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수능 논란 속 ‘차별점 부각’…中·美 대입 시험 어떻게 다른가 [세계는 지금]

윤솔 2023. 7. 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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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한국 수능과 차별화
40년 역사… 똑같이 합숙으로 문제 출제
학생 부담 덜기 위해 응시과목도 줄여
대입 지역 할당제 둬 가오카오 비중 ↓
美, 다단계 적응형 시험
문제은행식 출제 난이도 조절 등 용이
첫 파트 고득점 땐 다음 파트선 난도 ↑
종이시험보다 짧은 기간에 평가 가능
美 문제은행 방식 ‘보안’ 문제로 어려워
中 일부 과목 2회 시험은 부담만 높여
4~5년 걸쳐 시스템 개혁으로 해결해야

수능을 5개월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교과과정을 벗어난 문항을 배제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교육계가 한바탕 들썩였다.

변별력을 위한 ‘킬러(초고난도) 문항’이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교육부 대입 담당자가 경질됐고, 출제 당국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감사를 받았다. 나흘 뒤 평가원 원장까지 사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지난 6월 7일 중국 난징의 가오카오 고사장 앞에서 대기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 난징=AP연합뉴스
와중에 지난 2일 평가원은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2024학년도 수능 시행 세부 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킬러 문항이 ‘부적절’했다면서도 정작 어떤 문항이 적절한지 명쾌한 설명은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능의 난이도 논란은 평가원에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전임 10명의 평가원장 중 6명이 출제 오류로 중도사퇴했을 정도로 변별력 조절은 어려운 문제다. 지나치면 공교육의 범위를 벗어나고, 너무 없으면 시험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물수능’이 된다. 한국뿐 아니라 고등교육을 향한 경쟁이 치열한 국가라면 어디나 수능 출제는 고민거리다.

처음부터 변별이 목적이 아닌 핀란드 등의 수능은 참고하기 어렵다. 대신 수능처럼 선발시험의 성격을 띤 미국과 중국의 수능이라면 비교할 수 있다. 1993년 처음 시행된 뒤 30년간 큰 변화가 없었던 수능과 달리, 이들 선발시험은 수능보다 더 긴 역사를 가지고 최근 대부분 중대한 전환점에 와 있다.

◆한국형 수능 탈피하는 중국

중국의 수능은 매년 6월 치러지는 ‘보통고등학교입학전국통일고시(가오카오·高考)’를 말한다. 한국에서 공적 주체인 평가원이 수능 전 과정을 전담하듯, 가오카오도 중국 교육부 산하 고시원(考試院)에서 출제·시행한다. 수능은 첫 시행으로부터 30년, 가오카오는 1978년 부활한 이래 40년이 지났다. 오래 시행돼 온 만큼 두 시험은 각 사회의 가장 민감한 시험이면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인정받고, 요구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출제위원단이 외부와 단절된 채 합숙을 통해 수능 문제를 만드는 독특한 형태도 이런 배경으로 인해 한국을 제외하곤 중국이 거의 유일하다.
지난 5월 가오카오를 한 달 앞두고 공부하고 있는 중국 학생들의 모습. 면양=AFP연합뉴스
중국이 합숙 출제 방식을 수십년째 이어 온 이유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문제 유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한국처럼 교육열도 높고, 명문대학에 가고자 하는 경쟁이 치열한데 올해 가오카오에 응시한 학생 수만 1300만명에 달할 만큼 인구가 많다 보니 부정행위나 문제 유출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시험도 변별력 위주의 시험이 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750점 만점인 가오카오에서 이과 기준 690점 정도면 베이징의 유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한국 기준으로 보면 매 시험이 ‘불수능’이다.

가오카오가 시행된 지 수십 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도 드러났다. 2014년 9월 중국 정부는 현행 가오카오가 △점수 위주의 교육관 △한 번의 시험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 가중 △지역 간 교육기회의 차이 등을 불러왔다고 지적하면서 고등학교 내신 시스템, 가오카오, 대학 선발에 걸친 전면적인 교육 개혁을 예고했다. 각 지방 정부가 2014년, 2017년, 2020년에 시범사업에 돌입했고 현재까지도 제도 개편이 진행 중이다.

베이징시·톈진시 등은 기존 가오카오 과목에서 문·이과의 구별을 없애고 문과 3과목, 이과 3과목 중 자유롭게 3개 선택과목을 골라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학생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가오카오 영어 과목을 1년에 2회 볼 수 있는 시험으로 분리해 두 시험 중 최고점을 가오카오 성적표에 합산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틀 동안 보던 기존의 가오카오도 지역에 따라 2일 또는 3일까지 나눠서 보고 있다.

