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만원에 산 신발, 2천만원까지 올랐어요”...‘리셀 문화’의 상징 에어조던 탄생비화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3. 7. 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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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85] 영화 ‘에어’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984년 나이키의 농구화 시장 점유율은 17%에 불과했다. 1위 컨버스의 54%, 2위 아디다스의 29%에 비해 크게 처졌다. 매출은 떨어지고 있었고, 주가도 하락세였다. 창업자 필 나이트는 추후 주주 서한에 그해를 이렇게 회상했다. “조지 오웰이 맞았다. 1984년은 힘든 한 해였다.”

나이키의 스카우터 소니 바카로는 마이클 조던과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사활을 건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약 40년이 지난 2023년, 나이키 농구화 시장 점유율은 90%를 넘나든다. 1984년 1위 컨버스는 이제 나이키 산하 브랜드가 됐다. 2003년 나이키가 약 4000억원(3억500만달러)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3위 나이키를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로 만들었는가. 영화 ‘에어’(2023)는 1984년 있었던 한 사건을 지목한다.
벤 애플렉이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로 나온다. 그는 이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농구 천재 마이클 조던, 그를 잡기 위해 올인한 남자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는 나이키의 스카우터다. 나이키 모델이 될 스포츠 스타를 발굴하고 설득하는 역할이다. 그간 농구 담당 부서의 실적이 형편 없어 나이키 내에서 입지가 좁다. 그에게는 나이키 농구화 판매에 날개를 달아줄 새 얼굴이 필요하다.
마이클 조던의 부모. 어머니의 입김이 센 가정으로 그려진다. 소니도 그녀를 설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소니가 발견한 건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마이클 조던이다. 그는 조던에게서 농구의 미래를 본다. 당시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3순위였던 조던을 잡기 위해 소니는 부서의 가용 자원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인 3명과 계약할 수 있는 25만달러(3억2575만원)를 조던에게 올인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창업 초기의 필 나이트. 육상 선수였던 그는 1964년 블루 리본 스포츠를 세우며 스포츠 용품 사업을 시작한다. /사진 제공=나이키
CPA인 필 나이트(벤 애플렉)는 이 아이디어가 탐탁지 않았다. 아직 프로 무대에서 검증되지 않은 루키에게 거액을 투자하는 건 리스크가 지나치게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소니는 한술 더 떠 조던만을 위한 제품 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커리어를 건 베팅을 한 것이다.
소니는 조던 모친을 직접 만나러 간다. 당시 나이키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은 이것이 영화적 과장일 수 있다고 본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조던은 아디다스를 좋아했다
사실 더 큰 난관은 조던 본인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대학 시절 조던은 컨버스와 계약돼 있었지만, 경기 종료 후에는 아디다스를 신었다. 컨버스 또한 이를 묵인해줄 정도로 조던은 아디다스에 매료돼 있었다. 혈기왕성한 신인이었던 조던은 3등 브랜드와 계약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나이키 상징인 스우시 로고는 1971년 탄생했다. 대학생 캐롤린 데이비슨에게 단돈 35달러를 주고 만든 것이다. 추후 필 나이트는 그녀에게 다이아몬드가 박힌 나이키 로고 모양 금반지와 나이키 주식 500주를 선사했다. /사진 제공=나이키
영화는 소니가 회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던 마음을 돌리는 과정을 담는다. 그는 스카우터를 통하지 않은 채 조던 엄마를 먼저 만나며 상도덕도 어긴다. 상품 매출의 일정 비율을 선수에게 줘야 한다는 조던 엄마의 계약 사항까지 받아들인 끝에 나이키는 조던과 사인한다. 출시 첫해에 1억2600만달러(1641억원) 매출을 발생시킨 ‘에어 조던’ 탄생사다.
소니는 일생일대의 계약을 성사시킨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아디다스는 조던을 알아보지 못했다
실화 기반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 이 작품은 실제와 다른 내용을 다수 삽입했다. 일례로 나이키가 실제로 조던에게 제시한 금액은 5년 간 총 250만달러였다. 연간으로는 50만달러씩이다. 이는 영화에서 나이키와 조던이 사인한 액수로 나오는 연간 25만달러의 2배다. 아마 당시 나이키가 겪던 재정적 어려움을 보다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영화적 장치였을 것이다.
조던 엄마는 아들이 나이키와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설득한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밖에 여러 디테일이 실화와 다르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디다스에 대한 묘사다. 영화에선 아디다스가 계속 나이키의 계약 조건을 따라잡으며, 둘 사이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로 아디다스는 조던에게 그 정도로 큰 관심은 없었다. 조던이 아디다스에 나이키와의 계약 내용을 알려준 뒤, 이와 비슷하게만 맞춰주면 아디다스와 손잡겠다고 제안했지만, 아디다스는 시큰둥했다. 조던은 “그게 내 결정을 쉽게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마이클 조던이 현역 시절 선수 생활로 벌어들인 돈이 9360만달러다. 지난해 나이키 브랜드에서 벌어들인 돈은 그 두 배를 훌쩍 넘는 2억5600만달러다. /사진 제공=NBA엔터테인먼트
나이키와 조던은 역사를 썼다
아디다스가 조던을 알아보지 못함으로써 나이키와 조던은 역사를 썼다. 조던 브랜드가 지난해 벌어들인 돈은 51억달러(6조6453억원)로 전년 48억달러(6조2544억원)에서 3억달러나 늘었다. 나이키 지난해 매출 467억달러(60조8501억원)에서 조던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넘는다. 이제는 나이키 산하 브랜드가 된 컨버스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 정도라는 점을 보면, 조던 브랜드의 무게감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서울 홍대에 개점한 ‘조던 월드 오브 플라이트’. 오로지 조던 브랜드만을 위해 만든 매장으로, 밀라노와 도쿄에 이어 서울에 세 번째 숍을 오픈했다. /사진 제공=나이키
조던은 세계적 갑부가 됐다. 그가 선수 생활로 벌어들인 돈이 9360만달러(1219억원)인데, 지난해 나이키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 2억5600만달러(3335억원)다. 단지 ‘농구 황제’로만 군림했다면 절대 못 만졌을 돈을 나이키와의 협업으로 만든 것이다. 포브스는 조던 재산을 20억달러(2조6060억원)로 추정하는데, 그중 절반 넘는 돈이 나이키와의 계약에서 나왔다. 조던은 자기 이름이 들어간 제품의 매출에서 5%를 가져간다.

