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낸 문제 틀리면 20분 무릎 꿇려요”…K직장인 버겁다

홍석재 2023. 7. 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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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직장갑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4년째에도 기막힌 사연
2021년 10월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열린 개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기념행사에서 직장갑질119 활동가가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장이 혀로 입천장 소리를 내면서 개를 부르는 듯한 제스쳐로 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 과자를 억지로 입에 직접 넣어주려고 해서 어쩔수 없이 받아먹기도 했습니다. 어깨나 등을 손으로 친다거나 장난으로 ‘죽여버릴까? 죽고 싶어?’ 이런 말을 합니다. 모든 여직원이 보고 들었어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최근 직장 내 괴롭힘 등을 제보받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담방에 사례의 하나로 소개한 내용이다. 이 상담방에는 “네가 여기서 학벌이 제일 낮으니 나대지 말라고 합니다”, “사장이 낸 업무 관련 문제를 틀리면 20분간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합니다” 같은 기막힌 사연들이 잇따르고 있다.

오는 16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만 4년이지만, 노동 현장에서 겪는 고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천명을 상대로 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 셋에 하나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이 가운데 절반은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지난 1년 이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33.3%에 이르렀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2019년 6월(44.5%)와 견줘 10%포인트 가량 낮아진 수치이지만, 여전히 많은 직장인들이 이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결과는 2021년 조사 결과(32.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직장갑질119 쪽은 “연령대별로는 첫 취업 연령대가 높아져 30대 신입 사원이 늘어나면서 30대의 괴롭힘 경험률은 20대(25.5%) 보다는 18.3%포인트, 40대(32.9%)와 견줘도 10%포인트 이상 높았다”며 “그 외에는 직급이 낮고, 근무시간이 길수록 괴롭힘 경험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괴롭힘 유형으로는 ‘모욕·명예훼손’(22.2%)가 가장 높았고, ‘부당지시’(20.8%) ‘폭행·폭언’(17.2%) ‘업무외 강요’(16.1%) ‘따돌림·차별’(15.4%)이 뒤를 이었다.

피해를 당해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괴롭힘을 당했을 때 대응 방법’에 대해 물어본 결과(중복 응답 가능),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는 답이 65.5%로 가장 높았고, 아예 ‘회사를 그만두었다’(27.9%)는 이들도 많았다. ‘개인 또는 동료들과 항의했다’는 답은 23.7%에 그쳤다. 피해자 가운데 상당수는 ‘신고해도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며 신고를 포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69.5%가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라고 답했고, 22.2%는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피해자 열에 하나 꼴로 괴롭힘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이같은 심각한 상황에 빠진 이들 가운데 30대(15.2%)가 가장 많았고, 고용형태로는 비정규직(10.9%)이 정규직(8.2%)보다, 비사무직(10.3%)이 사무직(8.4%)보다 더 많았다. 이에 대해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어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간접고용,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노동자 처럼  애초 법의 보호조차 받을 수 없는 등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며 “관리감독과 처벌을 강화하고, 형식적인 예방 교육이 아니라,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9일부터 15일까지 전국 만 19살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경제활동인구조사 취업자 인구 비율 기준에 따라 조사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은 ±3.1%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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