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심보’ 바꾸니 ‘복’ 들어오나…동맹으로 분위기 대반전 [뉴스 쉽게보기]

임형준 기자(brojun@mk.co.kr),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2023. 7. 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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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차량 전용 충전소의 모습. <연합뉴스>
팬데믹 시대의 해외 주식 투자 열풍을 이끌었던 테슬라, 2021년까지 폭등하다가 작년엔 주식 시장 하락기를 겪으며 한동안 잠잠했죠. 그런데 올해 다시 테슬라의 질주가 시작됐어요. 올해 들어서만 주가가 두 배 이상으로 올랐고, 특히 최근 한 달여간 급등세를 보이고 있어요. 지난달 25일부터 이번 달 13일까지 ‘13거래일 연속 상승’이라는 상장 이래 최장 기록도 새로 썼고요.

요즘 주식 시장이 회복세인 걸 고려해도 정말 급격한 주가 상승세예요. 테슬라는 올해 2분기에 46만 6140대의 전기차를 고객에게 인도했는데, 전년 동기 대비 83% 급증한 기록이에요. 직전 분기와 비교해도 10%나 늘었어요. 테슬라의 대대적인 가격 인하 정책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지급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여요.

자료=나스닥 증권거래소
하지만 테슬라 주가의 고공행진에는 차를 저렴하게 많이 판 것 외에도 다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어요. 최근 테슬라가 미국에서 사실상의 ‘전기차 충전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는 것은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예요.
‘전기차 시대’ 앞당기려는 미국 정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정부는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새 자동차 중 전기차의 비율을 절반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요. 전기차 관련 사업에 지원금을 주기도 하고, 기름으로 달리는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을 줄이기 위해 각종 규제를 새로 만들기도 했어요. 전기차 시대를 앞당기려는 의도예요.

미국이 전기차 시대를 위해 대대적으로 준비하는 것 중 하나는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예요. 누구나 기름으로 달리는 자동차 대신 전기차를 타려면, 지금의 주유소들처럼 곳곳에 수많은 전기 충전소를 만들어둬야 하잖아요. 아직은 숫자가 한참 부족한 수준이니까 얼른 많이 설치해야 전기차 시대를 앞당기든 말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미국 정부는 2030년까지 미국 전역에 전기차 충전소를 최소 50만 개 구축하는 데에 75억 달러(약 9조 9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어요. 수년에 걸쳐 쓰는 돈이라고는 하지만, 엄청나게 큰 금액이에요. 전기차 충전소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회사라면, 이런 보조금을 놓치고 싶진 않을 거예요.

미국 정부는 보조금 지급에 조건을 걸었어요. 모든 전기차가 충전소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미국에서 전기차 충전 방식의 표준은 ‘결합 충전 시스템(CCS, Combined Charging System)’이에요. 그래서 미국의 대부분 전기차 충전소 업체는 CCS를 채택하고 있어요. CCS 방식의 충전소를 늘려서 개방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겠죠.

‘우리 고객 전용’ 고집했던 테슬라
하지만 테슬라는 CCS 방식을 쓰지 않고, 테슬라 외 차량에 충전소를 개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어요. 테슬라 전기차 전용 급속 충전기인 ‘슈퍼 차저’와 완속 충전기 ‘데스티네이션’에는 북미 충전 규격 기준(NACS, North American Charging Standard)이라는 방식이 사용돼요. 이 충전기들의 플러그는 테슬라 차량 소유자만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죠.
NACS와 CCS 충전 단자를 비교한 이미지/자료=테슬라
이전에는 이런 충전소 운영 정책이 테슬라에 많은 이익들을 가져다줬어요. 테슬라 차량만 이용할 수 있다는 독점성 때문에 테슬라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생겨났고, 테슬라는 그렇게 늘어난 소비자들을 위해 슈퍼 차저를 세계 곳곳에 꾸준히 늘렸어요. 지난해 기준 테슬라가 운영하는 슈퍼 차저는 세계적으로 4만 대를 넘겼는데, 단일 기업이 운영하는 규모로는 단연 세계 최다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앞으로는 속도를 더 높여서 내년 말엔 17만 700개까지 늘릴 계획이래요.
충전소 보조금, 놓칠 순 없지!
문제는 독점적인 서비스를 위해 미국 표준인 CCS를 쓰지 않고, 충전 시설을 다른 브랜드 차량에 개방하지도 않았던 테슬라가 미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는 점이었어요. 테슬라 입장에선 정말 아까운 돈이잖아요. 어차피 앞으로도 충전소를 계속 늘릴 건데, 정부가 주는 보조금 받아 가며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테슬라가 보유한 충전소는 아까운 기반 시설이었어요. 테슬라가 이미 미국 곳곳에 깔아둔 충전소가 1만 9000개가 넘어요. 급속 충전기만 따졌을 땐 미국 전역에 있는 충전기 중 약 60%가 테슬라 전용이에요. 이걸 모든 전기차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게만 해도 충전 네트워크 확충을 빠르게 할 수 있겠죠. 그래서 백악관은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와 이 문제를 놓고 꾸준히 논의해 왔다고 해요.

