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부르듯 “이리 와, 쯔쯔”…여전한 직장갑질, 답은 ‘퇴사’ 뿐?

조해람 기자 2023. 7. 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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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혀로 입천장 차는 소리를 내면서, 개를 부르는 것처럼 오라고 손짓해요.” 직장인 A씨가 지난 7월 노동법률단체 직장갑질119에 보낸 익명 신고다. 사장은 회식장소에서도 A씨를 “야” “니” “바보” 등으로 부르며 과자를 억지로 입에 넣었다. 어깨나 등을 치면서 “죽여버릴까? 죽고 싶어?” 같은 말도 수시로 했다.

직장인 B씨의 근로계약서에는 ‘상벌점 제도’가 있다. 처음 하는 업무에서 실수해도, 사장의 말에 대답이 짧아도, 사장이 낸 문제를 틀려도 벌점이 부과된다. 벌점 1점당 20분씩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의 2·3)’ 시행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 직장인 3명 중 1명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직장 규모가 작거나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 약자’일수록 심각성이 높았다.

직장갑질119는 여론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과 함께 지난달 9일부터 15일까지 전국 성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9일 밝혔다. 조사의 표본은 경제활동인구조사 취업자 인구비율에 따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직장인 33.3%는 ‘최근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4년 전인 2019년 6월 조사 결과(44.5%)보다 10%포인트 줄었지만 여전히 높게 나타났다. 유형별로 보면 ‘모욕·명예훼손’(22.2%) ‘부당지시’(20.8%) ‘폭행·폭언’(17.2%) ‘업무 외 강요’(16.1%) ‘따돌림·차별’(15.4%)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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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 약자’일수록 괴롭힘을 더 자주, 더 심하게 달했다. 노동시간이 ‘52시간 이하’인 경우 10명 중 2~3명이 괴롭힘을 경험했지만, ‘52시간 초과’인 경우 48.5%가 괴롭힘을 겪었다. 괴롭힘 심각 수준을 묻는 말에서도 수입이 ‘월 150만원 미만’인 응답자(60.0%)가 ‘월 500만원 이상’인 응답자(32.4%)보다, ‘비정규직’(52.9%)이 ‘정규직’(44.6%)보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56.5%)이 ‘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41.9%)보다 심각성을 크게 느낀다고 응답했다.

지난 1년간 괴롭힘을 당한 응답자 10명 중 1명(9.3%)은 ‘자해 등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고 답했다. ‘신체적 건강이 나빠졌다’는 응답은 20.1%, ‘정신적 건강이 악화돼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겪었다’는 응답은 37.8%에 달했다. ‘진료나 상담을 받았다’는 응답은 7.5%에 불과했다.

괴롭힘을 당했을 때 대응 방안(중복응답)으로는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가 65.5%로 가장 높았다. ‘회사를 그만뒀다’가 27.9%로 뒤를 이었고, ‘개인 또는 동료들과 항의했다’가 23.7%로 나타났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응답은 ‘여성’(45.2%)이 ‘남성’(22.3%)보다, ‘비정규직’(37%)이 ‘정규직’(21.5%)보다, ‘비사무직’(32.9%)이 ‘사무직’(23.6%)보다 높았다. 노동조합 비조합원은 31.7%가 괴롭힘을 겪고 회사를 그만뒀지만,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은 퇴사까지 내몰리지는 않았다.

한 직장 내 괴롭힘 경험자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스케치북에 적어 보여주고 있다. 조해람 기자

‘노동 약자’를 폭넓게 보호할 수 있도록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5인 미만 사업장, 특수고용·프리랜서 등 노동자에게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이번 조사에서 직장인 94% 이상이 ‘5인 미만 사업장과 간접고용·특고·플랫폼노동자에게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직장갑질 119 대표 권두섭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4주년이 됐지만 괴롭힘은 기대만큼 줄어들지 않고, 특히 비정규직이나 작은 사업장 등 일터 약자들은 더 고통받으며 극단적 선택도 끊이지 않고 있다”며 “반쪽짜리 법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 원청갑질 등 사각지대를 없애고, 관리·감독과 처벌을 강화하고, 형식적인 예방 교육이 아니라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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