온전히 가오카오에만 의지하던 대입 방식도 바뀌었다. 고등학교 교과 성적과 종합소질평가 등을 입시에 반영토록 했고, 전문대 입시를 가오카오와 분리시켰다. 또 지역마다 시험 방식이 다르니 전국 등수가 아닌 지역별 등수로 경쟁하고, 대학별로 지역 할당량을 정해 학생들을 뽑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은 해당 대학이 위치한 지역의 학생들을 더 많이 선발하고 있다.
◆점수 따라 문제 바뀌는 美 디지털 수능

한국과 중국이 수능마다 문제를 새로 제작하는 반면 미국 등에서는 문제은행식 출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문제은행식이란 문제를 미리 만들어 놓고 시험 때 문제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고등학생이 응시하는 대학 진학용 능력시험인 SAT가 이런 방식으로 출제된다. 이 방식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작업하느라 발생하는 문제 오류나 난이도 조절 실패 등 한국식 수능 출제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SAT를 주관하는 민간 비영리단체인 칼리지보드는 문제은행식 출제 방식의 또 다른 이점을 제시했다. 바로 디지털 전환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칼리지보드는 올해부터 미국 밖에서, 2024년 봄 학기부터는 미국 전역의 모든 SAT를 디지털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3월 첫 디지털 SAT가 치러졌고, 학생들은 지정된 시험장에서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시험을 치렀다. 종이 시험지를 만들고 배달하는 수고로움이 없으니, 칼리지보드는 앞으로 시험 날짜를 현재보다 더 늘려서 학생들의 응시기회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디지털 SAT를 응시하는 학생들은 개인별로 맞춤화된 SAT를 보게 된다. 첫 파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수록 두 번째 파트에서 더 어렵고, 더 높은 배점의 문제들이 출제된다. 이 같은 ‘다단계 적응형 시험(MST)’ 방식은 문제은행식이기 때문에 가능한 디지털 시험이다.

칼리지보드는 자사 연구 결과 기존 종이 기반의 SAT보다 디지털 MST에서 더 짧은 시험만으로도 학생들을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같은 문제를 사용하더라도 시험마다 선택지 배열, 문제 순서 등을 바꿀 수 있어 부정행위 방지에도 유리하다는 것이다.
문제은행식 출제는 90년대부터 수능 개편 논의가 나올 때마다 언급돼 왔다. 실제로 평가원은 2009년 교육과정 개편 이후 문제은행 구축 사업을 통해 모의고사와 수능 출제에서 문제은행을 일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제은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유출 위험이 여전히 문제다.
평가원은 2018년 보고서를 내고 한국의 합숙 출제가 “보안 필요성에 의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사회적 신뢰 및 성숙도의 변화에 따라 향후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교육전문가 제언… “수능 단기간에 바꾸면 대응 빠른 사교육만 부추겨”

교육 전문가들은 미국 수능인 SAT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제은행 방식이 보안 문제 등으로 한국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SAT 문항도 국내에서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수차례 시험지를 사고판 정황이 포착된 바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4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SAT 시험은 유출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문제가 유출되면 SAT의 의도인 수학능력 평가는 문제풀이 능력으로 변질된다”고 말했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엄청난 교육열 기반의 문화가 문제은행 도입의 걸림돌”이라며 “수능 점수만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정시전형이 존재하는 한 (보안 유지를 위해) 출제위원 합숙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박남기 교수는 수능과 같은 오지선다형이 “무조건 낡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며 해외에서도 여전히 객관식 문항을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왼쪽),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
그는 “에세이를 채점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보다 서술형 도입이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술형 채점에는 개인의 주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어 채점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떨어졌지만, AI를 활용해 이를 개선하고 채점 속도까지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에서 수능 일부 과목을 연 2회 시행으로 바꾼 것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부담을 훨씬 높이기만 할 것”이라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들은 수능 방식의 변화보다 그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주호 교수는 “수능이 고등학교 이수를 평가하는 시험이 될지, 아니면 현재처럼 대입 전형의 준거 자료로 활용할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남기 교수는 단기간에 제도를 바꾸려 하면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사교육만 부추긴다”며 “교육부만 들고 갈 문제가 아니라 4, 5년 진득하게 대통령실이나 총리실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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