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가 ‘세계의 공장’ 중국 대체할 거라는 환상

정의길 2023. 7. 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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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지정학의 풍경][한겨레S] 지정학의 풍경 인도와 ‘제2의 중국’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시진핑 중국 주석(왼쪽부터)이 2016년 10월 인도 고아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시작에 맞춰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 있다. AP 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미국을 국빈 방문하던 지난 6월22일 <뉴욕 타임스>는 인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얼마나 많은 이득을 챙기고 있는지를 전했다.

러시아 석유를 거의 수입하지 않던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이 러시아 석유 금수 제재를 가하자, 자국으로 수입되는 석유의 45%인 하루 200만배럴씩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한다. 인도는 러시아 석유를 시장 가격보다 싸게 수입해서는 수출까지 해서 차익을 얻는다. 러시아 석유를 정제해서 유럽이나 미국까지 수출해, 사실상 ‘러시아 석유 세탁’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러시아에 가한 서방의 제재가 무력해진 이유 중 하나는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가 러시아와의 교역 등 협력을 더욱 확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모디 총리를 초청해서 방위·청정에너지·우주 분야 등에서 협력관계를 맺으며 환심을 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 언론들도 모디가 국빈 방문 중에서도 가장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평가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리의 가장 중대한 관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인도의 경제 기적, 30년째 ‘기대’로만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대결이 격화되면서, 인도는 미국에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변수로 부상해왔다. 미국이 중국을 인도·태평양 전역에서 포위봉쇄하겠다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채택하면서, 인도는 세계 지정학 대결의 향방을 가를 나라가 됐다. 또 인도는 미국의 대중국 공급망 재편 시도에 따라 중국을 떠나는 기업들의 새로운 메카로 지목된다. 인도는 올해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인구국으로 됐고 정보통신 분야에서 풍부한 양질의 노동력이 존재한다. 한마디로, 인도가 제2의 중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다.

미-중 대결은 불가피하다는 책, <예정된 전쟁>으로 유명한 대중국 보수 강경파인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6월24일 <포린 폴리시>에 ‘인도는 중국을 추월해 차기 초강대국이 될 수 있나?’라는 글을 썼다. 그는 회의적인 견해를 이 글에 담았다.

인도의 경제 기적은 1990년대 초부터 기대됐으나, 여전히 기대로만 남아 있다. 2000년 중국의 제조업·수출·국내총생산은 인도보다 2~3배 컸는데, 현재는 5배로 격차가 벌어졌다.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17조7천억달러, 인도는 3조2천억달러다. 특히 2000년 기준 중국의 세계 제조업 비중은 대략 7%, 인도는 1%였는데, 2022년 중국은 31%로 성장했지만 인도는 3%에 불과하다. 세계 상품수출 비중에서도 중국은 2%에서 15%로 급증했지만 인도는 1%에서 2%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대로 중국의 문맹 비율은 1%인 데 비해 인도는 25%다. 인도 인력이 풍부하다는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중국엔 역부족이다. 세계 20대 첨단기술업체 중 4개가 중국 회사이지만 인도는 하나도 없다. 중국은 세계의 5G 통신 시설의 절반을 담당하는데 인도는 1%다. 중국은 틱톡 등으로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지만 인도는 전무하다.

앨리슨은 이런 통계와 현실을 들면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평가를 인용했다. 인도와 오랫동안 일해본 리콴유는 뿌리 깊은 카스트 제도, 만연한 관료주의, 인종·종교분쟁과 이에 대한 지도층의 해결 의지 부재로 인도는 ‘미래의 나라’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인도와 중국에 대해 연이어서 말하지 말라”는 게 리 전 총리의 결론이다.

인도는 최근 지정학적 상황에다가 지난해 7% 고도성장을 보이며 ‘약속의 땅’으로 불리게 됐다. 하지만 이것도 통계적 착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도는 코로나19 사태로 그 어느 개발도상국보다도 심각한 경기 축소를 겪었다. 2019년과 비교하면 2022년 하반기 국내총생산은 7.6% 늘었다. 즉, 2022년의 7% 성장세는 그 전해 마이너스에 가까운 성장을 하다가 반등한 기저효과일 뿐이다.

인도 정부의 수석 경제고문을 지낸 아르빈드 수브라마니안 브라운대 선임방문학자는 지난해 11월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왜 인도는 중국을 대체할 수 없나?’라는 글에서 2000년대 초부터 인도 투자 붐이 무성했으나 외국 기업들이 인도로 생산을 이전한 것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투자 위험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투자할 때 정책이 나중에 바뀌고, 투자한 뒤에도 정부가 선호하는 거대 인도 재벌들에 유리하게 규칙을 바꾼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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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 몸값 올라 ‘꿩 먹고 알 먹기’

인도가 미국의 대중 전선에 동참해줄 거라는 기대도 환상이라는 지적도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준 인도의 ‘꿩 먹고 알 먹는’ 전략은 미-중 대결 전선에서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애슐리 텔리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이 지난 5월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인도에 대한 미국의 잘못된 도박―뉴델리는 베이징에 대항하는 워싱턴의 편을 들지 않을 것’이라는 제목의 글은 화제가 됐다. 그는 2000년대 조지 부시 행정부가 원전 기술 제공 등을 통해 미국-인도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개선할 때 참여한 이력이 있다. 그는 “인도는 워싱턴과의 협력이 (인도에) 가져다줄 편익을 평가하나, 그 대가로 어떤 위기 국면에서도 미국을 물질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특히 인·태 전략에서 미국이 지향하는 대중국 합동작전을 의미하는 ‘상호작전’이라는 개념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고 뒤 인도 정부 당국자도 공식적으로 이런 기조를 확인했다. 텔리스와 티브이(TV) 토론에 나온 수브라마니암 자이샹카르 인도 외교장관도 “동맹을 찾아 전세계를 뒤지는 미국 같은 나라와 (인도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일본은 미국과 동맹 관계이지만 인도는 단지 동반자 관계다. 미국과 인도는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아르잔 타라포레 스탠퍼드대 연구학자도 ‘인도·태평양에서 최선의 미국 도박’이라는 제목의 반론 기고에서 “미국은 인도양에서 인도의 군사·경제적 능력 신장에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최선”이라고 했다. 과대포장된 인도의 취약성, 그리고 인도가 미국·중국·러시아 세 나라 사이에서 철저한 등거리 외교로 최대한 실리를 챙기는 건 동전의 양면일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에서 국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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