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에 속아 인증번호 전달…헌재 "기소유예 취소"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범에 속아 계좌개설용 인증번호를 전달한 사람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은 부당하다며 이를 취소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청구인 A씨가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A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광고로 알게 된 B씨로부터 "투자금을 보내주면 수익금을 돌려주겠다"는 취지의 제안을 받고 B씨가 지시하는 대로 인증번호 등을 알려줬다.

그러나 A씨는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했고 B씨는 인증번호 등으로 A씨 명의의 계좌를 개설해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했다.

A씨는 대가를 약속받고 인증번호 등 접근 매체를 전달했다는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전자금융거래법은 대가를 수수·요구·약속하면서 접근 매체를 대여받거나 대여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에 A씨는 본인이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송금한 돈을 출금하기 위해 본인인증에 필요한 서류, 인증번호 등을 B씨에게 보낸 것이지 계좌 개설을 위해 보낸 것이 아닌데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헌재는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 A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됐다며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인증번호와 같은 접근매체를 전달하는 때는 전달에 대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하고 전달자는 대가관계를 인식하면서 접근 매체를 전달해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가 성립한다.

그런데 A씨는 B씨에게 속아 투자금을 뺏겼고, 그 과정에서 인증번호를 전달했지만 이는 투자금 등을 돌려받으려는 의도인 것으로 조사됐다.

헌재는 "인증번호 전달 전까지 A씨는 B씨에게 계좌개설에 대한 얘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며 "A씨는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로서 단지 자신의 투자금 등을 출금하기 위한 인터넷 사이트 본인인증 수단으로서 접근 매체를 전달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가 접근 매체를 전달하면서 어떠한 경제적 이익을 약속받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A씨에게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 매체를 전달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parksj@news1.kr