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평안할까? [기민석의 호크마 샬롬]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죽으면 비로소 평안할 수 있을까? 낯선 말이 아니다. 나 자신이, 나의 친구 가운데, 가족 가운데에도 삶의 불안정함 때문에, 심장의 박동 소리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죽음이 평안이 되기를 소망한다.
자기가 왜 태어나 이 세상에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부여받은 생명의 생존본능에 그저 지금껏 끌려온 것은 아닌지. 단 신앙인들은 예외이기도 하다. 그들은 하늘의 섭리를 믿고 자신이 살아가는 뚜렷한 소명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스스로 죽음을 전혀 선택하지 않는가?
"내가 태어난 날이 저주를 받았어야 했는데.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이 복된 날이 되지 말았어야 했는데"(예레미야 20:14). 하나님의 예언자가 한 말이라 문제다. 당시 문화에서 이런 저주는 그저 분노의 언어 이상이며 악으로 여겨졌다. 신앙인이고 사명자였지만 그는 자신을 향한 하늘의 섭리를 저주하고 실존을 거부했다.
그는 정말 기괴한 말도 내뱉는다. "내가 모태에서 죽어, 어머니가 나의 무덤이 되었어야 했는데, 내가 영원히 모태 속에 있었어야 했는데"(20:17). 엽기적인 말이지만 그래도 엄마의 배, 그 따뜻한 온기를 바라고 있으니 마음이 짠하다.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며 삶을 거부하지만, 세상의 찬 공기로부터 감싸주었던 엄마의 따뜻한 품은 행복의 기억이었다. 죽고 싶어 하는 이 사람의 역설적인 두 행복 조건이다. 죽음의 평안과 생명의 온기다.
"나의 아버지에게 '아들입니다, 아들!' 하고 소식을 전하여, 아버지를 기쁘게 한 그 사람도 저주를 받았어야 했는데"(20:15). 갈등과 고통의 최악을 지나 최종에 이르면, 자신의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이들을 부른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가족 같은 친구를.
예언자 예레미야의 이런 내면적 감정적 갈등은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그의 소명에서 비롯되었다. 신앙으로 희망과 사명을 가지고 기운차게 살아보려 했지만, 오히려 그는 고통과 슬픔, 절망, 좌절, 고독, 소외, 외로움, 미움, 실패, 자기혐오를 지독하게 경험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향해 분노했다. "어찌하여 이 몸이 모태에서 나와서, 이처럼 고난과 고통을 겪고, 나의 생애를 마치는 날까지 이러한 수모를 받는가!"(20:18). 그러나 하늘이 선사한 삶을 혐오했던 그의 험한 고통의 토로는, 역설적이게도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경에 남겨져 지금껏 읽힌다.
예레미야는 카리스마 넘치는 다른 예언자들과 다르다. 인간의 약점에 대한 승리자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붕괴 지점까지 경험한 자로서 하늘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 그에게는 영적인 체험이 아닌, 혐오했던 자기 자신과 고통스러운 인생 경험이 곧 메시지가 되었다. 죽을 것 같은 아픔이, 우울한 자기혐오가, 뼈아픈 실패가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계시가 된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저버린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을 바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지 않았던 우리가 죄인일 뿐. 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저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보라고 부르고 싶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지만 단 하나의 생명이라도 구하고 싶기 때문이다.
얼마나 힘들까. 그리고 얼마나 아플까. 힘들고 아픈 것이 지나가고 삶의 평안과 즐거움이 찾아오면 제일 좋겠다. 열심히 바라고 구해서 행복을 쟁취하길 바란다. 그런데 성경은 이에 더 나아가 나의 고통이 타인을 위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요셉과 다니엘처럼 어려움 가운데서 승리를 보는 이들도 우리에게 소망을 주지만, 예레미야나 예수의 경우처럼 담담히 적힌 그들의 고통이 남을 살리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아니 반드시 갖는다.
기민석 목사·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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