사회 곳곳의 문화 현상을 ‘조던’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일례로 인기 상품을 사서 웃돈을 받고 파는 ‘리셀 문화’를 얘기할 때, 조던은 빠지지 않는다. 2020년 300만원에 출시된 ‘디올 X 에어조던1’은 리셀가가 1000만~2000만원에 달했으며, 올해 4월 트래비스 스캇과 조던 브랜드가 협업해 내놓은 스니커즈 역시 출시가 대비 10배 이상으로 리셀됐다.

에어 조던을 디자인하기 위해 회의하는 나이키 직원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남의 재능을 알아보는 건 귀한 재능이다
‘에어’는 극의 재미를 만들기 위해 여러 팩트를 축소하고, 과장했다. 시간 순서를 일부러 뒤섞은 부분도 있다. 비즈니스 실화를 담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욕구가 재미를 넘어서 ‘지식의 습득’에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이 작품의 태도는 다소 가벼운 측면이 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경쾌하다. 극영화로서 잘 만들어졌다. 다만, 만듦새를 위해 팩트를 지나치게 축소하고 과장한 인상이 있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럼에도 이 영화가 끝까지 담아내려 했던 하나의 팩트는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남의 재능을 알아보는 것 역시 역사를 바꿀 만한 귀한 재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조던을 알아본 소니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그런 소니의 감식안을 인정하고 지지해준 필 나이트 또한 자기 재능을 발휘한 셈이다. 결국 세상을 진보시키는 건 누군가의 뛰어난 재능, 그리고 그의 달란트를 알아채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재능일 것이다.
영화 ‘에어’ 포스터.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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