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업은 美, 돈 쏟아붓는 英·佛…‘후발주자’ 韓, 경쟁력 강화 방법은 [심층기획-‘초거대 AI’ 시대의 도래]

이우중 2023. 7. 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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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거대 AI 시대’ 각국 경쟁 치열
佛·英 등 자체 ‘LLM’ 구축 나서
日도 새 국가전략 수립 목소리
韓, 기업·民·官 ‘AI 생태계’ 구축을
각국 미래 선점 경쟁 사활
美,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협업 활발
생성형 AI 행사·챗 GPT 워크숍 장사진
英·佛, 자체 언어모델 구축 재정 투입
이스라엘선 스타트업이 ‘LLM’ 발표도
韓, 특화 분야 승부 걸어라
글로벌 AI지수 상업화 항목 18위 최저
국내 스타트업 활동·투자 수준 ‘낙제점’
기업 연대·민관 협력 생태계 구축 시급
“한국어 특화·법률 의료 분야 집중해야”

인공지능(AI) 발전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초거대 AI’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국가 차원이나 국가 간 합종연횡을 통해 AI 국제표준을 선점하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초거대 AI 언어모델(LLM) 중 상용화까지 도달한 언어는 영어, 중국어, 한국어뿐이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영어권 국가는 물론 AI의 빠른 발전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던 유럽도 AI 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도 대기업과 스타트업 사이의 협업을 통한 AI 생태계 조성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AI 주도권 잡기 여념 없는 각국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유럽 최대 스타트업 행사 ‘비바테크’에 참석해 미국 오픈AI의 GPT-4, 구글의 팜(PaLM) 못지않은 언어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나라보다 초거대 AI를 더 견제했던 프랑스도 자체 LLM 구축에 5억유로(약 7100억원)를 투자하기로 하는 등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 나선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어로 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앵글로색슨족의 편견을 물려받은 AI모델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중보다 적은 투자를 하면서 규제부터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도 자체 LLM인 ‘브릿(Brit) GPT’ 구축에 나섰다. 초거대 AI 모델 훈련과 슈퍼컴퓨터 구축에 거액을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오픈AI가 런던에 첫 해외사무소를 여는 등 사업을 확장하자 가만히 있다가는 미국 기업이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도 초거대 AI 시대를 맞아 새로운 국가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지난 4월 자민당이 발표한 ‘AI 백서’는 “응용연구와 함께 기본 기술 개발역량을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AI21랩스도 지난 3월 차세대 LLM ‘쥐라기-2’를 발표했다. 2021년 GPT-3보다 파라미터 수가 많은 것으로 주목받았던 ‘쥐라기-1-점보’(1780억개)를 고도화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스타트업의 천국’으로 불리는 만큼 다양한 스타트업들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AI가 인류 평화와 안보에 미칠 수 있는 위협을 논의하는 회의를 이달 중순 처음으로 여는 등 글로벌 규제 움직임이 나타나는 데 따라 규제 추이에도 촉각을 기울여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달 안보리 순회 의장국인 영국의 바버라 우드워드 주유엔 대사는 18일 예정된 회의의 주요 안건으로 AI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에서는 급진전하고 있는 AI 기술에 대한 국제 전문가들의 견해를 청취하고 15개 이사국이 그 영향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뉴욕에서는 기업들이 채용 결정을 위해 사용하는 AI와 자동화 프로그램에 대한 규제가 미국 최초로 도입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뉴욕시가 5일(현지시간)부터 챗봇 인터뷰 툴, 이력서 스캐너와 같은 채용과 승진 결정을 돕는 특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기업들에 해당 도구의 인종과 성(性) 차별 가능성을 매년 감사해 홈페이지에 그 결과를 공개할 것을 의무화하는 ‘NYC 144’ 법률을 시행한다고 보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기업·스타트업 간 AI 협업이 중요”

한국의 인공지능(AI) 경쟁력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초거대 AI로 시장을 선점한 미국·중국에 비하면 후발주자다. 영국 데이터분석업체 토터스인텔리전스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글로벌 AI지수에 따르면 세계 주요 62개국 중 한국의 종합 AI 경쟁력은 6위를 기록했다.

