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늘자 비행기 內 사건사고 급증… 항공사들 대응 골머리
지난달 30일 경기도 부천시 부천대 내에 마련된 제주항공의 승무원 훈련장. 훈련복을 입은 신입 승무원 20여명이 비행기 내부를 본떠 만든 훈련장에서 승객과 승무원으로 역할을 나눠 실습에 돌입했다. 이날 실습은 기내에서 난동을 부리는 승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내 보안 실습이었다.
승객 역할을 맡은 한 교관이 자신의 자리가 비좁다며 비어 있던 비상구 앞 좌석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승무원들은 자리로 돌아가 달라고 안내하는 한편 “한 승객이 이상 행동을 보이고 있으니 주의해서 지켜봐달라”고 정보를 공유했다. 이윽고 잠잠해지는 듯하던 교관은 다시 한번 비상구 앞 좌석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를 제지하는 승무원과 입씨름을 벌이기 시작했다. 교관이 점점 언성을 높이며 폭언을 하기 시작하자, 승무원들은 해당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하는 한편 기내 지시를 불이행하고 승무원에게 위해를 가하고 있으니 제압하겠다는 경고문을 낭독했다. 이어 승무원 4명이 달라붙어 교관을 제압하고, 기내에 비치된 올가미형 포승줄로 두 팔을 뒤로 돌려 묶어서 비상구와 멀리 떨어진 빈 좌석에 앉혔다.
지난달 19일 필리핀 세부에서 인천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여객기 내에서는 실제로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다. 한 10대 승객이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난동을 부리며 출입문을 열려고 시도하다가 제압됐다. 이 승객은 비행기에 타기 이틀 전에 필리핀 현지에서 마약을 투약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나항공에서도 지난 5월 제주공항을 출발한 여객기가 대구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비상구 좌석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이 비상구를 열어 200m가 넘는 상공에서 비상구 문이 열리는 대형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훈련 절차와 당시 상황이 큰 차이가 없다”며 “상황이 극한까지 치달을 경우 기내에 비치된 테이저건도 사용하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이날 실제 테이저건 발사 훈련은 이뤄지지 않았다. 제주항공은 여객기 1편당 승무원 4명이 탑승하는데, 남성 승무원 비율은 전체의 10% 선이다. 이 때문에 승무원들만으로는 성인 남성 승객의 기내 난동을 제압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해외여행과 함께 다시 늘어나는 기내 난동 행위
해외여행이 재개되면서 항공기 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도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항공기 내에서 발생한 불법 행위는 2018년 91건, 2019년 95건에 달했다가 2020~2021년 20여건 정도로 줄었고, 2022년 36건, 올해는 1~4월 25건이 발생했다.
이런 사건사고들에 대한 국내 항공사들의 대응은 전반적으로 비슷하다. 처음에는 구두로 경고하고, 소란이나 난동 수준이 올라가면 포승줄 등을 동원해 제압에 나서는 식이다. 테이저건도 기내에 비치돼 있지만 사용 사례는 많지 않다. 2016년 중소기업 2세 임모씨의 기내 난동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대한항공은 이를 계기로 남성 승무원 1명을 의무적으로 탑승시키고, 승무원들에게 테이저건 사용을 적극 권장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발사 건수는 2020년 1건에 그쳤다.
기내 난동에 대한 국내 사법기관의 처벌 수준은 집행유예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이다. 대한항공에서 난동을 피웠던 임씨는 이후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원, 200시간의 사회봉사 활동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8월 제주행 항공기에서 아기가 울자 시끄럽다며 아기 부모에게 폭언을 퍼붓고, 아기 아버지의 멱살을 잡아채고 침을 뱉은 40대 남성 역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5월 아시아나항공에서 비상구를 개방한 승객은 항공보안법에 따르면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다만 전례가 없어 실제 처벌 수준은 미지수다. 당시 개방된 비상구 수리 비용이 6억4000만원에 달한다고 전해졌고, 아시아나항공이 이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아직 조사 중이기 때문에 조사 결과가 나와야 방침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도 기내 사건사고 늘어… 1억원 가까운 과태료 때리는 美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건사고가 적지 않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비행기 내에서의 난동 행위는 2021년 835편당 1건에서 2022년 568편당 1건으로 늘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 역시 올해 들어서만 783건의 기내 난동 행위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이전 수준보다 49% 높아진 수치다. 공항의 항공사 라운지 이용이 쉬워지면서 비행기 탑승 전에 술을 마시는 승객들이 늘어났고, 높아진 항공권 가격에 대한 불만, 코로나 기간 항공사 인력이 줄어들면서 늘어난 고장이나 운항 지연도 승객들의 짜증을 불러일으켜 기내 난동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미 FAA는 이런 기내 난동 행위에 대해 ‘무관용 정책’으로 일관하겠다고 2021년 밝혔다. FAA는 사법기관은 아니지만, 사법기관에게 기내 난동 행위에 대한 과태료 부과를 제안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기내에서의 난동 행위 1건당 부과할 수 있는 과태료는 최대 3만5000달러(약 4500만원)지만, 폭언과 승무원 지시 불이행, 비상구 개방 시도 등 여러 건의 난동 행위에 대한 과태료가 중첩될 수 있다. 지난해 4월에는 한 승객에게 역대 최고 액수인 8만1950달러(1억700만원)의 과태료가 매겨지기도 했다. 2021년 7월 아메리칸항공 여객기에 탑승한 이 승객은 승무원의 머리를 폭행하고, 구속된 후에도 승무원과 다른 승객들에게 침을 뱉거나 발로 걷어차고 박치기를 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호주에서는 승무원에게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 승객에게 경찰을 불러 테이저건을 발사하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 3월 호주 퍼스에서 멜버른으로 출발 준비 중이던 여객기에 타고 있던 한 승객은 다른 승객과 자리를 바꿔 가족들과 함께 있겠다며, 원래 자리로 돌아가라는 승무원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입씨름을 벌였다. 이에 승무원들은 경찰을 불렀고, 경찰은 승객이 지속적으로 지시에 따르지 않자 승객에게 테이저건을 쏴서 제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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