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에 속아 통장 대여…헌재 "피해자 처벌은 부당"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
청구인 "출금 위해 인증번호 보낸 것일 뿐"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보이스피싱에 속아 자신의 명의로 된 계좌를 제공한 피해자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사진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배석하는 모습. 2023.06.29.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준호 기자 = 보이스피싱에 속아 자신의 명의로 된 계좌를 제공한 피해자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청구인 A씨가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을 했다고 9일 밝혔다.

A씨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광고를 통해 알게 된 성명불상자로부터 "투자금을 입금해 수익금이 발생하면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투자금을 입금했다.

이후 A씨는 수익금을 받기 위해 지시대로 인증번호 등을 알려줬으나 투자금도 받지 못했고 도리어 보이스피싱 조직에 자신의 명의로 된 계좌를 제공한 꼴이 됐다.

이에 검찰로부터 접근매체를 전달했다는 범죄사실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는 불기소 처분의 일종으로 범죄 혐의는 인정되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A씨는 돈을 출금하기 위해 인증번호 등을 보낸 것이지 계좌 개설을 위해 보낸 것은 아니라며 맞섰고, 검찰의 기소유예처분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접근매체를 대여하는 자는 접근매체 대여에 경제적 이익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청구인이 접근매체 전달을 요구받은 시기는 수익금이 발생했다고 고지받은 이후로 접근매체 전달과 수익금 발생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했다.

이어 "접근매체 전달에 대응하는 관계에 있는 어떠한 경제적 이익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전달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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