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맞이] 삼복에 비 오면 보은 처자는 왜 울까?
단어에 한자 ‘엎드릴 복(伏)’자 쓰여
‘찬 기운이 무더위에 굴복’ 의미 담겨
“伏=人+犬 모양탓 개고기 섭취” 주장
팥죽도 조상들 복달임 음식 중 하나
농사·날씨 관련 재미있는 속담 많아
올해도 복날이 왔다. 복날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비로소 무더위를 체감한다. 1년 중 가장 더운 기간을 ‘삼복더위’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지금도 복날이면 삼계탕집에 줄이 길게 늘어서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복날의 유래와 의미를 짚어보고 전국 각지의 특별한 보양식으로는 어떤 게 있는지 찾아본다. 토종닭을 활용한 이색 닭요리도 소개한다.
복날은 어디서 어떻게 유래해 지금까지 전해온 걸까. 11일(화) 초복(初伏)을 맞아 흥미로운 삼복 상식을 알아본다.
찬 기운이 무더위에 엎드린 날
삼복은 초복·중복·말복으로 나뉜다. 초복은 하지(夏至)에서 세번째 경일(庚日), 중복은 네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立秋)로부터 첫번째 경일이다. 경일이란 갑·을·병·정·무·기·경 등으로 이어지는 천간(天干) 중 ‘경’이 들어가는 날이다. 초복이 시작되고 열흘 뒤가 중복, 30일 뒤가 말복이다. 복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찬 기운이 무더위에 굴복한다고 해서 ‘엎드릴 복(伏)’을 쓰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엎드릴 복’이 인간(人)과 개(犬) 모양이라 복날에 개고기를 먹는다는 말도 한다.
삼복 풍습은 고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문신 홍석모가 사계절 풍속을 기록한 책인 ‘동국세시기’에는 중국 역사서인 ‘사기’에 복날 개를 잡아먹는 풍습이 소개됐다고 쓰여 있다. 또 조선시대에는 궁중에서 삼복 때 벼슬이 높은 신하에게 ‘빙표’를 줘서 장빙고에서 얼음을 맛보게 했다. 물론 삼복더위는 부자보다 서민에게 가혹했다. 이때 벼가 쑥쑥 자라 농사일을 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민간에선 수박과 참외를 즐기고 계곡에 발을 담그며 잠시 더위를 식혔다.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복날에 목욕하면 몸이 여윈다는 속설 때문에 발만 담그면서 더위를 피했다”며 “해안 지방에서는 모래찜질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복날에 삼계탕? 팥죽도 먹었다
복날 하면 생각나는 대표 메뉴가 삼계탕이다. 닭과 인삼은 열이 많은 음식이라 몸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 지친 몸을 회복해준다. 복날엔 원래 닭을 잡아 백숙 형태로 먹었지만, 전문가들은 일제강점기 때 부잣집에서 닭에 인삼을 넣어 먹던 게 오늘날 삼계탕의 원조라고 본다. 삼계탕은 1960∼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 식당에서 점심 메뉴로 팔면서 본격적인 복달임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복날에 유명 삼계탕집을 가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다.
복날엔 개고기로 만든 ‘개장국’도 먹었다. 조선시대 때 양반들은 복날에 소고기로 몸보신하고, 서민들은 키우던 개를 잡아 ‘개장국’을 끓였다. 조선 후기 무인인 유만공이 편찬한 세시풍속 관련 한시 ‘세시풍요’에서 “삼복 시기 푸줏간에 염소와 양은 없고, 집마다 개만 삶는다”는 구절이 나와 있다. ‘오행설’에 따라 불의 기운이 강한 여름날에 쇠의 기운이 강한 개를 먹어 보신했다는 설이 많은데, 실상은 집에서 가장 흔하게 키우는 가축이라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19세기 풍속화가 김준근의 그림 ‘개백정’에선 복날에 개를 잡아가는 백정의 모습이 나와 있다. 이처럼 복날에 개고기를 먹는 풍습은 꽤 오래 이어져왔으나 최근엔 ‘동물권’ 보호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보신탕집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오래된 시장에서는 여전히 어렵지 않게 개고깃집을 볼 수 있다.
원래 복날에 팥죽을 먹기도 했다. 팥이 몸속 열을 식혀주는 곡물이라서다. 조상들은 팥죽을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고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팥죽을 먹는 풍습은 일제강점기 때까지도 이어졌다.
광주광역시에서 팥죽 장사를 하는 김희자씨(72)는 “팥죽 하면 이젠 동지를 떠올리지만 예전엔 복날에도 팥죽을 찾아 먹었다”며 “팥죽이 액운을 막아줄 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복날 속담
복날은 오래 이어져온 풍습인 만큼 농사나 날씨와 관련된 재미있는 속담이 많다.
‘삼복지간에는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는 말은 삼복에 더위가 심해 입술에 붙은 가벼운 밥알도 무거워질 만큼 사소한 일도 힘들어지게 된다는 뜻으로, 여름철 더위 속에서 나타나는 무력감을 잘 표현했다. ‘삼복더위에 고깃국 먹은 사람 같다’는 말은 더운 날 뜨거운 국까지 먹어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을 나타낸 것이다.
장마철이라 비와 관련된 삼복 속담도 있다. ‘중복물이 안 내리면 말복물이 진다’는 속담에서 물은 장마를 의미한다. 중복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어쨌든 말복에라도 내린다는 뜻으로, 닥칠 일은 반드시 닥친다는 의미로 쓰인다. ‘초복날 소나기는 한 고방의 구슬보다 낫다’는 말은 초복날쯤 적정량 내린 비가 농사에 큰 도움을 준다는 뜻이다. 반대로 ‘삼복에 비가 오면 보은 처자 울겠다’고 한다. 충북 보은은 오래전부터 대추가 유명한 지역이다. 비가 적고 해가 내리쫴야 농사가 잘되는 대추농사를 걱정한 것이다.
박준하 기자 june@nongmin.com 사진=현진 기자 sajinga@nongmin.com, 한국기독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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