청 이유서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도입된 취지에 비춰볼 때 노동조합 간 명칭, 조합원수 등 현황을 명확히 알 수 있도록 교섭 요구 노조를 공고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안정성을 도모하는 데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사용자가 자의적 판단으로 교섭 요구 노조의 명칭이나 조합원수를 누락할 수 있다고 해석하게 된다면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안정성을 도모하려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제도 도입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언론노조는 KBS가 법에 따른 기재 내용을 모두 기재해야 하는데 방송작가지부의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은 점은 '공고 의무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KBS가 혹시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취지에서 공고를 하지 않았다면 이 역시 잘못된 판단이라며 방송작가가 KBS의 지휘 감독 관계에서 노동 대가로 임금을 받기 때문에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임을 주장했다.

▲ 언론노조가 KBS에 요구한 공고 내용. 이미 교섭 요구를 공고한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과 방송작가지부 조합원을 합산해서 공고하거나(위), KBS본부와 방송작가지부를 구분해 공고(아래)하는 방식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자료=언론노조가 지노위에 제출한 시정신청 이유서

방송작가 노동자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언론노조는 “방송 산업 내 다수 종사자들의 근무 특성(단기간, 단시간, 저임금 비정규직 등)에 비춰 방송작가 일부가 겸업을 하고 있어 특정 사업자에의 소득 의존성과 전속성이 다소 약한 경우가 있다 해도 이는 방송 산업 내 비정규직 등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며 겸업 여부가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KBS가 그동안 방송작가들의 교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방송작가특별협의체(협의체)'를 대안으로 제안한 적 있는데 이 역시 교섭 공고 의무를 위반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협의체는 KBS·MBC·EBS와 산별 협약을 체결해 구성했다. 언론노조는 “협의체는 단체교섭을 대체할 수 없으며 KBS가 방송작가에 대한 노동조합법상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했다.

▲ 방송작가유니온. 사진=방송작가유니온 페이스북

언론노조는 “방송작가지부 조합원들이 단협을 통해 개선하고 싶은 게 원고료(임금) 인상, 기획료 지급, 심야근무 시 교통비 지급, 근무 시 식대 지급, 결방·순연에 대한 보전책, 업무 범위 설정, 해고 관련 정당한 절차 마련 등인데 이는 종속 관계에서 일하는 개별 조합원(방송작가)들이 혼자 요구해 개선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며 “원고료 인상 이야기만 꺼내도 계약이 해지될까 전전긍긍하는 게 현실”이라고 단체교섭 필요성을 주장했다.

한편, 지난 4일 방송작가지부는 성명에서 KBS가 지역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비판했다. 방송작가지부에 다르면 지난해 8월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소속 지역국과 작가 이름을 밝히라며 노동자성을 조사하는 내용이었다. 방송작가지부와 면담에서 KBS는 노동자성이 있으면 시정하려 했다며 설문조사 목적을 밝혔고 이에 방송작가지부가 항의해 조사가 무산됐다.

방송작가지부는 “KBS가 노동자성을 시정 대상으로 여긴다는 게 드러난 사건”이라며 “노동자처럼 일한다면 근로계약을 맺으면 될 일이고 교섭도 마찬가지다. 방송작가는 노동자가 맞으니 KBS는 속히 교섭 요구를 받아들이면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5일 방송작가지부는 <기획기간 내내 일했는데 고작 6만원?>이란 성명에서 기획 기간은 프로그램 1회가 나가기 전까지 프로그램 전체를 준비하는 기간인데 이 기간 동안 방송작가 노동이 무급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회의, 자료 조사, 섭외, 답사, 사전 촬영, 기획안 작성 등 중요한 업무를 하지만 방송작가 임금 지급 기준이 프로그램 송출인 관행 탓에 실제로 작가들은 임금을 받지 못한다.

방송작가지부는 “한 작가 제보에 따르면 KBS에서 2주 동안 강도 높은 기획 업무를 하고도 손에 쥔 돈은 단돈 6만 원”이라며 유노동무임금 관행 철폐 등을 위해 KBS와 단체교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노위는 오는 10일 언론노조의 시청 신청에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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