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의 눈에 비친 ‘근대 중국’···빼어난 문학적 감성에 읽는 재미 쏠쏠[화제의 책]
“‘장자’에서는 ‘말머리를 동여매고 소코를 꿰었다’라고 말했는데, 이제 이곳에서 코를 꿴 소는 볼 수 없다. 이것에서 중국의 진보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반드시 서구의 풍속에 영향을 받아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매사에 중국의 구습을 따르는 것을 힘쓰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유교 개혁사상가 이병헌이 지은 ‘중화유기’의 한 대목이다. 경남 함양 출신인 이병헌은 영남의 유림 곽종석의 문인으로 고향에서 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한말 시국의 변화를 접하면서 강유위(청나라 말기의 학자이자 정치가)의 영향을 받아 개화사상으로 전환했다. 1914년부터 1925년까지 다섯 차례 중국을 찾아 강유위의 지도 아래 유교의 종교개혁운동을 전개하며 ‘공교’ 사상을 체계화하기도 했다.
‘공자교’라고도 불리는 공교는 중국 청나라 말부터 중화민국 초에 걸쳐서 ‘공자를 숭상해 국가적 종교로 삼으려던 운동’이다. 그러나 공교는 보수 유림의 반대로 우리나라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이병헌은 만년엔 경학의 연구에 힘써 시경·서경·역경 등 오경에 관한 여러 저술을 남겼다.
‘중화유기’는 조선 선비로서 유교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던 이병헌이 20세기 초반에 중국을 여행한 기록을 담은 저작이다. 이 책은 이병헌의 여정과 그때의 시대적 배경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그의 철학적 사색과 개혁에 대한 노력도 함께 보여준다.
이병헌은 중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체험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전통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한편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개혁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근대화의 바람이 부는 시대에 전통적인 가치와 현대의 새로운 가치 사이에서 고민하며 자기의 길을 찾아나선 것이다.
‘중화유기’는 이병헌의 개인적 여정을 통해 당시 조선과 중국 사이의 문화·정치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는 중국을 여행하며 겪은 경험을 통해 당시 조선이 겪고 있던 정치적·사회적 변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저자는 조선과 중국 그리고 더 넓은 세계와의 연결을 깨닫고, 이를 통해 개혁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의 중국여행기 ‘중화유기’를 조운찬을 비롯한 5명의 역자가 오랜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 한국어로 옮겼다. ‘중화유기, 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김태희·박천홍·조운찬·최병규·한재기 옮김 / 빈빈책방)다. 역자들은 번역 과정에서 한문의 정교함과 시적 표현을 살리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으며, 원작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최대한 살리려 애썼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당시 중국과 한국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측면을 탐색하면서 유교 개혁사상가 이병헌의 자기성찰과 그의 인간적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한 시대를 살아간 한국 지식인이 중국을 어떻게 바라봤고 어떻게 표현했는지 음미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한편 역자 가운데 한 명인 조운찬은 대학에서 한국사를,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공부했다. 한국고전번역원 번역교육연수과정을 수료한 그는 경향신문 기자로 일하는 동안 베이징특파원, 문화부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문집탐독’과 ‘옛글의 풍경에 취하다’가 있다.
또 다른 역자 한재기는 경남 산청의 서사(書舍)에서 3년간 한학을 공부했으며, 한국고전번역원 번역교육연수과정을 수료했다. 고려대에서 고문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단국대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들 외에 정조의 통합정치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산문집 ‘실학의 숲에서 오늘을 보다’와 ‘정약용의 삶과 글’을 펴낸 김태희,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활자와 근대’ 등을 출간한 박천홍, 다산의 초서 간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간찰을 역주한 ‘오래된 편지를 엿보다’를 펴낸 최병규 등이 번역 작업을 함께했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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