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나라일수록 늦게 자는데, 짧은 수면시간의 치명적 부메랑은 [사이언스라운지]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3. 7. 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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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은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얼마나 오래 자고 잘 자는지에 대한 정확히 보고 된 바가 없고, 최근 이를 밝혀내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연구진이 영국 노키아 벨 연구소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현대인의 수면이 국가의 국내총생산(GDP)과 지역 등 사회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 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KAIST 전산학부 차미영 교수가 이끄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팀과 노키아벨 연구소 연구팀은 스마트 워치가 상용화되며 데이터의 대량 수집이 가능해진 기회에 주목했다. 노키아에서 개발한 스마트 워치를 착용한 미국, 캐나다, 스페인, 영국, 핀란드, 일본을 포함 11개국의 3만82명으로부터 4년간 수집한 5200만 건의 데이터를 분석해 나라별 디지털 로그 기반 수면 패턴을 분석했다.

스마트워치 데이터에 기록된 취침 시간은 기존 설문지 기반 조사에 보고된 결과 대비 나라마다 수십 분에서 한 시간까지도 늦었다. 전 세계 평균 취침 시간은 자정(00:01)이고 기상 시간은 오전 7시 42분이었다.

기상 시간은 나라별 비슷하지만 취침 시간은 지리적 문화적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 특히 국민 소득(GDP)이 높을수록 취침 시간이 늦어졌으며, 문화적으로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 지수가 높을수록 취침 시간이 늦었다. 조사된 나라 중 일본은 총 수면시간이 평균 7시간 미만으로 가장 적었으며 핀란드는 평균 수면시간이 8시간으로 가장 길었다.

연구팀은 이와 함께 그동안 임상 연구에서 사용된 다양한 수면의 요소들을 정량화해 수면 효율성(취침 중 지 않고 연속으로 자는 시간의 비율)과 같은 질적 요인을 분석했다. 이들은 빅데이터를 사용해 개인마다 문화적 요인을 고정한 상태에서 운동량을 늘리면 수면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가상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걸음 수가 늘수록 취침 시 더 빨리 잠들고 밤에 덜 깨는 긍정적 효과를 확인했다. 운동량은 수면의 질을 개선하지만, 총 수면시간을 늘리지는 않았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운동의 긍정적 효과는 국가별로 달랐고 특히 미국과 핀란드에서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 반면 일본에서는 운동의 효과가 미미했다.

노키아 연구소 퀘르시아 박사는 “수면의 양과 질에 사회적 영향이 절반이나 차지했다”며 “고소득 국가에서는 업무 스케줄이 과도하고 근무시간이 길어지며 취침 시간이 늦어지고, 집단주의가 강한 스페인과 일본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취침 시간이 지연될 수 있다”고 연구 결과를 해석했다.

강원대학교 박성규 교수, KAIST 차미영 교수, 노키아 연구소의 퀘르시아 박사가 주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출판 그룹의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지난달 게재됐다.

수면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져있다. 특히 수면부족은 알츠하이머 등 치매 질환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진은 지난 2019년 ‘서파수면(깊은 수면)’을 잘 이루지 못하는 노인은 뇌에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으로 알려진 ‘타우 단백질’이 높은 농도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게재됐다. 당시 연구진은 60세 이상 노인 119명을 대상으로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이 중 80%는 인지기능이 정상이었고, 나머지는 경미한 인지능력 저하를 보였다.

먼저 연구진은 한 주 동안 실험 참가자들이 집에서 잠을 자는 상태를 관찰했다. 참가자들은 이마에 뇌파 측정 장치를 붙였고 밤잠과 낮잠 시간을 기록했다. 연구진은 또 각 참가자들의 뇌를 촬영해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을 관찰했다. 38명은 PET 촬영을, 104명은 뇌척수액을 조사했다. 27명은 두 가지 조사를 모두 받았다.

분석 결과 서파수면의 부족, 즉 깊은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참가자들 뇌에서는 알츠하이머 치매 원인 물질의 양이 높아지는 관계를 발견했다. 낮잠도 타우 단백질 증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낮잠을 자주 자느냐’고 물어보고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면 수면검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파수면은 아이들의 경우 전체 수면의 약 40%를 차지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짧아져 성인이 되면 25%로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파수면은 기억을 단기간 저장하는 뇌 부위인 해마에서 장기간 저장하는 전전두피질로 이동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서파수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새로운 기억이 해마에만 머무르고 전전두피질에 영구 저장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기억들이 전전두피질로 옮겨지지 못하면 해마에만 단기적으로 중복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건망증이 발생한다.

수면의 질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와도 관련이 있다. 201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 의대 연구진은 유럽 신경정신약물학회에서 ADHD가 수면장애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연구진들은 ADHD 아이들의 75%가 수면장애를 지니고 있어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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