분야별로는 알고리즘 설계 기술력 등을 측정하는 ‘개발’ 항목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 종합 1, 2위인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반면 ‘상업화’ 항목에서 가장 낮은 18위를 받았는데, 이는 스타트업 활동과 투자 수준 등을 측정한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수긍할 만한 결과”라며 “미국과 중국은 초거대 AI가 개발돼 현지 스타트업들과 협력하고 있고, 한국의 네이버나 카카오는 아직”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에서) 먼저 AI 서비스를 출시하고 우리 스타트업들과 제휴해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국내 AI 스타트업 시장도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AI지수 상업화 항목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이다. 2022년 4분기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북미 기술 스타트업 투자가 전년 대비 63% 감소했음에도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 AI 스타트업 투자 물결을 일으켰다.

이 교수는 “초거대 AI는 초기 인프라 비용이 상당하다”며 한국의 자체적인 AI 생태계는 재원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어에 특화된 AI, 법률이나 의료 등 특화된 분야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리적인 환경도 AI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린(유연) 스타트업’ 방법론의 창시자인 스티브 블랭크 스탠퍼드대 교수는 올해 4월 자신의 블로그에 “수십 년 동안 실리콘밸리 창업자와 투자자들은 ‘네트워크 효과’를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며 실리콘밸리의 비결 중 하나는 비슷한 분야의 기업들과 종사자들이 가까이 지낸 것이라고 짚었다. 미국 인터넷매체 복스는 최근 실리콘밸리가 “2000년대 모바일 스타트업 붐 시절의 열기를 되찾았다”며 올해 2월 생성형 AI 관련 수십 개의 행사가 개최됐고, 한 스타트업이 연 챗GPT 워크숍에는 1000명이 넘는 참가자가 몰렸다고 전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합종연횡 나서는 기업들… 민·관도 맞손

한국에서도 이런 환경을 조성하려 하고 있다.

이 교수는 “클러스터 형식으로 산업체와 연구기관이 한곳에 모이면 개발 경험을 공유하는 등 좋은 의미가 있다”며 “기업 간의 연대와 민·관 협력을 통해 한국이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다. SK텔레콤은 ‘K-AI 얼라이언스’를 선언하고 11개 업체와의 협력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서비스형 로봇인 씨메스, 산업용 AI 플랫폼인 마키나락스, AI 개발용 클라우드인 프렌들리AI, 감성 AI인 스캐터랩 등과 추가로 협력했다. 지난달 16일에는 유영상 SK텔레콤 사장 등 K-AI 얼라이언스 대표들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아 글로벌 AI 생태계 선도를 위한 사업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KT는 자체 초거대 모델인 ‘믿음’을 활용해 AI 인프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을 클라우드로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며 국내 스타트업인 리벨리온과 AI 반도체 분야에서 협력을 맺었다. 카카오도 하반기 ‘코GPT 2.0’ 출시와 함께 다른 생성형 AI와의 제휴를 모색 중이다. LG AI연구원은 국내 AI 반도체 개발 업체 퓨리오사AI와 손을 잡았고, 삼성전자도 네이버와 함께 초거대 AI용 반도체 제작에 나섰다.

정부와 지자체도 국내 AI 반도체·클라우드 업계와 한 팀을 이룬다. ‘팀 코리아’를 통해 AI 선도 그룹에 이름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최근 1단계 프로젝트에 착수한 ‘K-클라우드 프로젝트’는 국산 AI 반도체를 국내 클라우드 업계가 데이터센터에 적용하는 것으로 8262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와 ‘민간의 첨단 초거대 인공지능 활용지원 사업’을 추진한다. 국내 초거대 AI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중소벤처기업과 공공 부문 초거대 AI를 선도적으로 도입하려는 취지다. 이밖에 서울시는 지난달 21일 서울 양재동에 20만㎡ 규모의 AI 산업단지를 짓고 국내외 AI 전문 대학원, 기업, 연구기관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광주시도 2020년부터 AI 산업융합집적단지를 짓고 있다.

이우중·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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