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범에게 인증번호 건넸다가 기소유예…헌재서 취소

2023. 7. 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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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보이스피싱범에게 수익금을 약속받고 인증번호 등을 건네준 혐의를 받았던 A씨에 대해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하지만 A씨는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했는데, 인증번호를 넘겨받은 인물이 A씨 명의의 계좌를 계설해 보이스피싱에 이용했고, 검찰은 A씨가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인증번호 등을 전달한 것이라 보고 기소유예 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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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 받았던 A씨
검찰에서 혐의 전제 ‘기소유예’ 처분 받아
A씨, 기소유예 부당하다며 헌법소원
헌재 “돈 돌려받으려던 것…A씨가 피해자”
혐의 인정 전제 검찰 기소유예 처분 취소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헤럴드경제 DB]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헌법재판소가 보이스피싱범에게 수익금을 약속받고 인증번호 등을 건네준 혐의를 받았던 A씨에 대해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자신이 송금한 돈을 출금하기 위해 보낸 것일뿐 계좌 개설을 위해 건넨 것으로 볼 수 없어, 대가관계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한 기소유예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단이다.

헌재는 A씨가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기소유예는 죄를 짓긴 했지만 굳이 재판에 넘길 정도는 아니라고 검찰이 판단해 사건을 종결하는 처분이다. 불기소 처분에 해당하지만 범죄 혐의를 인정하고 재판에만 넘기지 않는 것이어서, 당사자는 헌법소원을 통해 ‘혐의 자체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기소유예 처분이 부당하다’고 다툴 수 있다.

앞서 A씨는 2021년 7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검찰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전자금융거래법은 ‘누구든지 접근매체를 사용 및 관리함에 있어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대여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또는 보관·전달·유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전자식 카드 및 준하는 전자적 정보, 인증서, 이용자번호, 생체정보, 비밀번호 등이 접근매체에 해당한다.

검찰은 A씨가 SNS인 인스타그램 광고를 통해 연결된 사람으로부터 ‘투자금을 입금해 수익금이 발생하면 돌려주겠다’는 취지의 제안을 받고 투자금을 입금한 후 지시하는 대로 인증번호 등을 알려줬다고 봤다. 하지만 A씨는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했는데, 인증번호를 넘겨받은 인물이 A씨 명의의 계좌를 계설해 보이스피싱에 이용했고, 검찰은 A씨가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인증번호 등을 전달한 것이라 보고 기소유예 처분했다.

그러자 A씨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으로 행복추구권 등이 침해됐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인증번호 등을 전달한 것이 아닌데도 이를 전제로 판단한 검찰의 처분이 잘못됐다는 취지다. 오히려 보이스피싱 범죄의 피해자로, 송금한 돈을 출금하기 위해 본인인증에 필요한 서류, 인증번호 등을 보낸 것이란 주장이었다.

헌재는 A씨 주장을 받아들여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헌재는 법에서 정한 ‘접근매체의 대여’와 관련해 “여기서 ‘대가’란 접근매체 대여에 대응하는 관계이 있는 경제적 이익”이라며 “대여하는 사람은 대응하는 경제적 이익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대여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고 이러한 법리는 ‘접근매체 전달’에도 적용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 사건에서 A씨가 접근매체 전달을 요구받은 시기는 A씨 투자로 수익금이 발생했다고 고지받은 후여서 접근매체 전달과 수익금 발생은 상관관계가 없다”며 “접근매체 전달 전까지 계좌 개설에 대한 이야기도 전혀 들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A씨는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로 단지 자신의 투자금 등을 출금하기 위한 인터넷 사이트 본인인증 수단으로 접근매체를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이 인정된다”며 “접근매체 전달에 해당한다는 전제 하에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은 자의적 검찰권 행사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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