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아웃 200억” “정산 불투명”…피프티 피프티 진흙탕 싸움
“확인할 게 하나 있다. 제가 안성일 (더기버스) 대표한테 바이아웃으로 200억원을 제안했다.”(윤아무개 워너뮤직코리아 전무)
“전 못 들어봤다. 바이아웃이라는 게 뭔가.”(전홍준 어트랙트 대표)
지난 3일 여성 아이돌 그룹 ‘피프티 피프티’의 소속사 어트랙트가 공개한 39초 분량의 녹취 가운데 일부다. 두 사람이 올해 5월9일 통화한 내용이었다. 녹취에 나오는 바이아웃(buyout)은 프로 스포츠 분야에서 주로 쓰는 용어다. 특정 구단에 소속된 선수에게 외부 구단이 일정 금액 이상의 이적료를 제시해 기존 계약을 해지하고 영입하는 것을 말한다.
잘나가는 선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쓰는 이 용어가 가요계에 등장하면서, 피프티 피프티 사태는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멤버-소속사(어트랙트)-프로듀서(더기버스)-음반 레이블(워너뮤직코리아) 주장이 엇갈리면서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최단·최장…빌보드 기록 남기고
피프티 피프티는 지난해 11월 데뷔한 중소 기획사 어트랙트 소속의 4인조 걸그룹이다. 이 그룹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전홍준 어트랙트 대표와 안성일 더기버스 대표이자 프로듀서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 두 사람은 2020년 걸그룹 연습생 12명을 뽑은 뒤 2년 동안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 지난해 최종 선발한 4명을 피프티 피프티라는 이름으로 데뷔시켰다. 걸그룹이 탄생하기까지 드는 비용은 얼마쯤일까. 레슨비(노래·안무·연기·영어), 뮤직비디오 제작비, 합숙비 등으로 쓰이는 비용은 적게는 5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이 넘는다. 하이브나 와이지(YG), 제이와이피(JYP) 같은 대형 기획사는 감당할 여력이 되기 때문에 아이돌 그룹 데뷔와 프로듀싱, 트레이닝을 함께 진행한다. 그러나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 기획사한텐 한 단계씩 나아가는 것도 힘에 부치는 일이다. 어트랙트의 전 대표도 더기버스와 외주용역계약을 맺고 안 대표에게 프로듀싱과 트레이닝을 맡겼다.
그렇게 발표된 노래 ‘큐피드’는 예상 밖의 성공을 거뒀다. 틱톡을 매개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이들은 중소기획사 신인으로는 이례적으로 미국 빌보드와 영국 오피셜 차트 상위권에 진입했다. ‘케이팝 사상 최단기간(135일)’ 빌보드 핫100 진입에 이어 지난 5일까지 24위를 기록하며 ‘케이팝 걸그룹 사상 최장기간(15주)’ 핫100 진입 기록도 써 내려갔다.
피프티 피프티는 국내보다 국외에서 먼저 뜨면서 케이팝 성공 방정식을 바꿔 놓았다는 평가와 함께 ‘제2의 방탄소년단이 중소 기획사에서 나올 가능성을 열었다’는 찬사도 받았다. 전 대표가 “앨범을 발매해야 하는데 자금이 모자라 명품시계와 차까지 팔았다”(지난 5월 <스포츠서울> 인터뷰)는 훈훈한 미담까지 알려지면서 피프티 피프티 멤버와 이를 뒷바라지한 이들에겐 꽃길만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멤버 4명은 지난달 19일 “어트랙트의 투명하지 않은 정산”을 이유로 전속계약의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어트랙트는 지난달 27일 “피프티 피프티 강탈 시도가 있었다”며 배후로 안 대표와 ‘큐피드’의 국외 유통사인 워너뮤직코리아를 지목하며 안 대표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어트랙트는 이어 워너뮤직코리아 쪽과의 ‘바이아웃 통화 내용’까지 공개하면서 더기버스가 워너뮤직코리아와 200억 계약을 독단적으로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더기버스가 소속사 몰래 멤버를 빼돌리려 한 증거란 얘기다.
이에 더기버스는 “안 대표가 워너뮤직코리아의 ‘레이블 딜’ 제안을 어트랙트에 전달했으나 전 대표가 어트랙트의 상장을 희망해 이를 거절한 것”이라며 “멤버 거취를 독단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레이블 딜’은 중소 회사를 글로벌 직배사 소속 레이블로 두고 자금을 제공하는 투자 방식이다. 바이아웃 제안을 두고 어트랙트는 외부세력의 멤버 빼가기 의혹을 주장하고 있고, 더기버스는 투자를 중재하려 했다고 맞서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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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피프티 피프티는 내홍 뒤 활동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들은 할리우드 영화 <바비>의 삽입곡 중 하나인 ‘바비 드림스’를 불렀지만, 이번 사태의 여파로 뮤직비디오 촬영이 사실상 무산됐다. 예정됐던 국외 공연 일정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다음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케이콘 엘에이(KCON LA) 2023’ 출연도 없던 일이 됐다. 오는 11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한-영 수교 140주년 기념 공연에도 역시 출연하지 않는다. 예정됐던 광고,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마찬가지다.
전 재산을 투자했지만 모든 걸 잃을 위기에 놓인 전 대표, 거액 투자를 받았으나 다시 토해내야 할 처지에 몰린 안 대표, 데뷔 7개월 만에 소속사에 정산을 요구해 여론의 싸늘한 시선을 받는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의 미래 모두 안갯속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재판장 박범석)는 지난 5일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이 어트랙트를 상대로 낸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심문기일을 열었다. 어트랙트 쪽 변호인은 “전 대표는 구순 어머니가 모은 9천만원까지 포함한 80억원을 투자해 이 팀을 성장시켰다”며 “외부세력이 이를 강탈한다면 앞으로 케이팝 시장에서 어떤 중소 기획사가 위험을 감수하면서 거액을 투자해 케이팝의 미래를 짊어질 아티스트를 발굴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정산 의무 불이행에 대해선 “중대한 오해가 있거나 의도적으로 왜곡된 설명”이라고 반박했다.
피프티 피프티 변호인은 멤버들을 향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멤버들이 돈을 빨리 달라는 취지가 아니다. 억측과 비난에 굉장히 시달리고 있다”며 “아티스트와 소속사의 신뢰관계가 전속계약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어트랙트 쪽이 주장하는 외부세력 개입에 대해서는 “사건의 본질 흐리기”라고 반박했다.
전속계약 효력정지 사건은 이르면 이달 말 법원의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나든, 다툼 끝에 소속사·멤버·프로듀서 모두 상처가 남을 것으로 보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서 희극은 비극으로 변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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