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구글, 메타 … 플랫폼은 규제할 수 있을까
‘플랫폼 저격수’의 빗나간 탄환
MS-블리자드 세기의 빅딜 위기
연방법원 인수 금지 가처분 인정
리나 칸 FTC 위원장 M&A 제동
플랫폼 저격수다운 행보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업적 못 남겨
플랫폼 규제 그만큼 어렵단 방증
플랫폼 규제 논의 공전 중인 한국
규제 or 자율 어떤 길에 서야 하나
# 리나 칸 FTC 위원장은 실리콘밸리를 벌벌 떨게 했다. 대표적인 플랫폼 규제론자였기 때문이다. '저승사자' '저격수' '보안관'이란 별칭으로 불릴 정도였으니, 그의 성향을 가늠하는 건 어렵지 않을 듯하다.
# 다만,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적은 없다. 현재로선 'MS-블리자드 M&A'에 제동을 건 게 유일한 업적이다. 메타가 추진하던 VR업체 위딘 M&A 작업에 제동을 걸었지만, 실패했다. 취임 초기부터 추진해 온 아마존웹서비스(AWS)의 반독점 조사는 아직까지 뾰족한 성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 일부에선 칸 위원장의 규제론이 현실적이지 않았다고 비판하지만, 반대 논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플랫폼을 규제하는 게 그만큼 까다롭고 어렵다는 거다. 관련 논의를 한창 진행 중인 우리나라가 눈여겨봐야 할 논쟁점이다.
지난해 1월 18일(현지시간) '세기의 딜'이 발표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게임사 액티비전블리자드(블리자드)를 인수한다는 거였다. 금액은 687억 달러. 우리 돈으로 90조원을 넘는 천문학적인 규모였다. 당시 블리자드 종가에 45%의 프리미엄을 더했다. MS의 인수ㆍ합병(M&A) 역사상 최대 베팅이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IT 산업에서도 전례가 없던 액수였다.
MS는 PC용 윈도ㆍ오피스가 주력 무기지만, 게임에도 꽤 공을 들여왔다. 2001년 콘솔 게임기 '엑스박스'를 출시해 20년 넘게 플레이스테이션을 만든 소니와 경쟁해 왔다. 지금은 '게임패스'를 통해 클라우드게임 시장점유율 과반을 차지했다.
가뜩이나 경쟁력이 상당한데, 여기에 블리자드까지 합세하면 그 입지는 더 공고해진다.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워크래프트, 콜오브듀티 등 인기 지식재산권(IP)을 다수 보유한 세계 최고 게임사 중 하나다. MS가 블리자드를 M&A 하는 순간 중국 텐센트, 일본 소니를 잇는 세계 3위(매출 기준) 게임사로 등극한다. 여러모로 세기의 딜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1년 반이 흐른 지금, 세기의 딜은 성사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 놓였다. MS와 블리자드는 따로따로 경영 중이다. 뭐가 문제였을까.
■ 칸의 작은 성과 = 지난 6월 13일 미국 연방법원은 "MS의 블리자드 인수를 막아 달라"는 내용의 가처분을 인용했다. 신청자는 미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격인 연방거래위원회(FTC)였다.
지난해 말 FTC는 기관 내부 행정법 판사에게 다음과 같은 소송을 제기했다. "MS가 블리자드를 인수하면 게임 산업의 경쟁이 줄어들 것이다. 인수를 금지해야 한다." [※참고: FTC는 행정법 판사를 기관 내부에 따로 두고 있다. 판사이면서도 FTC 기관 소속으로 경쟁법 관련 사건을 다룬다.] 이 소송의 결과는 이르면 7월 중순께 나오는데, FTC는 이에 앞서 연방법원에 'MS의 인수를 막아달라'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두 회사가 체결한 인수 계약은 올해 7월까지 유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MS가 블리자드 인수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FTC가 '인수 금지 가처분'이란 승부수를 꺼내 들었고, 연방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8월이 되면 두 회사가 인수 계약을 다시 체결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연방법원의 가처분 인용은 세기의 딜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당초 MS는 블리자드 인수 가능성을 낙관하고 있었다. 같은 사업 부문을 인수하는 수평결합이 아닌 다른 사업 부문(MS는 게임 유통-블리자드는 게임 제작)을 인수하는 수직결합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FTC는 그간 수직결합 중심의 M&A는 대부분 승인해 왔다. 2020년 9월 MS가 75억 달러에 달하는 거금을 투자해 게임사 제니맥스미디어를 인수할 때도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다.
그런데 2년 뒤 FTC의 판단이 달랐으니, MS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다. FTC 측은 성명을 통해 "MS가 블리자드의 인기 게임을 이용해 경쟁사로부터 이용자를 유치할 수 있다"며 "이미 MS는 제니맥스미디어를 인수하며 경쟁사에 게임 제공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고 강조했다.
똑같이 게임사를 인수했는데, FTC의 판단이 180도 달라진 이유는 뭘까. 이 질문의 답은 FTC의 수장 '리나 칸'을 통해 찾을 수 있다. 2021년 6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당시 32세였던 리나 칸 컬럼비아대 교수를 FTC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미국 공정당국의 리더에 오른 칸 위원장의 별명은 흥미롭게도 '아마존 저격수'였다.