결국 테슬라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 미국 내 자체 충전소 약 7500개를 CCS를 쓰는 모든 전기차에 개방하기로 했어요. 테슬라의 플러그를 CCS 전기차가 사용할 수 있도록 커넥터를 쓰는 방식이에요. 이 소식은 백악관을 통해 지난 15일(현지시간)에 발표됐어요.

날 따라와! 내가 기준이 될 거야
이런 현상을 두고 사람들은 다양한 평가를 해요. ‘테슬라의 매출과 영향력이 강해질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브랜드의 독점성이 약해지고, 충전망 관리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요. 독점적으로 테슬라 충전소를 쓰던 테슬라 차량 소유자 중 일부는 불만을 드러내기도 한 대요.

하지만 확실한 건 전기차 충전소 공유라는 일련의 변화를 테슬라가 최소한 지난해부터 철저히 준비해 왔다는 거예요. 막대한 보조금 혜택도 누리면서, 테슬라의 방식을 ‘미국 표준’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죠.

사실 테슬라의 충전 방식인 ‘북미 충전 규격 기준(NACS)’의 원래 이름은 ‘테슬라 전용 커넥터(TPC, Tesla Proprietary Connector)’였어요. 지난해 11월에 NACS로 명칭을 바꿨고, 다른 기업들이 채택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도 공개했어요.

테슬라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어요. 미국의 1·2위 자동차 기업인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가 테슬라의 충전소를 함께 사용하는 ‘충전 동맹’을 택한 거예요. 두 회사는 앞으로 생산할 전기차 모델에는 기존에 쓰던 CCS 대신 테슬라의 NACS를 적용하기로 했어요.

CCS 방식의 차량도 커넥터를 끼워서 테슬라 충전소를 이용할 수 있지만, 충전 속도가 늦어지는 등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고 해요. 어차피 나중에 소비자들이 자주 쓰게 될 충전소가 NACS라면, 처음부터 NACS로 만들어서 파는 게 낫겠죠.

자료=모터인텔리전스
테슬라와 GM, 포드는 전기차를 만드는 미국 기업 중 1~3위를 차지하는 곳들이에요. 세 기업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합치면 70%가 훌쩍 넘어요. 이 회사들이 충전 동맹을 맺은 후 미국에서 전기차 충전소를 운영하는 대부분 회사들은 ‘우리 충전소도 NACS 커넥터를 제공하겠다’고 밝히고 있어요. 충전소 운영업체들로서는 테슬라의 충전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 거예요.
‘미국 표준’ 눈앞에 둔 테슬라
NACS가 미국의 전기차 충전 방식 표준으로 자리 잡아 가는 분위기는 점점 강해지고 있어요. 지난 27일에는 볼보가 미국에서 테슬라의 충전 방식을 채택하겠다고 밝혔고, 29일엔 폭스바겐이 북미 시장의 NACS 채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어요.

아직 부족한 전기차 충전소의 숫자는 전기차 대중화를 늦추는 걸림돌이에요. 다른 자동차 회사들로선 테슬라의 충전소를 쓰면 전기차 보급이 훨씬 수월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겠죠. 최근 흐름은 미국의 기존 표준인 CCS를 누르고 시장 점유율을 장악하는 모양새가 됐어요. 아무리 기존에 정해둔 표준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 업체들이 다른 방식을 사용하면 대세는 바뀔 테니까요.

최근 테슬라 주가의 고공행진에도 ‘테슬라의 충전 방식이 미국 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보여요. 미국의 한 투자은행은 테슬라가 GM·포드와의 계약으로 내년부터 2030년까지 충전소에서만 30억 달러(약 3조 9600억원), 2032년까지 54억 달러(약 7조 1200억원)를 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어요.

현대차그룹 등 아직 NACS 도입을 결정하지 않은 자동차 회사들은 고심에 빠졌어요. 대세를 따라 북미 시장에서 테슬라와 손을 잡을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경쟁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타이밍인 거니까요. 아직은 북미에 국한된 현상이지만, 결국 세계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라 머리가 아플 만해요.

정말 테슬라는 세계적 자동차 기업들과의 ‘충전 동맹’으로 미국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될까요? 나머지 경쟁 업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전기차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한번 지켜볼 만한 분야인 것 같네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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