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자·은행이 짠 판에 광주 24세대 아파트 분양 사기 피해

평가 없이 지인인 건설업자에 33억 대출한 은행 임원 감형
검찰, 임원에 횡령 지시한 은행 이사장도 기소…업자는 중형

광주 고등법원./뉴스1 DB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광주 광산구의 한 아파트를 매입한 20여세대가 짜고 치는 건설업자와 대출 은행 관계자에 속아 속절 없이 이중·삼중 분양 사기를 당했다.

사기를 주도한 건설업자는 징역 13년의 중형을, 건설업자와 동조해 분양 사기 피해 규모를 키운 한 은행 임원은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았지만 피해자들은 사기범들에 대한 형사 처벌에도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해 주거를 잃을 상황에 처했다.

광주고등법원 제2-2형사부(재판장 오영상)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은 광주 한 은행 전직 임원 A씨(56)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고 9일 밝혔다.

광주 한 은행의 전무이사로 근무한 A씨는 2016년 10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지인인 건설업자 B씨(55)에게 무담보로 33억3000만원의 은행 대출을 내준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은행 대출에 있어 필수적인 채무자의 변제력 평가와 담보 설정 등 절차를 밟지 않고 평소 알고 지낸 B씨가 부탁을 해오자 은행 명의의 연대보증서와 은행 대출을 승인했다.

건설업자 B씨는 2016년부터 광주에서 2개 아파트 건축공사, 경기도에서 1개 아파트 건축공사를 시행하는 등 여러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한 건설사의 대표다.

B씨는 2019년 1월쯤 시공 중인 아파트가 준공되면 돈을 갚을 수 있다며 한 회사로부터 35억원을 빌리고, 같은해 4월쯤엔 다른 건설사의 명의를 도용해 다른 은행으로부터 7억원이 넘는 돈을 빌려 갚지 않았다.

특히 B씨는 광주 광산구에 자신이 건설한 아파트 중 이미 분양계약이 체결돼 있거나 중도금 대출이 실행된 아파트들을 저렴한 가격에 매매하는 것처럼 수십명을 속여 '아파트 이중·삼중 분양 사기'를 저질렀다.

분양사기 피해 세대는 24세대로 추정된다.

그는 아파트 분양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수십억원의 적자가 발생하자, 소유권을 이전해줄 생각이나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이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B씨의 회사는 만기 종료를 앞둔 어음금 채무를 갚지 못해 재무 상태가 좋지 않았고, 자금 부족으로 아파트 공사도 지연돼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대신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B씨는 이미 매매된 아파트를 1000만~2000만원 저렴하게 분양한다며 매입자를 모집한 뒤 허위 계약서를 작성했다. 분양 사기 피해자들은 이 건설업체와 연결된 은행(B씨 근무)에 중도금 대출 여부 등을 문의했지만 '별 문제 없다'거나 '확인해줄 수 없다' 등으로 대답을 받았다.

은행과 건설업자를 믿은 피해자들은 아파트 매매금을 건넸으나 아파트 명의는 넘겨받지 못한 상태에서 입주, 실제 아파트 소유자,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으로부터 명도 집행을 당한 상황이다.

여러 사기로 총 90억원을 가로챈 B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사기),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돼 올해 1월 광주지법에서 징역 13년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은 이 분양 사기와 관련한 수사를 확대, 올해 3월말쯤 A씨에게 배임행위를 지시한 혐의로 해당 은행의 C이사장을 기소했다.

재판부는 A씨가 C씨의 지시에 따라 소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점, A씨가 이 범행으로 얻은 경제적 이익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감형했다.

재판부는 "A씨는 자금력이 부족한 B씨 회사의 차용금 채무를 만연히 연대보증하는 등의 범행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은행은 33억원 상당의 채무를 부담하게 됐고 채권자들과 각종 민사소송에 휘말리는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A씨의 임무 위배의 정도가 무겁도 범행 수법도 불량해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서 "은행 이사장의 지시에 따라 소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점, 민사소송에서 인정된 피해금이 9억8000만원인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한다"고 판시했다.

sta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