칸 위원장이 쓴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Amazon's Anti-trust Paradox)'이란 논문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면서 얻은 별명이었는데, 이때 그는 "기존 경쟁법으로는 아마존 같은 빅테크의 독과점을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 우리나라로 치면 공정거래법에 해당하는 미국의 경쟁법은 독점을 판단할 때 시장점유율보단 '소비자 후생'을 중시해 왔다.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아무리 높더라도 '가격이 높지 않으면' 독점은 아니라고 해석할 때가 많았다.
정부 개입이 필요한 시점은 그 기업이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가격을 좌지우지하고, 부당하게 인상할 때였다. 1980년대 활약한 보수 대법관 로버트 보크는 "반反독점의 유일한 목표는 소비자 후생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관점을 적극 수용한 결과였다.
실제로 아마존은 미국 이커머스 시장을 점령했지만, 경쟁사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했다. 미국 경쟁법의 시선에서 아마존은 당연히 독점기업이 아니었다. 이는 대부분의 빅테크 플랫폼 기업이 그랬고, 소비자 후생을 앞세워 경쟁법의 칼날을 피해 왔다. FTC가 2010~2019년 5대 빅테크(메타ㆍ구글ㆍ아마존ㆍ애플ㆍMS)가 진행한 616건의 기업인수를 승인했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칸 위원장의 관점은 완전히 달랐다. 아마존이 가격을 낮춘 건 순전히 시장을 지배하기 위한 전략이었기 때문에, 가격을 건드리기 전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플랫폼의 지배력이 커질수록 소상공인, 저임금 노동자가 플랫폼에 종속되는 식의 폐해를 막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이런 맥락에서 리나 칸을 FTC 위원장에 선임한 바이든 정부의 목표는 분명했다. 빅테크를 이대로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아마존과 메타가 리나 칸 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자사 관련 경쟁법 조사에서 칸 위원장을 빼달라"고 요구한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칸 위원장이 이끄는 미국 FTC는 그렇게 '독점과의 전쟁'에 돌입했고, 지금은 글로벌 게임 산업을 삼키려는 MS의 야망을 저지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 칸의 수많은 실패 = 다만 이번 'MS-블리자드 M&A'의 가처분 승부수가 칸 위원장의 가장 두드러지는 업적이라는 건 수많은 생각할 점을 남긴다. 취임 후 2년 동안 칸 위원장의 빅테크 규제 시도는 번번이 국회와 법원에 막혔기 때문이다.
FTC는 엔비디아의 Arm 합병에 제동을 걸어 실제 인수를 무산시켰다. 하지만 이 합병은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경쟁 당국의 승인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엔비디아-Arm M&A 무산을 칸 위원장과 FTC의 과업으로 보긴 어렵다는 거다.
칸 위원장이 체면을 구긴 일도 있었다. FTC는 올해 초 VR업체 위딘을 인수하려던 메타의 발목을 잡았다. FTC는 MS-블리자드 인수를 막았던 것처럼 자체 행정심판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연방법원에 인수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는데, 연방법원은 메타의 위딘 인수에 '독과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기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칸 위원장의 빅테크 규제가 제동이 걸린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칸 위원장은 취임 초기부터 아마존웹서비스(AWS)의 반독점 여부를 조사해 왔지만, 여태까지 아무런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FTC가 빅테크 규제를 파격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만들었던 '빅테크 반독점 패키지 법안'의 핵심안들은 올해 초 상원에서 폐기 처분됐다.
그사이 실리콘밸리의 저항은 거세졌다. 아마존은 지난해 6월 협력사들에 빅테크 규제에 반대하는 서명을 해달라고 나섰다. FTC와 경쟁법 소송을 벌인 메타와 블리자드는 "M&A를 막는 건 혁신을 막고 소비자 후생을 끌어내리는 일"이라면서 FTC를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다수당에 등극한 공화당은 "소비자의 이익이 증대된다"는 이유로 플랫폼 규제 입법을 저지하고 있다.
김병권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은 "탄탄한 논리로 무장한 리나 칸 위원장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독점적 횡포를 막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반대 진영의 여론전에 부딪히게 됐다"면서 "한국에서 플랫폼 서비스의 먹통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규제와 입법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번번이 무산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 한국 공정위의 고민 = 공교롭게도 한국 공정위도 플랫폼 규제 이슈에 직면해 있다.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 때 추진했던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을 제정하는 대신 민간 차원의 자율규제를 국정과제로 제시했고, 지난 5월 이 방안을 공개했다. 여기엔 검색 결과를 노출하는 기준을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오픈마켓 입점업체와의 갑을 관계를 개선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럼에도 대형 플랫폼의 독과점을 어떻게 막을지를 둘러싼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지난해 10월 터진 '카카오 먹통 사태'를 계기로 온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민간에 맡긴 자율규제가 법망을 대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많다.
다만 어느 쪽의 주장도 큰 힘을 얻진 못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와 공론 과정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아마존 저격수' '플랫폼 저승사자'로 불리던 리나 칸 위원장도 쉽게 실행하기 어려울 만큼 플랫폼 규제는 까다롭고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다.
유영국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공정위를 비롯해 정부의 역할이 상당했던 우리나라의 규제 환경에 비춰 보면 자율규제 체계의 온전한 작동을 기대하는 건 쉽지 않다"면서 "플랫폼이 우리 생활과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만큼 시장 전반의 규범체계를 정비하는 차원에서 논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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